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으로 인한 3년간의 공백을 딛고 단원으로 있는 아마추어 합창단이 서울의 한 교회에서 연주회를 가졌다. 내년 10월에 예정된 롯데콘서트홀에서의 정기 연주회에 앞서 단원 충원을 위한 작업이다. 스페인에서의 연주회를 앞두고 중단되었던 합창단의 활동이 장기간 계속되다 보니 활동을 접게 된 단원이 생겼기 때문이다. 물론 모두 피치 못할 사정이 있다. 그 사이에 손주가 태어나 손주의 육아를 위해 시간을 빼앗긴 단원이 있는가 하면, 한창 사회 활동이 왕성한 젊은 단원들의 경우에는 없는 시간을 쪼개고, 회사에서 눈치를 봐 가면서 노래하던 열정이 식었기 때문에 합창을 지속하지 못하게 된다. 오랜 역사를 가진 연주 단체라면 끈끈한 유대감으로 어지간한 위기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연륜이 짧은 단체의 경우 그 원인이 내부에 있든 외적 요인에 있든 간에 어느 정도 조직에 균열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나마 우리 합창단은 지휘자를 구심점으로 해서 탄생한 연주 단체로서 내부적으로는 아무 문제없이 십 년을 유지해 왔다. 신생 아마추어 합창단 중에서는 창단 이후 삼 년을 넘기지 못하고 유명무실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고 오랜 역사를 가진 합창단도 단원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분열을 거듭한 예도 있다. 비록 단원의 결원이 생겼지만 곧 회복되리라 믿는다. 남성 합창의 경우 어느 정도의 인원은 갖추어져야 남성 합창의 매력을 발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입 단원이 많은 데다가 시일에 촉박하게 연주 일정을 잡은 탓에 연습이 충분하지 않다. 무엇보다도 암보에 어려움을 겪는다. 내가 나이를 들어가면서 암기력이 떨어진 탓도 있겠지만, 어떤 곡에 있어서는 가사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 또한 무시할 수 없다. 그 예로 유명 성악가 박동규가 불러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던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라는 노래가 있다. 이번 연주회에서 대중적인 곡으로 꾸민 2부 순서에 편성된 노래다. 우리나라에서 워낙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던 까닭에 우리나라의 곡으로 아는 사람이 많다. 그만큼 선율과 가사가 우리 정서에 어울리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 노래는 노르웨이의 작곡가 롤프 뢰블란이 작곡한 대중음악으로 원래 봄을 소재로 한 노래인 것이 우리나라에 와서 가을 노래로 번안되었다. 그리고 가사가 이해되지 않은 곳은 없다. 가사의 의미는 충분히 전달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다음과 같이 문장을 뜯어보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쏭달쏭한 부분이 있다.
“눈을 뜨기 힘든/ 가을보다 높은/ 저 하늘이 기분 좋아”
이 노래의 첫머리 가사로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문장이다. ‘눈을 뜨기 힘든’이라는 구절이 뒷부분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찾기가 어렵다. ‘눈을 뜨기 힘든, 가을보다 높은 저 하늘’로 앞선 두 형용사구가 하늘을 수식하는 문장이겠지만, ’ 눈을 뜨기 힘든 ‘ 아침도 아니고 하늘이라니, 그리고 ‘가을보다 높은 저 하늘’은 청명하고 높은 가을 하늘보다 높은 하늘이라는 뜻이겠지만, 그렇다면 이 문장은 ‘가을 하늘보다 높은 저 하늘’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 노래의 2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가끔 두려워져/ 지난밤 꿈처럼/ 사라질까 기도해 “
마찬가지로 밑도 끝도 없는 문장이다. 물론 이어지는 가사로 그 의미는 전달되지만, 우리말을 이렇게 제멋대로 사용해도 될까 의문이다.
우리말과 글을 이렇게 사용하면 노래의 가사를 외우는 점에서도 어려움을 겪게 된다. 노래의 가사를 익힐 때 우리는 전후의 문맥과 스토리의 연속성에 의지한다. 그처럼 가사의 의미를 이해해야 쉽게 가사를 익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노래의 가사처럼 문맥이 문자로서 연결되지 않으면 가사의 암보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이번 연주회를 준비하면서 비로소 깨닫게 된 사실이다. 어려움은 있었지만 성공적으로 연주회를 마쳤고, 이번 주일에 또 한 번의 연주회를 남겨 두고 있다. 그 또한 잘 마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다만 새삼스럽게 가사의 중요함을 생각해 보았다. 비록 대중가요라고 할지라도 가사를 쓸 때 보다 신중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