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낮게 깔리는 해 저물녘
사람의 마을에 반가운 눈이 내릴 때
온종일 아쉬운 온기를 그리워하며
실낱같은 염원을 담아
가난한 마음에 등촉(燈燭)을 밝힌다
오늘도 추위와 어울려 떠돌다
얼얼해진 마음을 추스르고
소년중앙 연탄난로 빽판 교련복 문무대 잉게 숄 마르크 블로흐 전태일
중학교 생물시간에 해부당한 개구리
스무 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동갑내기 이웃집 여학생
아팠던 첫사랑의 시간들
아버지 작은 형 그리고 어머니… 엄마…
등 등,
지금은 없는 이름의 목록을
밤을 새워 떠올리며
그들과 나누었던 뜨거운
생(生)의 온기를 기억하리라
미워했던 순간도 좋아했던 순간도
모두 사랑의 다른 모습일지니
애증(愛憎)이 서로 끌어안고
탐스러운 눈으로 내릴 때
고독한 마음에 등촉을 밝히리니
지난 사랑이여, 내게로 와서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라
사람의 마을에 눈으로 내려
집집마다 골목마다
삶의 누추(陋醜)를 뒤덮고
새로운 사랑이 되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