처서를 지나고 성큼 다가온 가을을 더욱 재촉하는 비가 밤새 내렸다. 늦은 시간, 빗소리를 듣는 마음이 처연하다. 이렇게 시간은 흐르고 지나간 기억만 남아 마음에 더께가 되어 남을 것이다. 기억은 남되 흘러야 하는 시간이니 안타깝고 처연할 수밖에 없다. 사람이 살아가는 모든 일이 이와 같으니 우리가 시간과 공간에 얽매인 존재인 까닭이다. 우리 존재가 시공을 초월할 수 없기에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끝나는 순간이 다가오기 마련이다. 어두운 어머니의 태에서 나와 수명대로 살다가 어둠 속으로 돌아가는 것이 거스를 수 없는 우리의 삶이다. 짧게 볼 때 이것은 한 개인의 유한한 삶이지만 자손을 통해 그 삶은 영속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와 같은 공간에 터 잡은 만물이 시간의 흐름을 따라 생몰(生沒)을 거듭한다. 그리고 대자연은 지구의 운행을 따라 낮과 밤을, 사계절의 변화를 연출한다. 이는 짧게 생각할 때 시간의 소멸이면서 길게는 시간의 연속이기도 하다.
그렇게 2022년의 여름은 떠나가고, 떠나간 계절의 빈자리를 한 치의 어긋남이 없이 가을이 채우게 된다. 또한 뜨거웠던 여름은 일 년 후인 2023년에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엄밀하게 말해서 지금 떠나보내는 여름과 일 년 후에 만날 여름이 똑같은 모습일 수는 없겠지만 우리는 내년에 만날 여름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뜨겁던 계절을 떠나보낸다. 그리고 서운함과 기대가 섞인 마음으로 가을을 맞이한다.
산기슭 공원을 거쳐 본격적으로 호암산을 오르기 위해 걸음을 재촉한다. 오늘 만나는 숲이 일주일 전의 숲과 크게 다를 것은 없다. 다만 피부에 느껴지는 대기의 감촉과 눈에 와 닫는 햇살의 느낌에 미묘한 차이가 있을 뿐이다. 계절의 변화는 밤에 이슬이 내리듯 소리소문 없이 우리의 곁을 찾아온다. 다만 뜨거웠던 여름의 열정이 차분히 가라앉은 느낌이다. 가을은 그렇게 우리를 성숙으로 이끈다.
지난 주간에 남쪽 바다로 늦은 휴가를 다녀왔다. 푸른 바다를 눈에, 마음에 담고 되돌아온 일상이 아직은 설익은 가운데 마음을 추스를 틈도 없이 새로운 계절이 다가온 것이다.
환절기라는 이때, 우리의 몸은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혼돈을 경험하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민감한 계절의 변화에 미처 적응하지 못한 우리의 몸은 그만 아프게 된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면 이 시기에 몸만 아픈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 또한 아픈 것 같다. 흔히 하는 말로 ‘가을을 탄다’는 감상적인 의미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몸이 그렇듯 마음 또한 계절의 변화를 민감하게 느끼고 적응을 위한 준비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계절의 변화 같은 것에는 둔감한 사람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둔감한 사람이라도 감정의 노출이 서툴러서 그렇지 그 사람 나름대로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있을 것이다.
지금 가을을 맞이하는 마음에는 무심하게 흘러가는 시간, 즉 유수와 같이 빠른 세월에 대한 아쉽고도 착잡한 감정이 크겠지만, 그보다는 다가오는 새로운 환경에 대한 기대감으로 마음을 채워보는 것이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는 현명한 태도일 것이다. 게다가 가을은 곡식이 영글어 수확하는 계절이다. 그리고 햇곡식의 수확을 감사하는 계절이다. 그러니까 가을은 농부에게는 흘린 땀의 보람을 찾아 깨닫는 계절이다. 마찬가지로 가을은 성숙의 계절이다. 우리 모두 살아온 삶을 점검하고 내면을 비추어 볼 시점이다. 그래서 앞으로 다가올 겨울을 넉넉히 견딜 내공을 쌓아갈 때이다. 자연이 나름의 방법으로 겨울을 준비하듯 우리의 삶이 혹독한 시련을 예상케 한다면 이를 능히 견딜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리라. 삶이라는 것이 끊임없이 닥쳐오는 고난의 연속이라지만, 지금 당장 예상되는 시련이 없다 하더라도 자연이 선물하는 가을의 존재를 통해 삶의 지혜를 터득할 일이다. 가을은 우리에게 새로움을 요구한다. 시간의 요구에 따라 우리가 내적인 성숙을 준비할 때가 가을인 것이다. 자연도 가을이면 스스로가 익어간다. 가을을 맞이하여 자연을 따라 배우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