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딕 시대 이후로 예술사에 있어서 예술 양식의 전개가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 전개 양상을 단편적으로 정의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만 일반적으로 17세기의 예술 양식을 총칭하여 바로크 양식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바로크라는 명칭은 18세기의 합리적인 사고를 지닌 신고전주의자(음악에서는 고전주의)에 의해 다소 악의적인 표현으로 사용된 것입니다. '바로크'라는 용어는 '이지러진 진주'라는 뜻을 가진 것으로 18세기의 사람들이 17세기의 예술을 '비규칙적'이고도 '자의적'이라는 이유로 비난하면서 사용한 용어입니다.실제 르네상스와 신고전주의가 이지적인 경향을 지녔다면 바로크는 감정적이고도 충동적인 경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앞서 르네상스 사람들이 그들의 예술적 지향을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에 두고 중세 시대를 부정적으로 바라보았듯이 18세기의 신고전주의자들 또한 그리스, 로마 시대의 예술품을 고전으로 칭하면서 17세기의 예술을 폄하하고 부정적으로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바로크 예술의 전개 양상은 크게 궁정적, 가톨릭적 바로크와 서민적, 개신교적 바로크의 두 갈래로 전개되었지만 쉽게 회화를 예로 르네상스 미술과 바로크 미술의 차이를 들어 바로크 예술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르네상스 미술이 원근법을 능숙하게 사용하면서 그림의 윤곽선을 명확히 가져갔다면 바로크 미술은 윤곽선이 사라지고 명암의 대비를 극대화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위의 루벤스가 그린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를 자세히 살펴보면 화면을 구성하는 중심 되는 예수에 가장 강한 빛이 머물고 그 외 인물 군상을 벗어난 부분은 어둡게 처리, 명암의 대비로 주제를 강조하는 효과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처럼 수직적인 구도는 드라마틱한 화면 구성이 가능케 하는 것으로 르네상스 미술의 수평적인 구도가 주는 온화함에 비하면 확연히 구별되는 바로크 미술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아래 베르메르의 걸작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에서도 바로크 미술의 특징은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선 윤곽선은 사라졌고, 인물 부분 이외는 배경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이 그림에서 가장 매력적이라고 느끼는 소녀의 눈동자가 향하는 지점, 누군가 방금 자신을 부른 곳을 바라보는 듯한 시선에서 동적인 화면을 느낄 수 있습니다.
4강에서 언급한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의 결혼식'과 비교하면 그 차이가 분명해집니다. 르네상스 미술이 정적이라면 바로크 미술은 동적이고, 르네상스 미술이 원근법을 사용, 배경과의 조화를 구성하고 윤곽선으로 섬세한 필선을 구사했다면 바로크 미술은 배경을 지우거나 등한시하여 중심 오브제를 강조하고 윤곽이 사라진 간결한 필선을 구사했습니다.
그리스, 로마 시대의 조형미를 추구했던 18세기 신고전주의자들이 자신들과도 다르고 같은 예술적 지향점을 가졌던 르네상스와도 달랐던 바로크라는 시대 양식을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할 수 있겠습니다.
바로크 음악의 일반적인 특징
예전의 관련 서적에서는 바로크 예술의 기괴함과 자의성이 바로크 음악에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쓰여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것은 현재의 기준으로 판단한 것이고, 실제 바로크 음악을 그 이전의 르네상스 음악과 비교할 때 충분히 파격적인 음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르네상스 음악과 구별되는 바로크 음악의 특징은 다음의 다섯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중세 시대로부터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기까지 사용되었던 교회 선법이 장, 단조 화성으로 대체됩니다.
비로소 지금 우리가 익숙하게 사용하는 장조와 단조의 화성 체계가 바로크 시대에 등장한 것입니다.
둘째, 기악의 발달을 들 수 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에도 마드리갈 등의 세속 음악에 기악 반주가 함께 했고, 콘소토라는 기악곡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본격적으로 기악이 사용되고 독주 악기로 발달을 하게 되는 것은 바로크 시대에 들어서였습니다.
셋째, 통주저음(basso continuo, 계속저음)의 사용을 들 수 있습니다.
음악에 있어서 바로크 시대를 통주저음의 시대라고 말할 만큼 바로크 음악의 화성적 토대를 이루었던 것이 통주저음 기법은 바로크 음악의 가장 중요한 작곡 기법이었습니다.
