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혹은 심리적 공간에 대한 안내

- 김승옥의 단편소설 '무진기행'

by 밤과 꿈
버스가 산모퉁이를 돌아갈 때 나는 ‘무진 Mujin 10Km’라는 이정비(里程碑)‘를 보았다.

- 김승옥의 단편소설 ‘무진기행’ 중에서


한국 소설문학의 1960년대는 김승옥이라는 소설가의 등장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흔히 말한다. 우리 소설이 한국전쟁이라는 역사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새로운 감각이 돋보이는 김승옥 소설은 문단과 독자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이전의 우리 소설이 시대와의 관계에서 파편화되는 개인의 삶을 주로 고찰해 왔다면, 김승옥의 소설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겪게 되는 개인적 갈등을 주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전에 접할 수 없었던 것으로 현재 한국소설의 주된 흐름인 ‘사적 소설’(어떤 평자는 이를 일컬어 ‘사소설’이라고 지칭하지만, 일본의 주류 소설인 ‘사소설(私小說)‘과 혼동을 피하기 위해 구별한다)의 선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김승옥의 작가 정신을 이렇게 단순화해서 말한다면 아쉬움이 있다. 그의 소설은 정신적, 성적 순수와 타락이라는 양가성의 고찰을 주제로 하고 있다. 김승옥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소설 ‘무진기행’ 또한 성적 순수와 타락, 혹은 성스러움과 속됨의 양가적 작품 세계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소설 속 공간 ‘무진’은 외지인에게 자랑할 명산물이 마땅하게 없는 시골이다. 바다가 가까이 있지만 수심이 얕은 데다가 수평선이 보이지 않아 바다라기는 볼품이 없고, 그럴듯하게 농사를 지을 평지도 마땅하지 않은 곳이 무진이다.

그러나 한 가지 명산이 있다면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해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는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 버리고 없었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女鬼)가 뿜어내놓은 입김과 같았다.‘

작가의 섬세한 문장은 독자로 하여금 소설의 심리적 공간에 몰입하게 만든다. 소설의 도입부에 해당하는 이 문장에서부터 독자들은 작가가 묘사하는 무진이라는 장소가 일인칭 화자에게는 심리적 공간임을 깨닫게 한다. 얼핏 보기에 무진은 화자에게 갇힌 공간으로 보이지만 오히려 심리적으로 열린 공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무진에 오기만 하면 내가 하는 생각이란 항상 그렇게 엉뚱한 공상들이었고 뒤죽박죽이었던 것이었다. 다른 어느 곳에서도 하지 않았던 엉뚱한 생각을 나는 무진에서 아무런 부끄럼 없이, 거침없이 해내곤 했었던 것이다.’

따라서 화자에게는 무진을 벗어나 일상이 이루어지는 현실 공간이 오히려 닫힌 공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화자는 장인의 제약회사에 다니면서 주주총회에서 전무로 승진할 예정으로 주변의 논란의 피하기 위한 아내의 권유로 어릴 적 고향인 무진으로 향한 것이다.

‘내가 나이로 좀 든 뒤로 무진에 간 것은 몇 차례 되지 않은 무진행이 그러나 그때마다 내게는 서울에서의 실패로부터 도망해야 할 때거나 하여튼 무언가 새 출발이 필요할 때였었다. 새 출발이 필요할 때 무진으로 간다는 그것은 우연이 결코 아니었고 그렇다고 무진에 가면 내게 새로운 용기라든가 새로운 계획이 술술 나오기 때문인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무진에서의 나는 항상 처박혀 있는 상태였었다.‘

그렇다면 무진은 화자에게 닫힌 공간일 수 있다. 열린 공간이면서도 닫힌 공간인 무진은 작가 김승옥의 소설에서 보이는 양가적 가치가 집약되어 있는 곳이다. 한국전쟁의 와중에 정착, 억눌린 분위기에서 홀어머니와 함께 한 성장과정은 모성에 의해 억눌린 남성상과 그 왜곡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성장한 지금은 경제권을 가지고 있는 아내라는 또 하나의 모성에 의해 억눌려 있다. 뿐만 아니라 화자가 무진에서 만나는 인물들과의 관계에서도 양가적 가치가 길항작용을 일으켜 갈등 구조를 형성하게 된다. 특히 무진의 음악교사인 하인숙과의 연애 감정은 성스러움과 속됨의 양가적 가치가 극명하게 충돌하는 장면이다.


그러나 화자는 아내로부터 ‘27일회의참석필요, 급상경바람 영’이라는 내용의 전보를 받고, 아내가 있는 서울을 떠나서 찾았던 억압된 모성으로부터의 자유를 포기하고 현실과 타협하고자 한다.

‘한 번만, 마지막으로 한 번만 이 무진을, 안개를, 외롭게 미쳐가는 것을, 유행가를, 술집 여자의 자살을, 배반을, 무책임을 긍정하기로 하자. 마지막으로 한 번 만이다. 꼭 한 번만.’

무진에서 만든 인연인 하인숙에게 망설임 끝에 아무런 기별도 없이 무진을 떠나면서 소설의 마지막에서 화자는 다음과 같은 이정표를 본다. ‘당신은 무진읍을 떠나고 있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그리고 ‘심한 부끄러움’을 느낀다.

이 소설의 마지막도 인상적이지만 ‘버스가 산모퉁이를 돌아갈 때 나는 ‘무진 Mujin 10Km’라는 이정비를 보았다’라는 소설의 첫 문장이 매우 인상적이다. 이 소설을 처음 읽는 독자에게는 그다지 감흥을 느끼지 못할 문장이겠지만, 다시 소설을 읽을 때마다 묘한 감흥으로 소설 공간으로 빠져들게 한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마음에 자신의 무진을 이미 설정하고 있거나 그리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현실의 도피처로서 언제든지 찾고 싶으면서도 떠나고 싶은 곳, 닫힌 공간이면서 열린 공간인 도피처를 필요로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롯이 남는 부끄러움에도 불구하고. 무진으로 안내하는 이정표는 그 그리움의 자리로 안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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