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창섭의 단편소설 '비 오는 날'
무덤 속 같은 이 방 안의 어둠을 조금이라도 구해주는 것은 그래도 빗물 소리뿐이었다.
- 손창섭의 단편소설 ‘비 오는 날’ 중에서
아침에 침실에 딸린 작은 덧창으로 들리는 빗소리에 잠을 깬다. 잠이 깨어 의식은 맑아오지만 몸을 일으켜 세우기가 쉽지 않다. 나이 탓이리라. 오늘처럼 비가 내리는 날이면 삭신이 쑤신다는 말을 젊었을 땐 이해하지 못했었다. 빗줄기를 따라 몸까지 눅눅하게 녹아내리는 날을 싫어하지는 않는다. 토요일이라면 아무 생각 없이 지겨워질 때까지 몸도 마음도 녹아내릴 수 있을 것 같다. 요즘처럼 창호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외부와 차단하며 살아가는 현실에서 작으나마 덧창이 있어 세상의 소리를 들으며 마음으로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고, 소소한 행복이다.
그리고 오늘처럼 비가 내리는 날이면 생각나는 소설로 손창섭의 ‘비 오는 날’이 있다. 오래전에 처음 이 소설을 읽었을 때 받은 강렬한 인상은 손창섭이라는 소설가를 마음에 깊이 각인하게 되었다. 이 소설이 잊히지 않는 것은 한국전쟁을 시대 배경으로 암울한 시대의 모습을 이토록 처절하게 기록한 소설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전후의 암울한 시대상을 소재로 한 또 하나의 소설로 이범선의 단편소설 ‘오발탄’이 있고, 소설 ‘오발탄’이 가진 상징성이 최인훈의 장편소설 ‘광장’과 마찬가지로 대표적인 전후 문학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손창섭의 ‘비 오는 날’이 그리는 어둡지만 사실적인 시대상은 경험하지 못한 시대에 대한 이해의 단초가 되기에 충분하다.
사실 지난 시대의 소설을 읽을 때 예스런 어투와 문장이 어색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시대 감각에 뒤떨어진 문장이 세련된 것은 아닐지라도 우리는 지난 시대의 소설을 읽음으로써 당시의 정서를 느끼고 공감하는 묘미를 알아갈 수 있다. 손창섭의 소설 ‘비 오는 날’이 1953년 문예 지의 11월호에 처음 발표되어 상당히 오래된 소설로서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어휘가 다수 보이고, 문장의 참신함을 기대할 수 없지만 그다지 예스럽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그것은 역사적 상황 변화의 와중에서 절망하는 뒤틀린 인간상이 충격일 만큼 너무도 강렬한 인상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낯설게 다가오는 캐릭터의 성격이 시대의 차이에서 오는 빛바랜 문장의 평이함을 덮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 속 화자인 원구는 피난지 부산에서 친구인 동욱과 여동생 동옥 등 남매와 재회한다. 목사를 꿈꾸던 동욱은 부산의 거리에서 원구를 만나 ‘밥보다는 먼저 술을 먹고 싶어 했다…… 잔을 넘어 흘러내리는 한 방울도 아까워서 동욱은 혀끝으로 잔굽을 핥았다.’ 원구는 기독교 가정에서 성장해 찬양대를 지도하기도 했던 동욱을 기억하고 교회에 나가냐고 묻는다 이에 동욱은 ‘멋쩍게 씽긋 웃고 나서 이따금 한 번씩 나가노라고 하고, 그런 때는 견딜 수 없는 절망감에 숨이 막힐 것 같은 날’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동욱은 음식점을 나와 원구와 헤어질 무렵에 ‘두 손을 원구의 양 어깨에 얹고 자기는 꼭 목사가 되겠노라고, 했다. 그것이 자기의 갈 길인 것 같다고 하며 이제 새 학기에는 신학교에 들아가겠다’고 말한다. 그렇게 동욱은 피난지 부산에서의 고단한 현실에 파괴된 삶 속에서도 가냘프게 꿈을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는다. 막막하나마 꿈을 붙들고 있어야만 현실을 견딜 수 있지 않았을까?
동욱의 여동생 동옥은 고단한 현실과 더불어 소아마비를 앓아 몸이 불편하다. 이런 삶의 조건은 그의 성격을 방어적이고 뒤틀리게 한다. 이런 동옥의 성격은 어릴 때부터 알고 있었던 원구에게도 모멸감과 조소가 뒤석인 태도를 보인다.
이와 같은 등장인물의 성격에 배경 묘사가 더하여 음울한 현실을 극대화하게 된다.
‘한 귀퉁이에 버티고 있는 두 개의 통나무 기둥이 모로 기울어지려는 집을 간신히 지탱하고 있었다. 기와를 얹은 지붕에는 두세 군데 잡초가 반길이나 무성해 있었다.‘
폐가와 같이 다 쓰러져가는 공간에서 살아가는 동욱과 동옥의 모습은 전후의 피폐한 나라에서 살아가는 우리 국민들의 모습을 대표한다.
‘안개비 속으로 바라보이는 창연한 건물은 금방 무서운 비명과 함께 모로 쓰러질 것만 같았다’는 모습은 1950년대 우리나라의 모습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언제 쓰러질지도 모를 집의 ‘창문 안에 늘인 거적을 캔버스 삼아 그림처럼 선명히 떠올라 있는 흰 얼굴’ 즉, 동옥의 우울한 모습은 전쟁으로 지치고 피폐해진 국민 모두의 자화상일 것이다.
소설 ‘비 오는 날’에서 비는 이러한 시대 상황과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지붕에서 비가 새고 다 쓰러져가는 동욱과 동옥의 방에서 원구는 생각한다.
‘무덤 속 같은 이 방 안의 어둠을 조금이라도 구해주는 것은 그래도 빗물 소리뿐이었다’라고.
손창섭은 원구의 입을 통해 ‘후드득 후드득 유리 없는 창문으로 들이치는 빗소리를 들으며, 사십 주야를 비가 퍼부어서 산꼭대기에다 배를 묶어둔 노아네 가족만이 남고 세상이 전멸을 해버렸다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대홍수‘를 들어 우리나라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묘사한다.
손창섭이 그리는 절망적인 현실은 눅눅한 비의 이미지 그대로 슬프고 우울한 것이다. 이것 만으로도 소설 속 현실은 아픈 것이지만, 동욱과 동옥이 원구가 모르는 이유로 사라지면서 소설 공간은 미래에 대하여 닫힌 공간으로 남게 된다. 사실 원구의 계속된 방문으로 동옥이 냉소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삶의 활력을 찾아가고 있었다는 점에서 소설은 비참한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시된 그 방향을 잃었다는 사실에 이 소설이 두고두고 무겁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는 소설의 서두에서 이미 언급되고 있다.
‘이렇게 비 내리는 날이면 원구의 마음은 감당할 수 없도록 무거워지는 것이었다…… 빗소리를 들을 때마다 원구에게는 으레 동욱과 그의 여동생 동옥이 생각나는 것이었다. 그들의 어두운 방과 쓰러져가는 목조건물이 비의 장막 저편에 우울하게 떠오르는 것이었다…… 원구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동욱과 동옥은 그 모양으로 언제나 비에 젖어 있는 인생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