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세희의 장편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벽돌공장의 높은 굴뚝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그 맨 꼭대기에 아버지가 서 있었다.
- 조세희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중에서
어제 밤사이 소설가 조세희의 사망 소식이 각종 미디어를 통해 전해 왔다. 비록 조세희는 다작의 작가는 아니었지만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으로 그 이름을 한국문학사에 각인시킨 소설가였다.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윤흥길의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와 함께 1970년대의 우리 사회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문제작으로 언급되고는 한다.
1970년대는 우리 사회가 산업화를 통해 비로소 근대사회로 진입하던 시점이었다. 급격한 사회의 발전은 계층의 분화를 가져왔다. 특히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몰려든 사람들은 도시 빈민으로 전락했다. 산업화 과정을 겪은 모든 자본주의 사회가 공통적으로 경험한 부작용이지만, 그 과정을 압축하여 겪어야 했던 우리 사회의 부작용은 그만큼 왜곡된 모습의 자본주의를 이 땅에 이식한 것이다. 흔히 우리는 ‘천민자본주의’라는 말로 우리의 왜곡된 사회를 말하지만, 계층을 망라하여 팽배해진 ‘물질만능주의’의 출발이 바로 1970년대였다. 이 땅에 재벌이라는 괴물이 생겨난 것도, 강남으로 대표되는 부동산 개발 붐에 졸부와 투기꾼이 그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한 때도 바로 1970년대였다. 이 때로부터 빈부의 격차는 걷잡을 수 없도록 커져 간 것이다.
소설 속 장남인 영수는 말한다.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라고. 신분의 차이가 엄정했던 신분사회에서는 상위 신분으로의 진입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해 보다 나은 삶을 꿈꿀 수조차 없었다. 그러나 신분제도가 철폐된 현대사회가 표면적으로는 평등 사회의 구현을 말하지만, 두터워져 가는 계층 사이의 간극은 사회적 평등을 요원한 것으로 만들 뿐만 아니라 거의 불가능한 꿈을 꾸어야 할 때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좌절과 상처가 되어 돌아오는 것이다.
‘서울특별시 낙원구 행복동’의 재개발 지구에서 사는 김불이 씨의 다섯 가족에게는 주택 철거의 보상으로 아파트 입주권이 주어지지만 입주 금액을 감당할 수 없어 입주권을 팔아도 전세금을 되돌려 주고 나니 남은 돈이 거의 없다. 평생 모은 돈으로 크지는 않아도 자신의 집을 장만했던 김불이 씨와 가족들이 졸지에 도시 빈민으로 전락하는 모습이다. 어떻게 보면 불가항력으로까지 생각되는 현실에서 느끼게 되는 좌절감과 분노는 책 읽기를 좋아했던 영수의 공책에 쓴 글에서 짐작할 수 있다.
‘폭력이란 무엇인가? 총탄이나 경찰 곤봉이나 주먹 만이 폭력이 아니다. 우리의 도시 한 귀퉁이에서 아이들이 굶주리는 것을 내버려 두는 것도 폭력이다.’
몸이 불편한 아버지를 대신해 어머니가 가정 경제를 책임지지만 역부족으로 세 남매까지 공장에 취직한다.
이 소설은 이후의 서사가 존재하지만 중심적인 내용 한 가지만 언급한다면 아버지 김불이 씨가 주검으로 발견된 것이다. 마을 인근의 벽돌공장이 철거되면서 행방이 묘연했던 김불이 씨가 굴뚝 속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것이다.
김불이 씨는 남보다 왜소한 신체의 난장이였다. 난장이 김불이 씨에게 벽돌공장의 굴뚝은 꿈을 상징하는 대상이었다.
‘벽돌공장의 높은 굴뚝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그 맨 꼭대기에 아버지가 서 있었다.‘
그리고 김불이 씨는 가까이 굴뚝에 걸린 듯한 달을 향해 굴뚝에 매달린 채 종이비행기를 날리기도 했다.
이 소설은 잘못된 현실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풍자라는 장치로 엮어낸 소설이다. 김불이 씨가 난장이라는 설정도 상징적인 것으로 산업사회에서 점차 왜소해져 가는 없는 사람들의 모습을 나타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현실에서는 한없이 왜소해질 수밖에 없지만 이른바 성공의 꿈을 버리지 못하는 기층민들의 모습이 난장이이고, 그들이 꾸는 꿈의 상징이 높게 치솟은 굴뚝이 될 것이다. 그리고 김불이 씨가 굴뚝에서 떨어진(아마도 굴뚝 속으로 스스로 몸을 던진) 것은 꿈의 좌절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것이다.
1976년 겨울에 발표된 지 50년 가까이 세월이 흘러 오래된 소설이지만, 이 소설에서 생동감을 찾을 수 있은 것은 산업화의 과정에서 야기된 사회적 문제점이 해소되기는커녕 계층 간의 간극이 더욱 심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우리 사회에서는 얼마나 많은 난장이들의 꿈이 꺾이고 있을 것인가. 난장이 김불이 씨의 꿈이었고, 또한 좌절이었던 굴뚝이 철거되기 전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거대하고 아름다운 꿈이.
‘벽돌공장의 높은 굴뚝 그림자가 시멘트담에서 꺾어지며 좁은 마당를 덮었다.’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2970년대를 대표하는 문제작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산업화의 그늘에서 형성되는 기층민의 모습을 난장이 김불이라는 전형을 통해 날카롭게 형상화했기 때문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윤흥길의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는 산업화의 과정에서 무기력한 소시민의 왜곡된 자의식을 형상화한 문제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들 두 소설을 다시 펼치면서 문학은 언제나 인간을 인간적이지 않게 하는 대상에게 저항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덧붙여 생각해 본다.
# 난장이와 같은 비표준어와 띄어쓰기는 소설의 표기에 따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