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절에 대한 공포와 고독을 읽는다

-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장편소설 '야간 비행'

by 밤과 꿈
‘죽음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그의 과업은 바람도 없는 바다 위에서 고장이 난 채 정지해 버린 범선 같았다.

-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장편소설 '야간 비행' 중에서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는 ‘어린 왕자’의 감동으로 먼저 기억되는 작가다. 어른이 읽는 동화라는 말이 어울리게 우리는 ‘어린 왕자’에서 발견하는 보석 같은 순수의 세계에서 삶의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생각하게 된다. 물론 ‘어린 왕자‘가 생텍쥐페리의 대표작이라는 데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지만, 이른바 행동주의 작가로서 생텍쥐페리의 면모를 충실하게 보여주는 것은 소설 ‘야간 비행’일 것이다.

직업적인 비행사였던 생텍쥐페리의 자전적 소설인 ‘야간 비행’은 1920년대 남아메리카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항공 기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1920년대는 상업적 항공산업이 막 발걸음을 내딛던 시기였다. 지금처럼 비행사의 생존을 위한 안전장치가 충분하지 않던 당시 고르지 않은 일기에도 밤을 새워 화물을 운송해야 하는 비행사라는 직업은 목숨을 담보로 하는 위험한 직업이었다.

남극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향하는 파타고니아 항로를 운항하는 우편기를 조종하는 비행사 파비앵의 시선을 담고 있는, 하늘에서 바라보는 사람의 땅은 때때로 서정적인 풍경으로 묘사된다.

더 이상 계곡과 들판이 구별되지 않는 밤에 ‘등대가 바다를 향해 불을 밝히듯 집들이 저마다 거대한 밤을 향해 별처럼 불을 밝히자 대지는 온통 서로를 부르는 불빛으로 뒤덮였다. 인간의 삶을 뒤덮고 있던 모든 것들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파비앵은 밤으로 들어서는 것이 마치 포근하고 아름다운 항구로 들어서는 것 같아 감탄스러웠다.‘

또한 파비앵의 시선을 빌려 생텍쥐페리가 높은 하늘에서 바라보는 것은 단순한 풍경만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도 있다.

‘저 농부들은 자신들의 등불이 초라한 식탁을 비출 뿐이라고 생각하지만, 80킬로미터 거리에 떨어져 있는 곳에서는 그것이 마치 누군가가 무인도에서 바다를 향해 절망적으로 흔들어 대는 등불처럼 보여 그 불빛의 부름에 감동받는 것이다.‘

위험한 비행에 이처럼 낭만적인 감상만 존재할 리가 만무한 일. 태풍을 만나 비행사의 생사를 장담하지 못할 때도 있다. 더불어 험난한 일기 탓에 통신마저 끊겨 지상의 항공사에서는 밤새 비행사의 안전에 마음을 졸이기도 한다.

‘불빛 하나 없는 거리 탓에 비행기는 망망대해의 배처럼 세상으로부터 단절되어 밤의 한가운데를 방황하고 있을 것이다. 오직 새벽만이 그들을 구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 순간 하늘의 비행사는 어떤 심정일까?

‘흔들리는 불빛, 시골 여인숙의 불빛은 거의 쓸모없기는 해도 바다의 등대처럼 육지가 가까이 있음을 입증해 줄 것이다. 하지만 그조차도 보이지 않으니 적어도 어떤 목소리, 이미 그들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온 유일한 목소리가 필요했다.‘

이처럼 태풍을 만난 비행사는 생사의 기로에서 절대 고독을 경험했을 것이다. 그리고 태풍 속에서 좌표를 잃고 헤매면서도 ‘절망적으로 이 별에서 저 별로 곧 돌려줘야 할 쓸모없는 보물을 싣고 다니는’ 자신의 임무를 수행할 생각으로 가득할 것이다.(여기서 별이란 지상에 있는 사람의 마을을 의미한다)


‘일 분 일 초의 시간 속에 마모의 세월이 응축되어 승무원들을 위협하고 있었다. 일 초 일 초가 무언가를 앗아가고 있었다.‘

이처럼 불길한 예감 속에 연료의 한계 최종시간이 지나 파비앵의 생존 가능성은 희박해지고 결국 비행기의 잔해가 발견되기 전까지는 실종으로 처리될 것이다.

파비앵은 사람들의 때로는 쓸모없어질 사연을 싣고 다니는 자신의 책임을 다하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항로 운항 책임자인 리비에르 또한 자신의 책임을 다했다고 할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안데스 산맥 상공에서 발생한 파비앵의 실종에도 불구하고 유럽선 우편기를 비롯한 야간 비행을 멈추지 않는다. 그것이 자신의 일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악천후 하에서의 야간 비행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인간 행동의 의미를 묻고 있다. 하룻밤 사이에 벌어지는 비행기의 실종이라는 사건에 대하여 서로 다른 공간에 존재하는 파비앵과 리비에르라는 두 인물의 행동과 심리적 갈등을 교차해서 보여주면서 생텍쥐페리가 이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드러낸다. 전체의 이익을 위한 가치에 가려진 개인의 희생의 의미를 반성하는 장을 이 소설은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소설 ‘야간 비행’의 주제와는 상관없이 비행기의 실종이라는 사건을 겪으면서 하는 다음과 같은 리비에르의 생각이 개인적으로는 깊이 인상에 남는다.

‘죽음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그의 과업은 바람도 없는 바다 위에서 고장이 난 채 정지해 버린 범선 같았다.’

죽음에 직면한 인간의 모습을 적절하게 묘사한 글이 아닐까 생각한다. 인간에게 죽음이 주는 두려움의 이유를 단적으로 말하자면 ‘단절’에 대한 공포가 아닐까? 그동안 개인의 삶과 연결되어 있었던 가족과의 단절과 자신의 삶을 유지해 왔던 개인적인 가치의 의미 상실이 너무나도 순식간에 이루어진다는 사실, 이처럼 밀려나듯 즉발적인 삶의 퇴장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준비 없이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것이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종교를 탄생시켜 현세의 단절에 대한 공포를 내세의 설정으로 극복하고자 했다. 그러나 내세가 실재하든지, 혹은 실재를 믿든지 간에 현재 구가하고 있는 삶의 급작스러운 단절은 두려운 일이다. 다만 개인에 따라 죽음에 대한 준비가 얼마나 잘 구축되어 있는지에 따라 그 두려움의 차이가 있을 것이다. 언젠가는 맞이할 죽음에 대한 공포를 줄이는 방법이라면 죽음을 삶으로부터 멀게 분리하지 않는 것이다. 가급적이면 죽음을 삶의 이면으로 생각하거나 죽음 또한 삶의 과정으로 생각할 일이다. 내세를 믿는 신앙심도 죽음이라는 단절에 대한 공포를 줄이는 좋은 방안일 것이다.

리비에르의 생각을 떠올리면서 우리의 삶 자체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야간 비행처럼 두렵고도 고독한 여정과 다름이 없다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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