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랑쉬 오름에는 우레비가 내리고

- 강요배의 그림 ‘우레비’에 부쳐

by 밤과 꿈


아픔이 자라는 땅, 다랑쉬 오름에는

자주 그렇듯 오늘도

하늘 가득 먹장구름이 드리우고

마파람이 땅을 일으킨다

하늘에서 번갯불이 번쩍이고

우레 소리와 함께 장대비가 내려

땅을 적시며 흘러내리는데


지옥 같았던 그날도 오늘처럼

귀를 아프게 때리는 우레 소리와 함께

뜨거운 불빛이 사방에서 번쩍였다

동시에, 무고한 생명들 쓰러지고

쓰러져 목숨이 떠나갈 때

더불어 아직 식지도 않은 피가

땅을 적시며 흘러내렸는데


그날에 쓰러진 생명들 모두

썩어서 땅이 되어 쌓였지만

그날에 흐른 피는 흐르고 흘러

내리 잊히지 않을 기억이 되었더라

악몽이 되어 살아나는 기억 속

슬픔은 장대비가 되어 흐르고

뜨거운 분노는 다시 우레가 되어

치솟아 오르는 땅, 다랑쉬 오름에는


오늘은 천지 분간이 힘들 만큼

장하고 요란한 우레비가 내리는데

그날 죽어간 사람들의 공포에 찬

아우성이 환청으로 들리고

살아남은 사람들의 피맺힌 눈물에

봄빛도 붉게 물들어 땅으로 흐르더라




NOTE

최근에 탈북자 출신 국회의원이 제주 4.3 사건이 김일성의 지시에 의해 발생했다고 말해 논란을 빚고 있다. 실제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 국회의원의 말이 그날의 희생자 유족에게는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것임에는 틀림없다. 평생을 빨갱이의 가족이라는 낙인 아래 살아온 그들이기에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 땅에서는 빨갱이라는 말이 천형과도 상통하는 크기로 개인의 삶을 옥죄어 온 굴레이기에. 해방 공간에서 온전히 이념으로 무장된 진짜 빨갱이가 얼마나 될까? 이 땅에서 살아가는 모두에게 이념문제가 얼마나 큰 트라우마이기에 지금도 우리끼리 보수와 진보로 갈라져 싸우고 있다. 진영논리라는 말도 생각 없이 입에서 내뱉고 있다. 그야말로 일전이라도 치르는 줄 알겠다.

제주 4.3 사건이 지금도 유의미한 사건일 수 있는 것은 다른 것에 있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켜야 할 군대에 의해 아무런 검증도 없이 무고한 양민까지 한 마을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것이 문제다. 군대는 이렇게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피아 식별이 힘든 상황에서 행한 불가피한 일이었다고. 전시에서도 민간인에 대한 공격은 금지되어 있다. 비록 인간의 야만성이 이를 곧잘 어기도록 하지만. 게다가 그때 제주는 혼란한 해방공간이었지 전시 공간은 아니지 않은가. 우리 군대는 이와 같이 빨치산을 상대하는 전술 그대로를 베트남으로 옮겨 실행에 옮겼다. 전쟁통의 일이라고, 그것도 남의 나라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억지로 잊고 지나가지만 분명한 범죄 행위라고 할 수 있다. 1980년 광주의 학살이 가능했던 것도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죄의식을 느끼지 못할 만큼 뻔뻔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정당화되지 못하는 죄악은 해소되지 못한 채 이 땅에서 치유되지 못한 아픔으로 남아있다.

화가 강요배의 그림 ‘우레비’를 보고 제주의 아픈 역사를 떠올렸다. 화가는 변덕스러운 제주의 풍경을 발견하고 화폭에 옮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림에서 제주의 역사를 읽어내는 것은 감상자의 몫으로 지나친 곡해는 아니리라 믿는다. 제주의 풍경과 역사가 다르지 않다.



강요배 作 ‘우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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