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월(滿月)이다. 그것도 한 치의 이지러짐이 없이 온전히 둥근달이다. 보도에 의하면 100 년 만에 만나는 가장 둥근 한가위 달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경우 한가위를 지나서 가장 둥근달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이는 태양과 지구, 그리고 달의 위치에 따른 차이가 만든 결과다. 그러나 아쉽게도 서울에서는 날씨가 흐려 넉넉하게 둥근달을 온전히 감상할 수 없게 되었다.
한가위의 둥근달을 잘 보기 위해 가족과 함께 산기슭 공원으로 산책을 나섰다. 그러나 만족스러운 달의 둥근 모습을 볼 수 없어 공원에 오래 머무르지 않고 발길을 돌려 집으로 왔다. 그런데 바로 집 앞에서 그나마 봐줄 만한 만월을 만날 수 있었다. 살다 보면 그런 경우가 간혹 있다. 돌고 돌아 처음 출발한 곳이 목적지가 되는 경우가. 그렇게 둥근 보름달을 보게 되었다.
어릴 때 한가위에 처음 떠오르는 달을 보기 위해 세 살 터울의 작은 형과 함께 마을 뒷산에 올랐던 기억이 있다. 달을 보고 어떤 소원을 빌었는지는 기억에 없지만 제법 간절하게 달을 보고 소원을 빌었던 것 같다. 그리고 확실하지는 않지만 장독대에서도 담장을 넘어 비치는 달빛을 받으며 한가위 소원을 빌었던 적도 있었던 것 같다.
한 집안에서 장독대는 음식 맛을 좌우하는 장을 보관하는, 신성한 곳으로 인식되어 이곳에서 어머니께서 정화수를 떠 놓고 두 손바닥을 싹싹 비비며 무엇인가를 빌곤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마도 장독대에서 둥근 보름달을 보기는 했을 것이다. 어릴 때 살았던 한옥에서 장독대는 마당보다 높게 단을 쌓아 집안에서는 가장 달을 보기에 용이했던 곳이었다. 이렇게 한가위의 둥근달은 어릴 때의 기억 속에서 서정적인 지점에 자리하고 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이맘때면 흔히 듣게 되는 덕담이다. 오곡백과가 무르익어 수확을 앞두고 있는 보람의 시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비슷한 개념으로 유대인에게는 맥추절이라는 절기가 있다. 그리고 미국의 개신교도들은 추수감사절을 공식적인 절기로서 지낸다. 추수감사절은 1620년 메이 플라워 호를 타고 미국의 메사추세츠 주의 플리머스에 정착한 102명의 이주민(이 중 35명이 청교도였다)들이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일 년 후 첫 수확을 거둔 것을 기념하여 11월의 마지막 목요일을 정해 기념하는 날이다. 미국은 이날을 국경일로 정해 최고의 명절로 기념한다. 북미에 정착한 최초의 백인들은 원주민인 인디언들의 도움으로 일 년 후 첫 소출을 수확, 그 기쁨을 인디언들과 나누었다고 한다. 추수감사절이 국내 개신교회에서 지키는 절기가 된 것은 한국의 개신교가 미국에서 도입되었기 때문이다. 가톨릭 교회에서는 추수감사절을 지키지 않는다.
종교 탄압을 피해 건너간 신대륙에서의 정착과 이에 대한 감사라는 나름의 종교적인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 역사적인 사실이 35 명의 청교도들만이 경험한 것이 아니라는 데에서 개인적으로는 우리 개신교의 실정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에 대한 재고가 필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우리 명절인 한가위를 절기로서 예배에 도입하는 것에도 문제가 있다. 추수감사절이나 유대인의 맥추절이 한해의 수확에 대한 감사의 의미가 있는 반면 한가위는 한해의 수확을 앞둔 절기라는 데에서 차이가 있다. 그것은 수확의 시기를 앞두고 조상에게 풍성한 수확을 빈다는 비신앙적인 내용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성인 예배는 아니지만 간혹 주일학교에서 한가위 예배를 드리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의미를 깊게 생각해보지 않고 어린이들의 기호에 접근하는 잘못이다. 추수감사절에 대한 가장 합당한 접근은 한 해를 마감하면서 각자 한 해의 삶을 점검하고 삶의 성과에 대한 감사의 의미가 합당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의미가 어떻든 한가위라서 좋다. 귀성길이 고달파도 삶의 근원을 향한 회귀가 마음 설레는 일이다. 내 경우 유감스럽게도 명절이라고 찾아 내려갈 고향이 없다. 객지에 정착한 지가 오래인 데다 부모님의 산소도 가까운 곳에 있어 일부러 가지 않는 한 고향으로 갈 일이 별로 없다. 이제 고향은 마음속에 그리운 공간으로 남겨두어야 할 것 같다. 비록 고향에 가지 않더라도 한가위는 마음 만으로 넉넉하다. 마치 추수감사절을 한해의 삶에 대한 자평과 감사의 시간으로 이해하듯이 한가위 또한 내가 자라고 내면을 형성한 공간을 돌이켜 그리워하는 시간으로 생각해야겠다.
또한 한가위의 이지러지지 않은 둥근달을 바라보는 마음이 더할 나위 없이 풍요롭다. 우주의 천체, 즉 항성, 행성과 위성에서 보듯 자연의 가장 안정적인 형태가 구형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는 표면장력이 작용한 결과라고 한다. 이유야 어쨌든 둥근달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은 자연의 섭리에 따르는 DNA가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흐린 하늘에서도 넉넉한 자태를 드러내는 둥근달을 보면서 앞을 예측할 수 없이 막막한 국제 정세와 경제 현실 앞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으면 한다. 다만 우리 살아가는 세상이 한가위만 같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