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이 막히도록 아름다운 봄을 보아라

- 장석남의 시 '문 열고 나가는 꽃 보아라'

by 밤과 꿈
문 열고 나가는 꽃 보아라
꽃 위에 펼친 맵시 좋은 구름결들 보아라
옷고름 풀린 봄볕을 보아라

- 장석남의 시 ‘문 열고 나가는 꽃 보아라’ 중에서


장석남 시인의 시를 좋아한다. 시인의 시가 지닌 짙은 서정성에 늘 감탄한다. 시인의 스승 오규원 시인은 장석남 시인의 시에 대하여 ‘김종삼과 박용래 사이 어디쯤엔가 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시인의 시에 대해 이처럼 적절한 표현이 어디 있을까 싶다. 그러나 적절하긴 하지만 적확한 표현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우선 김종삼 시인과는 서정시라는 시의 본질에서 접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김종삼 시인의 시가 고독한 정신이 도달한 고고함의 표현이라면 장석남 시인의 시는 자연을 자연으로서 바라보고 느낌으로써 고고한 경지에 도달한다. 말하자면 자연이라는 사물에 감정을 노골적으로 대입하지 않으면서도 정신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그리고 박용래 시인이나 장석남 시인 모두 자연이라는 시적 대상에 대하여 주로 시를 쓰지만 박용래 시인이 토속적인 서정을 시로 표현한 반면 장석남 시인의 시에서 토속적인 정서는 그다지 발현되지 않고 시인의 서정은 그만큼 세련미를 갖추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두 시인의 경향 차이에서 기인한 측면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두 시인이 활동한 시대의 간극에서 나타난 차이가 더 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장석남의 시집 ‘뺨에 서쪽을 빛내다’에 해설을 쓴 최창근이 언급했듯이 장석남의 시에 대해서는 ‘추억 속으로 혹은 고향으로 가는 언어들’(홍정선), ‘이곳의 삶과 가장 멀리 떨어진 옛날의 삶, 초월의 삶을 꿈꾸는 상상력‘(진형준), ‘비관적 전망대에 서 있는 세계’(최하림), ‘윤리적 거리에서 비롯되는 서정’(김연수) 등의 평이 있어 왔다.

마찬가지로 개인적으로도 장석남 시인의 시에서 먼저 시간적, 공간적 거리감을 감지하게 된다. 이는 시적 대상에 대한 관찰자의 시선을 시인이 줄곧 유지하기 때문일 것이다. 심리적 대입이 없이 관찰자의 시각을 유지한다는 것은 뛰어난 상상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자칫 단조로워질 수도 있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다행히 시인의 시는 풍부한 상상력이 있어 이를 극복해내고 있다. 물론 시인의 시를 모두 읽은 것도 아니고, 근본적으로 감정을 완전히 배제한 시의 창작이라는 것이 가능한 일도 아니라서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 자체가 부당한 것이지만, 시인의 시에서 시간적, 공간적인 거리가 적절하게 유지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게다가 시인의 시력이 붙으면서 김연수가 말했듯이 심리적 거리까지 더해져 보다 다채로운 서정의 세계를 펼치게 되는 것이다. 특히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인 ‘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에서부터 ‘죄의식’이 ‘생활 속의 비애로 전이’(최창근)되는 시들이 등장하고 있다.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인 ‘뺨에 서쪽을 빛내다’에서도 ‘싸리꽃들 모여 핀 까닭 하나는’와 같은 시에서 시인의 심연에 드리운 죄의식을 확인할 수 있다.


‘종소리 그치면 흰 발자국을 내며 개울가로 나가 손 씻고 낯 씻고 내가 저지른 죄를 펼치고 분노를 펼치고 또 사랑을 펼쳐요 하여 싸리꽃들 모여 핀 까닭의 다른 하나를 알아내곤 해요‘ (시 ‘싸리꽃들 모여 핀 까닭 하나를’ 중에서)


그러나 이 경우에도 죄의식을 직접적으로 표출하기보다는 심리적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다채로운 이미지의 심리적 풍경을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같은 시집에 수록된 시 ‘문 열고 나가는 꽃 보아라’를 좋아한다.


‘문 열고 나가는 꽃 보아라

꽃 위에 펼친 맵시 좋은 구름결들 보아라

옷고름 풀린 봄볕을 보아라‘ (시 ‘문 열고 나가는 꽃 보아라’ 중에서)


이런 선언적인 문장으로 이 시는 시작된다. 따라서 이 시의 주제는 이처럼 선언적인 삼 행의 문장으로 이루어진 일 연 안에 집약되어 있다. 봄이라는 시간과 전원이라는 공간에 만개한 꽃과 하늘에 기분 좋게 드리운 뭉게구름, 그리고 다사롭게 대지를 비추는 봄볕이 시를 구성하는 이미지를 이루고 있다. 봄을 맞이하는 환희를 이처럼 간결하게, 그리고 관능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에 놀란다. 그리고 시인의 역량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작약밭에서 들리는, 어떤 늙은 할머니의 말소리’를 ‘업고 가는 중인/ 업혀가는 중인/ 아침 바람을 보아라‘와 같은 시구나 ‘널빤지 위에 누워 낮잠 들어가는 대목수의 꿈속으로 들어가/ 잠꼬대의 웃음으로 배어나오는‘과 같은 시구에서 발현하는 시인의 복합적인 이미지의 조합과 간결한 표현을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이 경이롭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풍경화를 보듯 시인이 구사하는 정경을 대할 때 전혀 생경하지 않은 것은 그만큼 시인이 문장으로 표현하는 시상과 독자가 느끼는 시의 이미지가 탄탄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시의 선언적인 서두에서 받게 되는 인상의 감동이 이 시의 전부를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시인에게는 실례가 되는 말이겠지만 일 연 이후의 시행이 사족처럼 느껴진다. 그만큼 이 시는 시작에서부터 이미 충분한 아름다움으로 시를 읽는 사람을 숨 막히게 한다. 이 시는 환희에 차서 소리친다. 숨이 막히도록 아름다운 봄을 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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