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집에는 직박구리가 산다

by 밤과 꿈

앞집에는 숲이 있다. 아니, 숲 속에 집이 있다.

이렇게 말하면 넓은 정원이 딸린 큰 집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앞집은 넓지 않은 대지에 지어진 이층 집이다. 대문에서 쳐다보면 틀림없이 현관으로 향하고 있을, 납작한 돌을 연이어 깔아놓은 길을 제외하고서는 뜰은 온통 대나무와 감나무 등으로 메워져 있다. 그래서 건물을 향한 그 길은 흡사 숲 속의 좁은 오솔길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우리 집 베란다에서 보아도 앞집의 모습을 온전히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나무가 집을 감추고 있는 모양새다. 밤이면 불을 밝히는 창으로 해서 앞집의 형태를 짐작할 따름이다. 그리고 대문과 연결된 담벼락과 건물 외벽조차 담쟁이넝쿨이 감싸고 있어 나는 앞집을 일컬어 작은 숲 속의 이층 집이라 부르고 있다.

이렇게 나무가 많다 보니 앞집에 깃드는 새들 또한 적지 않다. 새라고 해보았자 민가에 깃들어 사는 참새와 같은 텃새에 불과하지만 아침나절에 열린 베란다 창을 통해 가까이에서 들려오는 새들의 지저귐, 그 분주한 하루의 시작이 좋다.


삭막한 대도시 서울에서 이렇게 매일을 가까이에서 새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도 복이라면 복일 것이다.

예전 같으면 평범한 일상이었을 소리가 우리의 곁에서 사라져 가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다.

어릴 때 살던 한옥의 처마에서는 봄에서 여름에 이르기까지 제비가 둥지를 털고 살았었다. 그리고 동네의 야산에서 인기척에 놀라 푸드덕하고 갑자기 날아가는 꿩의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새에 대한 기억으로는 코흘리개 시절 만났던 굴뚝새에 대한 기억이 있다.

동무와 신나게 놀다 집으로 돌아가는 해 저물녘, 뒷집의 울창한 탱자나무 울타리에서 갑작스레 맞닥뜨린 잿빛의 작고 귀여운 새에 대한 첫인상 말이다.

그때 나도 그렇지만 굴뚝새도 뜻밖의 조우에 놀란 모양이었다. 순간적으로 마주친 굴뚝새의 까맣고 깊은 눈동자를 잊을 수 없다. 그리고 한순간이었을 그 시간이 길게만 느껴졌었다.

그렇게 굴뚝새와의 조우는 하나의 경이로움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참새와 비슷한 크기의, 배가 좀 더 볼록한 작은 새의 모습은 어린 날의 강렬한 이미지로 남아 있는 것이다.


앞집에 깃들어 사는 새 중에 한쌍의 직박구리가 있다. 유달리 시끄럽게 지저귀는 직박구리의 모습을 감상하는 재미가 있다. 특별히 예쁜 새는 아니지만 큰소리로 지저귀며 나뭇가지를 옮겨 다니는 직박구리의 활달한 모습이 보기에 좋다. 한쌍이니 틀림없이 부부일 텐데 큰소리로 지저귀며 다투는 모습이 사람의 부부싸움을 연상케 해 쳐다보면 절로 미소를 머금게 된다.

이들의 모습을 지척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더할 수 없는 행복감을 느낀다.

어릴 때 굴뚝새에게서 느꼈던 전율의 조우는 아니지만 직박구리 부부와의 조우에는 미소를 짓게 하는 편안함과 수다스러운 행동이 주는 활기가 있다.

그렇게 앞집에는 직박구리가 산다. 내 마음에도 직박구리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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