이것은 베이스 성부를 연주하는 통주저음 악기로 베이스 성부를 대위적으로 끊기지 않고 지속적으로 연주함으로써 연주의 지속성을 유지하고 악보에 기록하지 않고도 연주가 가능한 것이었는데 바로크 음악을 들으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바로크 시대의 음악이 재즈와 많은 공통점을 가진 것이 이 통주저음이 재즈의 리듬 섹션과 유사하다는 점에 있는 것입니다.
아래 사진의 쳄발로(전체 연주를 통솔하는 악기)와 더블 베이스, 류트가 통주저음을 구성하는 악기가 되겠습니다.
넷째로는 전성기 르네상스의 다중 합창 구조에서 유래한 콘체르타토 양식으로 각 성부의 독자성을 강조하여 더욱 풍성하고 장식적인 음악을 가능케 했습니다.
끝으로 오페라의 탄생을 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오페라를 비롯한 바로크의 세속 가창 또한 콘체르타토 양식과 통주저음의 대위적인 화음 체계의 도입으로 보다 화려한 것이 되었습니다.
바로크 음악에서 차지하는 바흐의 위상
우리는 학창 시절 음악 시간에 바흐를 일컬어 '음악의 아버지'라고 배웠습니다. 그리고 헨델을 '음악의 어머니'라고...... 바흐는 그렇다 치고 헨델이 왜 음악의 어머니가 되어야 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사실은 바흐를 음악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도 적확한 표현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음악의 아버지라면 음악의 기초를 닦은 선구적 위치를 상상할 수 있겠습니다만 바흐는 바로크 음악의 선구가 아니라 바로크 음악의 전성기에 바로크 음악을 집대성한 완성자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물론 기악 독주 악기의 연주 기법에 끼친 영향으로 볼 때 후대에게는 아버지와 같은 존재일 수 있겠지만 시각을 그렇게 두면 바흐 이전의 음악사가 빛을 잃게 됩니다. 아마도 이런 별명은 중세와 르네상스의 고음악이 아직 미지의 영역에 있을 때, 그것도 일본의 호사가가 사용한 별명을 그대로 옮겨 사용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아버지라는 명칭을 버린다고 바흐의 위대함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서양 음악사에 있어 바로크 음악의 연대를 1,600~1,750년 사이의 기간으로 설정합니다. 낭만주의 시대 이전까지는 인접 예술 중 변화와 발전이 가장 느린 것이 음악이어서 연대 설정이 조금 복잡해집니다.
바로크 음악의 소멸 시기인 1,750년은 바로 바흐가 죽었던 해로 바로크 음악의 완성자로서의 바흐의 위상을 잘 보여주는 상징적인 숫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상징적인 의미는 공감하지만 이미 1, 730년 경에 바흐의 아들들도 포함된 로코코와 엘리건트 양식의 음악이 작곡되고 있었고, 1,780년 경에는 고전주의 음악이 이미 전성기에 도달했었기 때문에 이 시기의 연대기 설정을 다시 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6강에서 다시 한번 언급하겠습니다.
사실 바흐의 생존 당시에 바흐는 가장 저명한 음악가는 아니었습니다. 동시대에서는 텔레만의 명성이 높았지만 지금까지 바흐의 명성이 확고부동한 것은 먼저 그의 음악의 다양함과 국제 양식의 흡수에 뛰어났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흐의 작곡 범위는 오페라를 제외하더라도 바로크 음악의 모든 장르에 닿아 있습니다. 그리고 방대한 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인리히 쉬츠의 작곡 기법을 이은 215곡의 칸타타와 마태수난곡, 요한수난곡 등 독일 종교 음악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콘체르토 그로소 양식을 수용, 발전시킨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그리고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와 함께 건반악기 연주의 시금석이 되는 평균율 클라비어곡집과 바이올리니스트라면 반드시 연주해야 할 6곡의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 그리고 첼리스트에게 마찬가지 의미를 가지는 6곡의 첼로 모음곡, 이후 변주곡의 교과서가 되는 골드베르크 변주곡 등 그의 음악이 서양 음악에서 가지는 위상이 곧 서양 음악사에서의 그의 위상이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