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 절망에도 버리지 못하는 희망의 다른 이름

- 로맹 가리의 단편소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by 밤과 꿈
“이 새들이 모두 이렇게 죽어 있는 데에는” 하고 그는 말을 이었다. “이유가 있을 거요.”

- 로맹 가리의 소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중에서


프랑스의 작가 로맹 가리의 소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뿐만 아니라 그의 모든 소설이 상처받은 인간의 내면을 드러낸다. 그리고 밝히기 힘든 상처를 노출함으로써 오히려 상처를 감싸 안는다.

로맹 가리의 소설은 인간이 지닌 허위의식에 대한 고발이며, 이를 통해 고독이라는 인간 내면의 본질을 밝힌다. 그런 면에서 로맹 가리의 작품 저변에는 휴머니즘이 자리 잡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로맹 가리는 인간의 허위의식을 고발하기 위해 풍자와 반전이라는 강렬한 소설 표현을 사용, 1956년에 ‘하늘의 뿌리’로 처음 공쿠르 상을, 1975년에는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생애 두 번째로 공쿠르 상을 수상한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를 읽은 사람은 누구나 이 소설이 안겨주는 쓸쓸한 풍경, 소설의 배경이 되는 풍경뿐만 아니라 독자의 마음에 호소하는 심리적 풍경까지를 포함한 쓸쓸한 여운에 당혹해하면서도 깊은 인상을 받게 된다.

소설의 주인공 자크 레니에는 ‘조금 시적이고 조금 몽상적이지만…… 스페인 내전에서, 프랑스의 레지스탕스에서, 쿠자에서 전투를 치른 다음, 모든 것이 종말을 고하는 안데스 산맥 발치의 페루 해변으로 몸을 피한다. 마흔일곱이라는 알아야 할 것은 모두 알아버린 나이’‘물가로 밀려온 고래의 잔해, 사람의 발자국, 조분석으로 이루어진 섬들이 하늘과 흰빛을 다투고 있는 먼바다에 고깃배 같은 것들이 이따금 새롭게 눈에 띌 뿐, 모래언덕, 바다, 모래 위에 죽어 있는 수많은 새들, 배 한 척, 녹슨 그물‘이 풍경을 이루는 곳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이곳 페루의 외딴 바닷가에서는 언제나 때가 되면 새들이 죽기 위해 먼 길을 날아와 죽어간다. 하지만 그는 ‘새들이 왜 먼바다의 섬들을 떠나 리마에서 북쪽으로 십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이 해변에 와서 죽는지’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설명해 주는 사람도 전혀 없었다.

그렇게 지상에서의 임무를 마치고 죽시 위해 새들이 찾아오는 바닷가는 희망의 끝이면서 모든 것이 끝나는 세상의 끝이라고 하겠다. 새들과 마찬가지로 자크 레니에 또한 ‘자신의 임무를 다했다고 할 수 있었다.’ 스페인 내전에서 국제여단의 일원으로서, 2차 세계대전에서는 레지스탕스로서, 그리고 쿠바혁명에 가담함으로써 평생을 이상을 따라 헌신한 레니에는 이곳에서 스스로를 세상과 단절시키고자 했다. 이제 그는 예전처럼 열정적으로 이상을 추구하기에는 많이 지쳤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이제 아무에게도 편지를 쓰지 않았고, 누구에게서도 편지가 오지 않았으며, 친하게 지내는 사람도 없었다.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끊으려는 그 불가능한 일을 하려 할 때 사람들이 언제나 그러는 것처럼 그 역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끊어버렸던 것이다.’


이렇게 세상과 단절한 채 지내던 레니에에게 변화를 가져올 사람들이 나타난다. 해골 같은 사내와 온몸에 붉은색과 노란색을 칠한 팬티만 입은 사내, 그리고 거구의 흑인 사내가 술에 취한 듯 모래언덕에 나뒹굴고 있었다. ‘사육제의 마지막 물결이 이곳 모래 위까지 밀려온 모양이었다.’

이들이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이내 눈에 띈 여자, 에메랄드빛 원피스에 초록색 스타프를 손에 들고, 고개를 뒤로 젖혀 맨 어깨 위에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채 물속에 잠긴 스카프를 끌며 암초를 향해 걷고 있는 여자, 허리에까지 물이 차오르는 바닷속으로 생명을 던지고자 하는 여자를 구한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섬세하고 창백한 얼굴과 진지하고 커다란 두 눈을 가진 여자는 ‘새벽 여섯 시, 죽은 새들로 뒤덮인 이 후미진 해변에서 금과 다이아몬드와 에메랄드로 치장한 채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어디서 온 것일까’라는 의문을 가지는 순간 레니에는 자신의 삶에 여자가 틈입하는 것을 용인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레니에가 ‘대책 없는 어리석음이라고 스스로 이름 붙인 그 무엇에 다시 점령당하고 만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의 내부에 있는 무언가가 체념을 거부하고 줄곧 희망이라는 미끼를 물고 싶어 했다.‘

그녀가 이곳 ‘사람이 거의 찾지 않는 세상 끝에 있는 카페에 머물기를 원하는 순간 ‘불현듯 수십 년간의 고독이 한꺼번에 몰려와 그의 어깨를 짓누르고, 아홉 번째 물결이 그를 쓰러뜨리고는 그녀와 함께 먼바다로 그를 휩쓸어갔다.’

레니에는 ‘고독의 아홉 번째 파도’에 휩쓸리기를 거부하고, 다만 그녀의 목에 얼굴을 묻고 몇 초만 더 젊음을 호흡하고자 했지만 파도에 대책 없이 휩쓸린 것이다.

‘너무나도 많은 새들이 모래언덕으로 와서 숨을 거두는 것을 지켜봐 오지 않았던가. 그중 가장 아름다운 새 한 마리를 구하고 보호해 여기 세상의 끝에 자신과 더불어 머물게 함으로써, 종착점에 이른 자신의 삶을 성공적인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레니에는 여자를 보는 순간부터 했으리라.


그렇다면 로맹 가리가 소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에서 말하는 고독은 절망에 이르지 않은, 한가닥 떨치지 못하는 희망의 다른 이름일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레니에는 희망의 끝을 보기 위해 세상의 끝자리를 찾아다니지만 그동안 여덟 번의 고독을 경험하고, 다시 세상의 끝을 찾아오지만 다시 아홉 번째의 고독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여자는 모래언덕에서 술에 취해 나뒹굴던 세 사람에게 아내인 여자를 강간할 것을 사주한 남편과 함께 길을 떠나고, 여자가 레니에의 카페를 뒤돌아보지만 ‘그는 이제 그곳에 없었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카페는 비어 있었다.’

아마도 레니에는 진정한 희망의 끝, 세상의 끝을 찾아 떠났을 것이다. 그것은 ‘이 새들이 모두 이렇게 죽어 있는 데에는…… 이유가 있’으리라는 의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길일 것이다. 그리고 이 의문은 다름 아닌 로맹 가리가 찾고자 했던 의문이지 않았을까. 그리고 권총으로 자살, 스스로 생을 마감한 로맹 가리는 자신에게 던지는 의문에 대한 답을 찾았을까. 적어도 로맹 가리는 희망의 끝을 찾았기에 생의 마지막 순간에 고독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삶이란 쓸쓸한 내면의 풍경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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