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금희의 단편소설 '오직 한 사람의 차지'
그러니까 상상력만 있다면 불운한 사랑이란 없는 것이었다.
- 김금희의 소설 ‘오직 한 사람의 차지’ 중에서
사실 김금희라는 소설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좀 더 적확하게 말하자면 김금희의 소설에 대해 잘 모르겠다는 말이고, 이는 그녀의 소설이 나에게는 크게 인상적이지 않았다는 고백이 될 수 있겠다.
김금희 작가에게는 미안한, 그리고 작가가 듣기에 불쾌한 말이겠지만 결코 작가의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거나, 작가의 소설을 폄하할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 자신이 우리 사회에서 문학이 아직 어떤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고 있었던 시대를 살았기에 요즘 양산되고 있는, 개인적 일상을 소재로 한 사소설에 익숙하지 않을 따름이다.
흔히 금세기의 우리 소설 문학에 대하여 말할 때 그 가벼움을 언급한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 이유를 우리 시대의 가벼움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김금희의 소설 ‘오직 한 사람의 차지’가 크게 인상에 남지는 않았지만, 그 소설에서 눈에 들어와 마음에 각인된 문장으로 “그러니까 상상력만 있다면 불운한 사랑이란 없는 것이었다“가 있다. 그러니까 내가 이 문장에 꽂힌 것에는 소설과는 무관하게 개인적인 경험이 작용한 것이다.
밀당 혹은 썸이라고 하는 것, 그것은 사랑에 빠진 청춘 남녀가 하루에도 천당과 지옥을 더불어 오고 가는 끔찍한 시간을 살아가는 것이다. 밀당의 시간이 순간이라는 짧은 시간에 머물 수도 있지만, 두 사람의 사이가 대책 없이 평행선을 달릴 만큼 그 시간이 오래갈 수도 있다.
남들이 볼 때 맨땅에 머리를 박듯 성사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사랑에 일방통행하는 것으로 생각될 수도 있지만, 그토록 끔찍한 시간을 오래 지속할 수 있는 것은 피차 끔찍한 사랑을 지속할 여지를 남겼기 때문이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은가.
그런데 이때의 여지라는 것이 감을 잡기 힘들게 알쏭달쏭한 것이라서, 마치 수수께끼를 풀 듯 상상력을 동원해 상대의 마음을 읽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상상력이 동원된 사랑이란 그만큼 팽팽한 긴장이 함께 하는 사랑이다. 물론 서로의 마음을 오역할 경우, 그 결과로 마음에 아픔도 크고, 사랑이 마음에 잊히지 않는 상처로 남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그 시간은 불확실한 사랑을 위해 온 마음을 다 쏟아부은 시간인지라, 뻔한 사랑과는 달리 영원히 잊히지 않고 사연마다 온전히 기억 속에 갇혀 있다. 그래서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는 그 시간의 아픔마저도 아름다울 수가 있는 것이다.
비록 “그러니까 상상력만 있다면 불운한 사랑이란 없는 것이었다”라는 문장이 이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이 문장에서 아팠던 사랑과 그 시간의 아름다웠던 기억을 떠올리고 반추하는 여유를 가지게 되니 이 또한 소소한 행복이다. 그리고 작가의 의도와는 다를지라도 이 문장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그냥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