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 M. 몽고메리의 장편소설 '빨강머리 앤'
하느님께서 하늘에 계시니 세상은 평안하다.
- L. M. 몽고메리의 소설 ‘빨강 머리 앤’ 중에서
루시 모드 몽고메리(L. M. Montgomery)의 성장 소설 ‘빨강 머리 앤’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초록 지붕 집의 앤(Ann Of Green Gables)’이라는 원제를 가진 이 소설을 읽지 않은 사람이라도 일본에서 제작한 애니메이션을 보고 빨간색 머리카락을 가진 앤이라는 고아 소녀의 성장기에 큰 감동을 받았으리라. 제대로 된 완역본이 나오기 전 이 애니메이션 TV 시리즈로 먼저 스토리를 접한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가 젊은 시절 제작에 참여하기도 한 이 애니메이션이 워낙 원작에 충실한 것이어서 이후에 책으로 읽었을 때 애니메이션의 장면들이 쉽게 떠올려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소설 ‘빨강 머리 앤’의 무대는 캐나다 프린스 에드워드 섬의 작은 마을 에이번리로서 이곳에 살고 있는 매슈와 마릴라, 커스버트 집안의 남매와 착오로 입양된 고아 앤 셜리가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가 이 소설을 내용이다. 우리는 고아라는 외로운 처지를 딛고 새로운 현실에 적응해 가는, 감수성이 풍부하면서도 강인한 성격을 지닌 앤의 삶을 긍정하고 사랑하는 모습에서 진한 감동을 느낀다. 긍정적인 성격을 지닌 앤 이지만 고아를 바라보는 편견이 없지 않았고, 고아원에서 성장한 외로움을 숨지지 못하는 앤의 모습에서 아픔을 느끼게 된다. 커스버트 남매가 일손을 덜기 위해 남자 고아를 입양하기로 했다는 사실을 안 이웃 사람 린드 부인은 “아주 어리석고 위험한 일을 벌인 것 같아요. 두 사람은 지금 본인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어요. 생판 모르는 아이를 집으로 들이고 가족으로 받아들이려는 거잖아요”라면서 마릴라에게 입양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전하기도 한다. 또한 오랜 기다림 끝에 브라이트리버 역에서 매슈와 처음 대면한 앤은 “아, 아저씨께서 와 주셔서 너무 기뻐요…… 아저씨 집에서 아저씨의 가족으로 사는 건 정말 멋진 일일 거예요. 저는 누구의 가족이 되어 본 적이 없거든요. 진짜 가족 말이예요”라고 말한다. 이처럼 절실한 앤의 모습에 매슈는 앤에게 입양을 원한 아이가 남자라는 사실을 말하지 못한다. 그렇게 시작된 앤의 초록 지붕 집에서의 생활은 익히 아는 내용이라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다만 현실과 달리 긍정적인 앤의 모습이 보여주는 대비가 이 소설이 주는 감동의 원천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이 소설은 작가인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자전적인 소설이라고 알려져 있다. 작가의 어머니는 작가가 태어난 지 채 이 년이 못되어 사망, 아버지마저 재혼하여 곁을 떠나간 뒤 작가는 이곳 프린스 에드워드 섬에서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보살핌 속에 성장했다. 어려서부터 감수성이 뛰어났던 작가는 앤과 같이 감수성을 자극하는 환경 속에서 작가의 꿈을 키울 수 있었다. 소설 속의 앤과 마찬가지로 초등학교 교사 생활을 했던 작가는 외할아버지의 사망 이후 고향으로 돌아와 외할머니와 함께 생활했다는 점까지 소설의 줄거리를 닮아 있다.
사범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앤은 장학생으로 선발, 상급 학교인 레드먼드 대학에 진학할 예정이었지만, 뜻하지 않게 매슈의 죽음에 직면한다. 매슈의 죽음에 원인이기도 한 은행 파산으로 초록 지붕 집을 팔아야 할 사정과 홀로 남게 될 마릴라를 위해 앤은 레드먼드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고향의 초등학교 교사가 되어 마릴라의 곁에 남기로 한다. 누구나 인생이라는 길에서 만나게 되는, 앞을 알 수 없는 모퉁이를 만나게 된다. 앤도 길모퉁이에서 자신을 가장 사랑해 주었던 매슈의 죽음을 겪게 되지만, 스스로 가장 올바른 결정을 내리게 된다. 그리고 그 결정에 의해 인생은 모퉁이를 돌아 새로운 길을 열어가게 될 것이었다. 어릴 때의 경쟁자였던 길버트라는 동반자와 함께.
이 소설의 마지막은 다음과 같은 감동적인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하느님께서 하늘에 계시니 세상은 평안하다.”
우리가 인생이라는 길에서 만나는 모퉁이에서 겪게 되는 두려움과 좌절이 있더라도 잊지 말아야 할 고백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내가 신앙을 가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두려움과 좌절을 겪을 수밖에 없는 불완전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신앙의 출발이라는 것을 알기에.
개신교에서는 ‘하느님’이라는 이름 대신에 ‘하나님’이라는 이름으로 창조주를 부른다. 내가 개신교도이기 때문에 ‘하나님’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마땅해 보이겠지만, ‘하느님’이라는 표현이 소설의 내용에 더 적합해 보여 쓴다. ‘하늘’의 어원인 ‘한울’이 ‘큰 울타리’를 뜻하기 때문이다. ‘유일신’을 강조한 ‘하나님’보다는 보다 포괄적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특정 종교와 연관해서 이해할 내용도 아닐 것이다.
“하느님께서 하늘에 계시니 세상은 평안하다.”
원래 영국의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의 시 ‘파파가 지나간다’에 나오는 문장을 차용한 것이지만, ‘빨강 머리 앤’에 있어 더 감동이 크다.
가정의 달인 오월이라 이 소설을 떠올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