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재종의 시 '날랜 사랑'
발딱발딱 배 뒤집어 차고 오르는
저 날씬한 은백의 유탄에
푸른 햇발 튀는구나
- 고재종의 시 ‘날랜 사랑’ 중에서
내가 그때 이랬다면 어땠을까? 흔하게 듣는 말이다. 살아생전에 아버지께서도 그랬다. 아버지의 생 가운데 어느 시점인지는 모르지만, 아버지께서는 그때, 그 땅을 샀었어야 했는데 가진 돈이 부족해서 사지를 못했다고. 아마도 그 땅은 시간이 지나 금싸라기 같은 땅이 되었나 보다. 평생을 공직에 계셨던 아버지는 경제적으로 가난하지는 않았지만 크게 여유로운 형편으로 사셨던 것도 아니었다. 그랬기에 떨쳐내지 못하는 후회를 평생 안고 사셨을 것이다. 그만큼 아버지는 이재에 능력이 있으신 분은 아니었다. 아버지께서 조금이라도 이재에 밝았다면, 그래서 그 땅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리라는 확신이 있었다면 무슨 수를 내어서라도 그 땅을 손에 넣었을 것이다. 비단 아버지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는 흔히 더딘 판단으로 두고두고 후회할 일을 만들곤 한다. 사실 우리의 삶은 대부분 후회할 일의 목록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불완전한 존재이어서 우리의 삶도 완전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다소 종교적인 말이지만, 우리에게 죽음이라는 종말이 예정되어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우리의 삶은 불완전한 것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처럼 뒤늦은 후회는 무엇보다도 사랑에서 자주 확인하는 것이다. 물론 부모에 대한 사랑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부모의 부재는 반드시 뒤늦은 후회를 가져온다. 너무 당연한 말은 말고, 남녀 사이의 사랑에 대하여 말해 보자. 내 경우에 이십 대의 첫사랑이 실패한 원인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확신의 부재’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첫사랑인 그녀의 마음을 몰랐던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다만 내가 판단한 그녀의 마음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말하자면 스스로 한 생각을 믿지 못했던 것이다. 결코 내가 자존심을 내세워 첫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때 내가 여자에 대한 경험은 없었지만 경험 부족이 실연의 모든 이유가 될 수는 없었다. 나는 매사에 자신도 모르게 경우의 수를 따지는 경향이 있었다. 언제나 생각이 많았다. 그리고 하는 생각의 수렁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일이 빈번했다. 언젠가부터 사람의 일에는 생각보다는 행동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떤 일이던 부정적인 생각으로 실행하지 못하고 뒤늦게 후회하는 것보다는 적은 가능성이라도 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는 판단을 믿고 실행하는 편이 더 좋다는 것을. 그 결과가 나쁘더라도 최소한 또 다른 도전을 위한 개선책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녀 사이의 사랑도 마찬가지. 자신의 마음을 믿고 앞으로 나아갈 일이다. 적어도 자신의 감정에 솔직할 수 있다. 아내를 만나기 전 만났던 여자들이 있다. 첫사랑의 실패 이후 연애에 실패한 적은 없었다. 다만 내가 함께 할 인연이 아니라고 판단이 되면 서둘러 인연을 정리했다. 그것이 피차 상처가 적을 일이기 때문이다. 무슨 자랑이라고 하는 말이 아니라 그만큼 여자의 마음을 알게 되었고, 또한 사랑이든 인생이든 날랜 판단과 결정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살아가면서 깨닫게 되었다.
고재종 시인의 시 ‘날랜 사랑’을 읽고 두 가지 면에서 인상이 깊었다. 먼저 선명하게 떠오르는 이미지가 이 시를 성공적이게 한다. 그리고 이 시가 지닌 언어의 탄력이 또한 놀랍다.
‘세찬 여울물 차고 오르는/ 은피라미떼 보아라’
산란기를 맞아 알을 낳기 위해 물을 거슬러올라 상류로 향하는 피라미 무리의 모습을 묘사한 것인데 문장이 지닌 탄력이 리드미컬하다. 다만 산란을 위해 하천의 상류로 향하는 것은 송어와 같은 회유성 물고기에서 볼 수 있는 특성이고, 피라미는 수질이 비교적 양호한 하천의 중류에 서식하면서 바닥에 산란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어쨌든 이런 사실이 이 시의 문학성을 훼손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러한 시의 탄력은 ‘발딱발딱 배 뒤집어 차고 오르는’이라는 부분에 이르러 피라미떼(?)의 역동적인 모습이 강조된다. 무엇보다도 감탄하게 되는 문장은 바로 뒤를 이어 등장하는 ‘저 날씬한 은백의 유탄에/ 푸른 햇발 튀는구나’라는 두 행으로 이루어진 문장이다. ‘유탄’이라는 표현에 이르러 이 시의 역동성이 정점에 도달한다. 이에 ‘날씬한’이라는 수식이 더하고 있다. 또한 ‘튀는 푸른 햇발’이라니, 얼마나 기막힌 표현인가. 하천을 역류하여 계곡을 거슬러, 차고 오르는 피라미떼(?)의 목숨을 건(송어는 하천의 상류에서 산란 후 기진맥진하여 생명을 다한다) 몸부림에 튀는 물살에 비추는 햇살을 묘사한 것으로 보이는데, 두 행의 대비가 오히려 시너지가 되어 이 시의 역동성을 배가한다.
‘오호, 흐린 세월의 늪 헤쳐/ 깨끗한 사랑 하나 닦아 세울/ 날랜 연인아 연인들아’
10개의 행으로 나누어진 1연이 그림을 보는 듯한, 생생한 묘사로 이루어져 있다면 3개의 행으로 이루어진 2연은 시적 화자의 감흥을 나타내고 있다.
아마도 시인은 가을에 산란기를 맞이한 물고기(송어나 은어와 같은 회유성 물고기의 산란기가 가을이다)의 민물 회유를 소재로 이 시를 썼을 것이다. 그리고 산란기라는 점에서 사랑이라는 주제를 착안했으리라.
그러나 시인은 이 시의 주제를 단순한 물고기의 생태에 국한시키지 않았을 것이다. ‘흐린 세월의 늪’을 우리 인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피라미는 붕어나 메기처럼 탁한 하류에 살지 않는다. 송어는 생의 대부분을 바다에서 보낸다. 물론 바다는 유구한 세월을 거쳐 형성되었고 늪과 같이 깊고 어두운 위험을 포함하고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이 시의 범주를 단순하게 물고기의 생태에 한정 짓기에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나는 시인의 상상력도 찰나의 섬광처럼 명쾌해야지 모호하면 안 된다고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의 1연 1행인 ‘장마 걷힌 냇가’에서 연상되었을 2연의 1행 ‘오호, 흐린 세월의 늪 헤쳐’의 문맥을 볼 때 나는 다른 사람의 동의가 없더라도 이 시를 우리의 인생과 연관 지어 해석한다. 인생의 가장 큰 주제가 사랑이 아닐까. ‘날랜 사랑’이라는 제목 만으로도 마음이 설레고 활력이 넘치는 듯하다. 고재종 시인의 시‘날랜 사랑’이 구현한 공간이 매우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