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신호에 걸린 차들이 정지선을 지켜
푸른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교차로에서
음흉한 까마귀 한 마리,
느긋하게 비둘기 사체를 쪼아 먹고 있다
겨울 한낮, 간절한 햇살에
비둘기의 몸뚱이가 메마르기 이전,
까마귀가 마르지 않은 내장을 부리에 물고
득의양양하게 대가리를 치켜들고 있을 때
가까이에 내려앉은 비둘기 두 마리는
비열하게 까마귀의 눈치를 보며
호시탐탐(虎視眈眈),
동족의 고기를 훔칠 궁리를 하고 있다
지루하지만 짧은 신호대기에도
저토록 구역질 나는 일이 벌어지듯
누구에게나 예고 없는 조종(弔鐘)이
한순간에 울리게 될지도 모른다
비둘기는 겨울 내내 맛보지 못한
아침 식사에 탐닉하고 있었을 것이다
몰상식한 사람들이 도로에 내던진
과자 부스러기나 햄버거 조각을 탐하다
길지 않은 명조차 앞당겼을 것이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말하듯
비둘기가 행복을 잡은 순간에
불운이 불쌍한 생명을 덮치고
육신은 찢어진 넝마로 남게 되었다
육중한 타이어에 터지고 찢어진 비둘기,
부관참시(剖棺斬屍)를 당하는 죄인처럼
다시 찢어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잠시
오늘 하루 뽑아 든 패를 생각하는
나는 오늘 불운할 것인가
음흉한 까마귀의 검은 눈동자와
생명의 빛이 꺼진 비둘기의 사체가
나를 불운으로 이끌고 있는가
까마귀와 비둘기가 보여주는 풍경이
내 불운을 대신할 징조가 될 수 있는가
나에게도 한순간에 조종이 울릴 수 있지만
누군들 한 치 앞의 일을 알겠는가
생각할 때, 신호는 바뀌고
음흉한 까마귀는 날아가고
내 머리에서도 불길한 생각이 떠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