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서 생명의 가치를 생각한다

by 밤과 꿈

가을이 눈앞에 다 온 듯 서늘하던 기온이 다시 올라갔다. 게다가 북상 중인 태풍 힌남노의 영향인지 대기가 무척 습하다. 산자락을 지나 가파른 등산로를 오를 때, 얼굴을 적시는 땀에 높은 습도가 더하여 가파르게 계단으로 만든 등산로를 오르는 발걸음이 한층 힘겹다. 그다지 높지 않은 기온인데도 습도가 높아 후덥지근한 날씨가 쾌적한 환경을 방해한다. 이럴 때일수록 산을 오르는 발걸음은 더디게 되고, 숲을 이루는 나무와 풀, 그리고 이들에 깃들어 사는 곤충과 새들에게 눈길이 오래 머물게 된다. 발길 아래에서는 개미들의 부지런한 움직임이 여전하다. 저토록 작고 연약한 곤충(물론 이들이 무리를 지어 살아가기에 그 힘은 실질적으로는 무적에 가깝지만)의 부지런한 움직임은 가을이 끝나갈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바삐 움직이는 개미들을 바라보면서 자연의 모든 생명활동의 끝은 결국 소멸을 향하고 있는 것인가 보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가 정해진 시간 내에 산 정상을 밟아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산을 오르는 한 발 밑의 미물에게 눈길을 오래 줄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래도 개미는 양지바르고 맨 흙이 드러난 곳에 집을 짓고 활동을 하기에 쉽게 눈에 뜨이지만 대부분의 작은 생명은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한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산행에 기분 좋은 동행을 마다하지 않는 산새들 또한 맑은 울음소리에 그 모습을 조우하기가 쉽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가까이에 있는 가치에 대하여 미처 깨닫지 못하거나 놓치는 경우가 허다한 것 같다. 생명만큼 소중한 가치가 어디에 또 있을까? 우리 스스로의 생명을 소중한 줄 알면서 말 못 하는 동물이나 식물의 생명이 가진 가치를 아무렇지 않게 취급한다. 간혹 미디어를 통해 개와 고양이와 같이 오래 인간과 같이 생활해 온 짐승에 대한 잔혹 행위의 예를 접하게 된다. 이런 사례를 접할 때마다 인간이란 도무지 알 수 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같은 동물을 두고 반려동물이라며 그 가치를 가족처럼 인식하는가 하면 생명을 가진 존재에게 그토록 가혹할 수 있는지…… 내가 생각할 때 온전히 선하거나 온전히 악한 사람은 없다. 두 가지 양극단의 성격이 한 사람의 내면에 깃들어 있다가 상황에 따라 주도권을 가지는 성격이 두드러지는 것이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부정적 성향을 억제하는 것 또한 교육과 같은 환경적 요인이 클 것이다. 그러나 부정적 성향이 사회의 집단 성격이 되었을 때 문제는 간단하지가 않다. 그 예를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다시 한 발짝 나아가서 생각할 때 이와 같은 부정적 성향보다도 더 심각한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이와 같은 부정적인 성향이 사회적 통념으로 자리 잡게 하는 대중의 무관심이다.


지난달 기록적인 집중호우로 많은 생명을 잃었다. 그리고 자연재해에 대하여 손 쓸 방도가 없는 열악한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특히 반지하라는 열악한 환경에 갇혀 목숨을 잃은 일가족의 사연에 우리 모두는 가슴 아파했다. 그러나 유감스러운 것은 해마다 이와 같은 자연재해를 겪으면서도 근본적인 해결책을 강구하지 못하고 피해가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반지하라는 환경이 사람이 주거로 사용하기에는 말도 안 되게 열악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이에 관심을 두지 않고 열악한 환경에 우리의 이웃을 방치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직접적인 관련성을 가지지 않은 우리 사회 공동체의 구성원에 대한 무관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무관심이 만연한 사회라면 결코 건강한 공동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건강한 공동체는 우리 모두의 생명에 대하여 그 가치를 등한시하지 않는 공동체이다. 그리고 마찬가지의 가치 기준으로 자연이라는 큰 공동체에서 생명을 이어가는 미물에게도 그 생명을 인정하고 존재의 가치를 인식할 수 있다면 지구에서 살아가는 거대 공동체는 쉽게 건강을 잃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지난달과 같은 자연재해로 우리 공동체를 흔들지도 모를 강력한 태풍 힌남노의 영향을 걱정하며 산자락에서 하는 주제넘은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