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다시 인간을 바라보다

- 서양 음악사를 이끈 10가지 장면(4)

by 밤과 꿈


르네상스의 시대적 배경


우리가 르네상스라고 일컫는 시대는 중세 말기부터 싹텄던 상업이 발달하여 자본주의의 초기 형태인 상업 자본주의가 자리 잡아가던 시기였습니다. 더불어 과학이 발달하고 해상 무역의 증대로 해운업이 발달했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던 때도 이 시기였습니다. 그러니까 과학의 발달과 식민지 개척으로 근현대 서구 문명의 기초를 닦게 되었던 때가 르네상스 시대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베네치아와 피렌체, 밀라노 등 이탈리아의 상업 도시에서 시작된 초창기 르네상스는 상업으로 부를 축적하기 시작한, 메디치 가문과 같은 상인 계층의 후원으로 새로운 예술을 탄생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기억할 것은 초창기 르네상스의 시기에는 남부 유럽의 이탈리아를 제외한 다른 지역은 아직도 중세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어 르네상스 시대의 연대기 설정이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르네상스 예술의 특징

르네상스의 사람들은 그들의 이상향으로 그리스, 로마의 고대 시대를 바라보았습니다.

다시 말하다면 고대 시대가 가지고 있었던 인간에 대한 관심, 즉 인문 사상에 기초한 문학과 예술을 재건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르네상스라는 용어를 번역하여 '문예 부흥'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이 말이 반드시 정확한 표현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14~16세기에 걸쳐 주로 미술에 의해 주도되었던 르네상스 예술을 한마디로 요약해서 말하기에도 어려움이 있습니다.

어쨌든 르네상스 예술은 회화에 있어서는 자연스러움과 원근법이 정착되고 건축에 있어서는 장식적인 고딕 건축에 비해 간결함이 강조되는 변화를 보이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큰 변화는 예술의 영역에 종교적인 내용이 아닌 인간의 삶이 포함되었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일례로 네덜란드의 화가 얀 반 에이크(Jan van Eyck)의 유명한 '아르놀피니의 결혼식'과 같은 그림을 중세 시대에서는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르네상스 음악의 전개


르네상스 음악을 꽃피운 것은 지금의 프랑스 북부와 벨기에, 네덜란드 지역에서 활동하던 '프랑코 플라망드 악파'에 의해서였습니다. 예전에 나온 음악사 서적에서 '네덜란드악파'라고 지칭하던 것입니다. 지금은 작은 나라이지만 15세기 당시의 네덜란드는 해상 무역으로 번영을 누렸던 강국이었습니다. 그래서 16세기에는 미국의 뉴욕 시 일부 지역과 퀴라소(지금도 네덜란드령)를 식민지로 개척했고, 19세기에 이르러서도 인도네시아를 식민지로 개척하기도 했던 것입니다. 어쨌든 한동안 이들 음악적 흐름을 네덜란드악파로 불렀지만 정확한 지역 설정이 아니어서 지금의 명칭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초창기 프랑코 플랑드르악파를 대표하는 작곡가로는 기욤 뒤페(Guillaume Dufay)와 영국 출신의 존 던스터블(John Dunstable)이 있습니다.

그리고 기욤 뒤페의 악풍은 그의 제자인 요하네스 오케켐(Johannes Ockegem)과 조스켕 데 프레(Josquin Des Pres)로 이어지고 이는 오를란도 라수스(Orlando Lassus)에 이르게 됩니다.

이들 작곡가의 시대에 따라 미사곡의 형태가 조금씩 변해 가고 , 특히 성가의 세속화를 가져온 패러디 미사 등 음악사적으로 중요한 내용이 있지만 간단한 것이 아니고 음악을 들으면서 이해해야 할 부분으로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한편 16~17세기에 있었던 종교개혁은 새로운 음악적 흐름을 가져왔습니다.

독일에서는 '코랄(Choral)'이라는 개신교 찬송가가 등장, 종교개혁가인 마르틴 루터(Martin Ruther)를 비롯, 한스 레오 하슬러(Hans Leo Hassler), 미하엘 프레토리우스(Michael Praetorius) 등의 성가가 널리 알려졌습니다.

영국에서는 앤섬(Anthem)이라는 성공회 성가가 토마스 탈리스(Thomas Tallis)와 월리엄 비어드(William Byrd), 토마스 모를레이(Thomas Morley) 등의 작곡가에 의해 작곡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개신교 성가의 발달에 따라 가톨릭 교회에서도 트리엔트 종교회의를 소집, 세속화된 성가에 대한 반성과 정화를 결정하고 '로마악파'의 조반니 피에르루이지 다 팔레스트리나(Giovanni Pierluigi da Palestrina)와 토마스 루이스 데 빅토리아(Thomas Luis de Victoria)와 같은 작곡가들이 새로운 가톨릭 성가의 정립에 애쓰게 되었던 것입니다.


끝으로 르네상스 시대의 세속 음악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장구한 르네상스 시대의 역사에 다양한 형식의 세속 음악이 있었지만 그 중요성과 다음 시대로의 연속성에서 돋보이는 마드리갈(Madrigal)에 대해서만 언급하겠습니다.

마드리갈이란 용어는 서양 음악사에 있어 그 뜻을 달리하면서 두 차례 등장하고, 시기에 따라 내용이 다르지만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에 작곡되어 바로크 시대에까지 지속된 전성기 마드리갈을 언급하겠습니다.

15세기에 시작된 르네상스 마드리갈은 인간의 삶의 모습을 유머와 해학을 실어 표현한 가창 형식입니다. 이것이 전성기에 이르러 카를로 제수알도(Carlo Gesualdo)와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Claudio Monteverdi)에 의해 절정을 맞이합니다. 특히 제수알도의 마드리갈은 불협화음마저 사용, 극한 감정의 표현을 담고 있는 드라마틱한 것입니다.

삶의 다양한 감정을 노래한 마드리갈이 있었기에 뒤이은 바로크 시대에 오페라라는 장르가 탄생하게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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