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바, 자유로운 영혼의 표상

-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장편소설 '그리스인 조르바'

by 밤과 꿈
조르바를 처음 만난 건 파레에프스라는 항구 도시였다.

-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 중에서


‘조르바를 처음 만난 건 피레에프스라는 항구 도시였다.’


이 문장 자체는 아무 감흥도 없이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 단조로운 문장이 조르바라는 개성 있는 한 인간을 만나게 되는 첫 문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이 문장은 단조로움을 벗어나 돌연 생기를 띠게 된다.

영국과 그리스의 혼혈 작가 버질이 조르바에게서 받았던 다음과 같은 첫인상을 기억한다면 위의 문장에서 생동감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펄떡펄떡 뛰는 심장과 푸짐한 말을 쏟아 내는 커다란 입과 위대한 야성의 정신을 가진 사람. 모태인 대지에서 아직 탯줄이 채 떨어지지 않은 사나이였다.’

인간의 본능에 깃든 야성을 감추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조르바.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만나게 되는 매력적인 인격을 안다면 그 인격과 조우하는 감동을 대수롭지 않은 소설의 첫 문장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조르바는 소설에서 만나는 허구의 인물이 아니다. 조르바는 작가 카잔차키스가 실제로 만났던 인물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조르바는 호메로스, 니체, 베르그송과 더불어 카잔차키스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라고 작가 스스로가 밝혔다.

카잔차키스는 1917년 펠로폰네소스에서 실존 인물인 기오르고스 조르바와 함께 탄광 사업에 손을 댔고, 그때의 경험을 소설로 썼던 것이다. 따라서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는 작가가 조르바라는 실존 인물을 만나 공유한 경험을 기초로 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존 인물인 조르바가 소설 속의 인물 조르바로 탄생하기 위해서는 카잔차키스의 사상적 바탕이 덧입혀져야 했을 것이다. 앞서 카잔차키스에게 큰 영향을 끼친 인물로 조르바와 함께 호메로스와 베르그송, 니체를 언급했다. 그리스어로 글을 쓰는 작가로서 호메로스에 대한 존경은 당연할 것이다. 카잔차키스가 프랑스에 유학할 당시 베르그송을 알게 되었고, 그를 통해 니체의 철학을 접하게 되었다. 니체의 철학에서 불교 사상과의 접점을 찾은 카잔차키스는 석가모니에게서 ‘인간을 속박하지 않는 지상의 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리고 조르바의 자유로운 영혼에서 이에 일치하는 인간상을 찾아 조르바라는 소설적 전형을 창조할 수 있었다.

조르바라는 전형은 그 자유로움으로 해서 반사회적인 인물로 생각될 수도 있다.

‘보스! 이놈의 세상에서는 모든 게 다 부정, 부정, 부정입니다. 나는 이런 세상에 안 낄 겁니다.’

조르바의 말이다. 조르바가 반사회적이라기보다는 세상이 조르바의 자유로운 영혼을 담기 힘들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조르바가 반종교적인 인물로 창조된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종교라는 것이 규율과 통제를 동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보스, 성모님이 왜 울고 있는지 아시오? ……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다 보이니까 그러는 겁니다. 내가 성상 만드는 사람이라면 눈도, 귀도, 코도 없는 성모를 그릴 거요. 너무 불쌍해서 말입니다.’

1953년 그리스 정교회는 ‘그리스인 조르바’를 비롯한 카잔차키스의 소설 다수를 금서로 지정했다.

대학을 다닐 때 이 소설을 끔찍이 좋아했던 한 친구가 있었다. 아니, 어떻게 보면 이 소설이 아니라 조르바라는 소설 속 인물에 매료되었다고 해야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 친구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조르바에게 매료되었다. 그것은 억압되고 통제된 세상 속에서 살면서 꿈꾸게 되는, 조르바가 지닌 자유로운 영혼을 향한 동경에 다름 아닐 것이다. 그렇게 조르바는 자유로운 영혼의 표상이 되었다.

또한 그리스인 조르바는 카잔차키스가 꿈꾸는 삶의 표상이기도 했을 것이다. 조국인 그리스에 머물 수 없었던 카잔차키스는 죽어서도 그리스 본토에 묻히지 못하고 크레타 섬에 묻혔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라는 묘비명처럼 카잔차키스는 조르바의 영혼을 닮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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