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선물하는 낭만의 시간

by 밤과 꿈

비는 햇살과 함께 만물을 키우는, 고마운 존재다. 또한 계절의 변화를 알리는 첨병이기도 하다. 비를 신호로 해서 새로운 계절이 찾아올 때 지루했던 일상에 변화가 일어나고 활력을 되찾게 된다.

차분하게 내리는 비를 머금고 꽃봉오리가 터질 때 우리는 봄이 왔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지루한 장마를 시작으로 여름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마찬가지로 내리는 빗줄기가 처연하게 느껴질 때 가을이 가까이에 왔음을 알게 된다. 그러다 냉기를 머금은 비바람에 마지막 남은 나뭇잎이 죄다 떨어질 때 바야흐로 계절은 겨울에 접어들고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비로 해서 계절의 변화를 감지할 수도 있다면 비에게는 우리의 감성을 일깨우는 모종의 성질이 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이러한 비의 성질은 비가 우리의 시각과 함께 청각을 자극하는 면이 있어 우리의 감성이 보다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아닐까?

개인적으로는 처마 끝에 떨어지는 낙숫물을 바라보는 것보다는 양철 물받이를 두드리면서 흐르는 낙숫물의 소리가 오래 기억에 남아있다. 그만큼 인상적인 경험으로 마음에 각인되어 있다는 뜻이다.

울창한 숲 속으로 난 오솔길을 걸을 때 빗줄기는 우리 몸에 닫기 이전에 먼저 나뭇잎을 두드리며 떨어지는 소리로서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리고 우리는 그 소리만으로도 청량한 느낌으로 기분 좋은 산행을 지속할 수 있다. 몸이 비에 젖는 불편쯤은 아무 문제가 되지 못하고 빗물에 젖어 푸름이 선명해진 숲이 생기를 더한다.


물론 도시에 즐비하게 들어선 현대적인 건물에서는 옛 건물에서 듣던 낙숫물 소리가 주는 감성을 기대할 수는 없다. 주위의 소음과 추위로부터 우리를 차단시키는 창호 시스템이 더불어 대자연의 소소한 흔적까지도 우리로부터 차단시켜 버렸다. 아파트와 같이 지극히 개인적인 공동 주택에서 우리는 참으로 무미건조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대자연의 위력 앞에 온전히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지금 이 시간 많은 비를 뿌리면서 한반도를 향해 접근하고 있는 태풍 힌남노의 위력 앞에 우리는 두려움을 떨쳐 버리지 못한다. 방송에서는 온종일 태풍 이야기로 도배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내일 새벽 태풍 힌남노가 한반도에 상륙한 뒤 큰 피해 없이 무사히 지나가기를 간절하게 바라고 있을 것이다. 태풍과 같은 대자연의 폭력에 인간은 한없이 무기력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이럴 때 비에 대한 내 생각은 지나치게 낭만적인 것일 수 있다. 큰 물난리를 겪을지도 모를 상황에서 분위기 파악도 못한다고 비난받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온종일 거센 비에 갇혀 실내에서 지내다 보니 부질없는 상념이 끊이지 않아서이다. 그리고 개념 없이 비가 선물하는 낭만에 빠져보는 시간이 나쁘지 않다. 긴박한 상황에서 찾는 여유가 즐겁기도 하다. 이런 여유를 잃어버린 지가 오래되었다. 겨울에 우리 마음을 들뜨게 하던 함박눈이 출근길을 걱정하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그만큼 우리의 일상에 여유가 없다. 이처럼 여유가 없는 일상에 자연스러움이 끼어들 여지가 줄었다. 당연히 자연이 선물하는 낭만도 빛바랜 옛이야기처럼 생각된다. 그만큼 감성을 가지고 자연을 접하는 시간이 비현실적이라 뜨악하게 된 것이다. 빗줄기가 거세어 비를 맞으며 숲길을 걷지는 못하지만, 이 비가 그친 후 숲으로 가서 비가 일깨운 자연의 냄새, 즉 축축하게 젖은 맨땅의 흙냄새와 싱그런 풀냄새를 맡는 여유를 갖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