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물 곳을 잃은 모두의 마음

- 황석영의 단편소설 '삼포 가는 길'

by 밤과 꿈
영달은 어디로 갈 것인가 궁리해보면서 잠깐 서 있었다.

- 황석영의 단편소설 ‘삼포 가는 길’ 중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노르웨이의 숲’이 그렇듯 황석영의 소설 ‘삼포 가는 길’의 첫 문장은 이 소설의 전부를 말하고 있다.

“영달은 어디로 갈 것인가 궁리해보면서 잠깐 서 있었다.”

무미건조해서 대수롭지 않게 보이는 이 문장은 소설의 구도 안에서 이해되고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소설 ‘객지’와 함께 ‘삼포 가는 길’은 모두 1970년대 초에 발표, 황석영 문학의 근간을 이루었다. 비록 길지 않은 분량의 단편이지만 우리 리얼리즘 문학의 소중한 성과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 두 소설에서 청년 황석영의 패기와 옹골찬 문학 정신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이 두 소설이 5. 16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정권의 폭거가 극한으로 치닫던 10월 유신을 전후로 발표되었다는 사실에서 이 소설들이 가진 문학적 가치 이외에도 사회사적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개인적으로는 이 소설들이 이 세상 어디에도 머물지 못하고, 뿌리내리지 못하는 인생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호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내가 ‘이지 라이더’나 ‘델마와 루이스’와 같은 로드 무비(road movie)를 좋아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물론 소설 ‘객지’는 산업화의 현장에서 발생한 노동쟁의를 다루고 있어 영화의 로드 무비와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객지라는 소설의 제목 만으로도 한 곳에 머물지 못하는 인생을 소재로 한 ‘길 위의 문학’을 상징적으로 표방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삼포 가는 길’은 온전히 길 위의 문학을 표방하고 있는 소설이다. 이 소설을 이끌어 가는 주동 인물인 영달과 정 씨, 백화는 서로 다른 공간에서 살아온, 이른바 별 볼 일 없는 인생들이다. 공사판을 전전하며 살아가는 영달과 정 씨, 그리고 술집 작부 백화는 우연하게 길 위에서 만나 짧은 여정을 함께 한다. 삼포는 정 씨의 고향으로 정 씨는 삼포를 향해 가는 길이다. 백화는 군부대가 주둔한 작은 마을의 서울식당에서 도망친 술집 작부로서 고향 집을 찾아가고자 한다. 그러나 백화의 고향은 소설 속에서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리고 백화 또한 고향을 찾고자 하는 의지가 그다지 강해 보이지도 않는다.

“그래요. 밤마다 내일 아침엔 고향으로 출발하리라 작정하죠. 그런데 마음뿐이지, 몇 년이 흘러요.”

백화에게는 술집 작부가 되어 망가진 인생에 대한 자의식이 있는 것이다. 자신의 삶이 망가지기 전의 모든 추억이 있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있지만, 현재의 모습으로 지난날의 흔적을 대면할 자신이 없다.

“나 이름이 백화지만, 가명이에요. 본명은…… 아무에게도 가르쳐주지 않아”라고 말하는 백화의 모습에서 고향은 망가진 현재가 더럽힐 수 없는, 마음으로 소중하게 간직하는 추억의 공간이라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백화는 거칠지만 순박한 모습을 간직한 두 사람과 함께 하면서 고향을 찾아갈 용기를 내고, 망가진 인생 때문에 외면해 온 자신의 정체성을 비로소 찾아간다.

“내 이름 백화가 아니에요. 본명은요…… 이점례예요.”

먼저 고향을 향하는 기차를 타기 전 눈이 젖은 채 웃으며 백화가 남긴 말이다.

뚜렷한 목적지가 없는 영달은 정 씨의 권유에 따라 함께 삼포로 가기로 한다. 그러나 기차를 기다리며 대합실에서 알게 된 노인으로부터 작은 섬마을 삼포가 이제는 관광지 개발로 육지와 신작로로 연결되고, 대규모 공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곳으로 변모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에 영달은 삼포에서 공사판 일을 잡을 것을 생각하지만, 고향을 찾는 정 씨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다.

“그는 마음의 정처를 방금 잃어버렸던 때문이었다. 어느 결에 정 씨는 영달이와 똑같은 입장이 되어버렸다.”


산업화의 그늘을 영달과 정 씨를 통해 그리는 소설 ‘삼포 가는 길’은 발표 당시인 1970년대와 1980년대를 관통하여 한 시대의 초상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산업화 시대를 지나간 지금, 이 소설이 예전과 같은 공감을 얻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과 같은 시대를 살아온 세대에게는 ‘고향의 상실’은 가슴 아픈 일이다. 산업화와 도시화의 그늘에서 고향을 잃고 도시 빈민으로 전락하거나 수몰지구에 속해 고향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일들이 흔했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비록 이 시대의 경험이 없는 세대일지라도 이 소설을 통해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대에 대한 이해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나는 박태준의 소설 ‘천변풍경’에서 1930년대, 서울의 청계천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서민들의 삶과 애환을 이해까지는 아니더라도 짐작은 할 수 있었다. 지금은 청계천이 잘 가꾸어진 생태공원이 되어 있지만, 대학 진학을 위해 상경한 1980년대에는 청계천이 복개천으로 하천의 흔적조차 확인할 수 없었으니 소설에서 묘사하는 천변의 풍경은 흥미롭기 그지없었다.

특히 현대와 같은 후기산업사회에서 문학 작품은 사회를 이해하는 텍스트로서의 의미가 적지 않다. 우리는 소설 ‘삼포 가는 길’에서 1970년대 우리 사회의 단면을 먼저 이해할 수 있지만, 이 소설이 묘사하는 주제가 아직은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후기산업사회에서 자아의 ‘물화’와 ‘대상화’가 돌이킬 수 없도록 진행된 현실에서 우리 모두는 영혼의 고향을 상실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달은 어디로 갈 것인가 궁리해보면서 잠깐 서 있었다”라는 이 소설의 첫 문장은 한 시대의 영달과 정 씨와 같은 따라지 인생들의 마음일 뿐만 아니라, 시대를 초월하여 영혼의 낙원을 잃은 우리 모두의 마음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우리에게는 영달과 마찬가지로 시선을 둘 곳은 있어도 이 세상에서 마음이 머물 곳이 없다.



이전 04화세월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아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