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째 후덥지근한 여름 날씨가 지속되고 있다. 한 이틀 간간이 내리는 비는 새로 발생한 태풍의 영향으로 한반도로 밀려난 열대성 저기압의 탓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오늘은 쾌청하게 맑은 날씨인데도 따사로운 햇살에 더하여 습한 기운이 도무지 가시지를 않는다. 예배를 드린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차창으로 보는 도심의 거리도 그지없이 한적했다. 아무리 오늘이 일요일이고, 이른바 핫 플레이스에 끼지도 못하고 퇴락한 종로라고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아무래도 다시 찾아온 여름 더위가 사람들의 발길을 더디게 하는 것 같다. 에어컨 바람이 시원한 차 안에서 바라보기에도 한산한 도심의 풍경이 여유롭다기보다는 마치 한여름의 도심 풍경처럼 더위에 지쳐 녹아내리고 있다는 느낌이 더 들었다.
설마 하니 철 지나 찾아온 늦더위가 한여름의 무더위에 비할까 마는 우리가 체감하는 더위의 정도는 한여름의 그것에 못지않은 것 같다. 그만큼 우리는 몸과 마음은 처서를 지나 조용히 찾아온 가을에 서둘러 적응하고 있었나 보다. 그렇기에 한 철을 지나 기력이 쇠락한, 그만그만한 더위조차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어떤 환경 조건에도 잘 적응하고 극복하는 것, 그것이 진화론적 시각으로 볼 때 우리 인류가 열등한 신체 조건에도 불구하고 오래 생존해 온 이유가 될 것이다. 진화론을 신봉하든 말든 연약한 인류가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고 문명을 이룩하면서 생존해 온 것을 보면 수긍할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러니까 역설적으로 인류가 유약했기 때문에 생존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인류가 거친 자연에서 본능적으로 터득한 생존전략이랄까?
집에 온 뒤 산자락 길을 걸어 호암산으로 향했다. 휴일인데도 산을 찾는 이가 드물다. 그것은 관악산이나 도봉산처럼 사는 곳에 상관없이 사람들이 많이 찾는 산이라면 모르지만 크게 힘들이지 않고 오를 수 있는 마을 뒷산인지라 휴일에 오히려 사람이 적은 까닭이기도 하다. 휴일에는 가족과 함께 하고픈 것이 일반적인 사람의 심리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숲의 고요가 더 크게 느껴진다. 이 또한 다시 찾아온 늦더위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등산객이 넘쳐 번다한 숲의 모습보다는 괴괴한 숲의 모습에 보다 정감이 간다. 이럴 때 산 정상을 목표로 땀 흘리며 묵묵히 길을 재촉하기보다는 숲의 풍경을 둘러보며 쉬엄쉬엄 발걸음을 옮긴다. 더불어 생각도 많아진다.
계절이 지나갈 때마다 느끼는 것은 계절이 순순히 자기 자리를 내어놓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봄이 오나 싶으면 반드시 한 두 번의 꽃샘추위가 봄을 기다리며 한껏 부푼 우리 마음을 움츠리게 한다. 마치 겨울이 봄이라는 아름다운 계절을 맞이한 우리를 시샘하는 듯하다. 마찬가지로 지금의 늦더위는 자기 성숙을 위해 서둘러 가을을 향하는 우리의 발걸음에 딴지를 걸듯 심술을 부리는 것 같다. 인간에 대한 자연의 심술이 오뉴월에도 서리를 내리게 한다는 여심처럼 매섭고 거세다. 중부지방이 이렇게 늦더위에 축축 처지고 있을 때 남부지방에서는 태풍 난마돌에 대한 대비로 바짝 긴장하고 있다. 지금 겪고 있는 무더위도 태풍의 영향 때문이라지만 재미있는 상상을 해보는 것이다. 다만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이상 현상을 여자의 마음에 비유한 것에 대하여 이해를 구한다. 여자와 다투어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런데 자연의 심술이 이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호암산 중턱에서 땀을 식히며 그렇게 지금의 무더위를 이해하고, 그 심술이 오래지 않아 제 풀에 꺾여 지나가리라 믿는다. 그리고 자연의 심술도 인간에게 적절한 긴장감을 주는 것으로 긍정적으로 이해해 본다. 남녀 간의 사랑도 적절한 긴장이 없으면 쉽게 시들해지지 않던가. 그렇게 생각하면 늦더위라는 떠난 줄 알았던 여름의 심술이 아무리 거셀지라도 수긍 못할 일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