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부끄럽지 않은가

- 김광규의 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by 밤과 꿈
아무도 이젠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적잖은 술과 비싼 안주를 남긴 채
우리는 달라진 전화번호를 적고 헤어졌다

- 김광규의 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중에서


올해의 4. 19를 별생각 없이 맞이하고 지나쳤다. 들어가는 나이만큼 시간이 덧없이 흘러가는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우리의 정치 현실이 모든 혁명의 가치가 더 이상은 유효하지 않다는 것에 대한 실망과 정치적 무관심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는 정치가 실종된 현실을 경험하고 있으며, 이는 정치인들과 정당들의 정치력 부재가 낳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는 일반 대중들의 정치에 대한 환멸을 부르고 소수에 의한 팬덤 정치라는 비정상적인 정치 행태에 영향을 받는 기현상을 제도권 정치에 이식시키게 된다. 이처럼 결코 긍정적으로 볼 수 없는 정치 현실이 우리 정치사의 가슴 뜨거웠던 현장에 대한 감회마저 무디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물론 4. 19 혁명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으로 이에 대한 직접적 감회가 있을 리는 만무하다. 그렇지만 1970~80년대를 지나오면서 정치사의 암흑기와 민주화 과정을 겪었기에 4. 19라는 역사 공간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김광규 시인의 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는 1979년 문학과 지성사에서 간행된 시집 ‘우리를 적시는 마지막 꿈’에 수록되어 있다. 이 시에 등장하는 시적 화자와 그 친구들은 이십 대에 대학생으로서 4. 19를 직접 겪은 세대다.

‘4. 19가 나던 해 세밑/ 우리는 오후 다섯 시에 만나/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불도 없이 차가운 방에 앉아/ 하얀 입김 뿜으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4. 19를 경험한 이들은 조금은 들뜬 마음으로 새로운 시대에 대한 기대와 열망을 표출하고 있다.

‘어리석게도 우리는 무엇인가를/ 정치와는 전혀 관계없는 무엇인가를/ 위해서 살리라 믿었던 것이다‘

뒤늦은 깨달음처럼 정치 상황은 군사 정권의 등장으로 전혀 개선되지 않았고, 4. 19라는 민주 혁명은 미완의 과제로 남았던 것이다.

‘그로부터 18년 오랜만에/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 되어/ 혁명이 두려운 기성세대가 되어/ 넥타이를 매고 다시 모였다’

젊은 날의 열정은 사라진 채 생활을 걱정하는 소시민이 되어,

‘모두가 살기 위해 살고 있었다/ …… 적잖은 술과 비싼 안주를 남긴 채/ 우리는 달라진 전화번호를 적고 헤어졌다‘

몇몇 사람은 함께 학창 시절의 추억이 깃든 동숭동 길을 걸으며(김광규 시인은 동숭동의 서울대학교 문리대에서 독문학을 공부했다),

‘우리의 옛사랑이 피 흘린 곳에/ …… 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 아직도 남아 있는 몇 개의 마른 잎 흔들며/ 우리의 고개를 떨구게 했다/ 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러워했다. 이 시가 1970년대 후반에 쓰였으리라고 할 때 아마도 시인 자신일 시적 화자는 4. 19 당시의 정의감과 열정이 사라진 자신들의 모습과 함께 유신 독재의 그늘에서 여전히 요원한 정치적 민주화에 대한 부끄러움을 자문하면서도

‘바람의 속삭임 귓전으로 흘리며/ 우리는 짐짓 중년기의 건강을 이야기했고/ 또 한 발짝 깊숙이 늪으로 발을 옮겼다’


혁명은 혁명을 수행한 당사자로부터 배반당한다고 한다. 그것이 역사가 증명하는 인간의 오류다. 4. 19의 주역들 중 많은 이들이 이후에 정치에 투신, 일부는 4. 19의 정신을 저버렸다. 그리고 1980년대 이룩한 민주화의 주역들이 또한 정치에 투신했지만 우리 정치는 참담한 지경에 도달했다. 진보는 진보대로, 보수는 보수대로 정치는 올바른 방향을 잃었다. 부끄럽지 않은가. 나 또한 살벌했던 1980년대 초 대학을 다니며 그 시대를 고민했었기에 이 부끄러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래서 오늘이 무척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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