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자락 길에 나란히 난 산복도로에 인접한 마을이 재개발될 모양이다. 몇몇 빌라에 재건축 조합 설립을 축하하는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주택이 건축된 지 오래여서 낡았거나 마을의 조성이 새로운 도시 계획에 부합하지 않았을 때 마을을 새로 조성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물론 기존의 마을이 지니고 있는 긍정적인 요소를 훼손하지 않는 방향으로 개발이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그러나 전통적 가치와 삶의 형태가 아직 남아 있는 시골이 아닌 도시에서 가치화된 공동체 의식을 찾기 힘든 실정이다. 가옥만 하더라도 서울의 북촌과 서촌처럼 역사적 가치를 공유한 공동체가 아니라면 문화적 가치를 가진 가옥 형태를 우리나라의 도시에서는 찾을 수 없다. 경제 발전의 논리에 의해 마을의 주택이 지어졌기 때문이다. 편리성과 주택난 해소라는 논리가 우선적으로 작동하는 아파트도 예외가 아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요즘 조성되는 아파트 단지에는 단지 내 도서관이나 운동시설 등 공동시설의 비중을 높여 실질적인 지역 공동체의 끈을 공고히 할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앞으로 아파트가 들어설 게 틀림없을 산자락 마을에도 그와 같은 공동체에 대한 고민이 많이 반영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새로움은 대부분의 경우 좋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아무려면 묵은 것이 새것보다 좋을까 마는 때로는 새것보다 묵은 것이 더 좋을 때가 있다. 장 맛과 같이 전통과 결부되어 있는 경우가 그렇다.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분명 새로움이라는 말이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것이 사실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말이 있다. 신약 성경에 나오는 것으로 적절한 인용은 아니겠지만 흔히 사용하는 말이다. 여기서 기독교 신앙과 관련한 언급을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성경에 대한 이해 없이 이 말을 많이 인용하는 것을 보면 새롭다는 의미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인식되는지를 알 수 있다.
‘도시 농부’라는 것이 있다. 지방 도시의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서울이라는 대도시에서 텃밭 수준의 작은 규모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여러 해 전이었다. 이들 도시 농부들이 모여 대학로에서 난장을 펼쳤다. 큰돈이 되리라 기대하지 않았겠지만 도시의 농부를 자임하는 그들의 수고가 알뜰하고 정갈해서 사진을 남겼었다. 생각건대 그때가 한가위를 지난 초가을이었을 것이다. 한 해의 수고가 결실로 나타난 농산물들을 보는 마음도 넉넉했지만 땀 흘린 수고를 사람들에게 선보이게 되었다는 사실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도시 농부들의 모습에서 보람이 묻어나고 있었다. 비록 조촐하지만 한 해 농사의 첫 소출을 수확한 기쁨, 새로움에 대한 반응을 감추지 않는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하루하루가 새로움의 연속이다. 해 밝은 때의 수고는 달 밝은 때의 휴식과 더불어 하루를 이루고, 달 밝은 밤이 있어 새로 떠오르는 해와 함께 새날을 시작하는 것이다. 만일 우리에게 허락된 생이 시한부라면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그만큼 새롭게 느껴질 것이리라. 다만 우리가 매일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하루이기에 그 가치를 생각할 이유를 찾지 못할 뿐이다. 그러니 곰곰 생각해보면 우리에게 새로움은 가까이에서 빈번하게 경험하는 현상인 것이다. 그리고 새로움에서 기인하는 희망은 멀리에 있지 않다고 하겠다. 이처럼 우리의 삶이 희망 가운데 머물고 있다면 우리는 분명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다.
한 해가 저물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연말연시야말로 새롭게 시작되는 한 해를 앞두고 한 해를 계획하고 기대를 꿈꾸는 때이다. 그러나 이때는 저무는 해에 대한 아쉬움과 후회의 마음이 섞여 있다. 반면, 과일과 곡식이 영그는 요즈음이야말로 한 해의 보람과 남은 한 해를 잘 마무리하고자 하는 바람이 함께 새로움으로 다가오는 시간이다. 마음이 넉넉해지는 시절이다.
재개발을 앞둔 산자락 마을에는 새로운 보금자리에 대한 기대가 가득할 것이다. 지금은 우리도 날마다 새롭게 시작되는 삶의 자리에서 한 해의 보람을 추수할 시간을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