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몽의 시대와 음악에 있어서의 고전의 탄생

- 서양 음악사를 이끈 10가지 장면(6)

by 밤과 꿈


30년전쟁과 계몽주의의 발흥


종교개혁 이후 유럽은 프로테스탄트와 가톨릭 사이의 갈등으로 '30년전쟁'의 혼란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길게 진행된 전쟁으로 인한 유럽, 특히 독일 지역의 피폐한 상황을 따로 언급할 필요는 없겠습니다. 그러나 1648년에 체결된 베스트팔렌 평화조약의 결과로 종식된 참혹한 전쟁은 인간이 유발한 정신과 행동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의 기회를 유럽 사회에 가져왔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종교 간의 갈등으로 분열된 유럽 사회를 목도한 사람들은 모든 사람들을 결속시키는 것으로 이성을 강조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성의 영역 안에서 서로 다른 의견을 조정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다만 이성을 벗어난 종교적 갈등에 대해서는 상호 인정과 존중으로 공존할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누구나 이성을 지닌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은 계층과 귀천을 떠나 누구나 동등하며, 자기 가치와 권리를 존재라는 사상이 등장하게 됩니다.

1700년 이후에 확립되는 이러한 사상을 계몽주의라고 합니다. 이성과 관용, 그리고 인도주의를 표방하는 계몽주의는 새로운 계층으로 부상했던 시민계층에 의해 강력히 주장되었지만 이에 대한 반발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계몽 군주라고 일컫는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과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 같은 강력한 전제 군주의 지지에 의해 합리적 정신을 기반으로 하는 계몽주의는 유럽 사회를 주도하는 사상이 됩니다.


고전의 개념과 신고전주의 예술의 탄생


18세기의 미학자 빙켈만은 고대 그리스의 미술과 문학에서 발견되는 균형과 조화, 그리고 자연스러움과 단순성을 '고전미'로 규정했습니다. 또한 이런 고전미로 충만한 그리스 미술과 문학 작품을 참되고 아름다운 것으로 보고 작품으로서 최고의 가치를 지닌 '고전'으로 칭송했습니다.

문학적, 예술적 가치에 대한 이러한 시각은 계몽주의의 합리적이고도 보편적인 가치 추구와도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르네상스 시대가 그랬던 것처럼 18세기에 이르러 미술을 주축으로 빙켈만이 언급한 고전 양식으로의 복귀가 추구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를 일컬어 그리스의 양식과 구별하여 '신고전주의' 운동 혹은 양식이라고 합니다.

아래 샤르댕의 '식사 기도하는 아이들'이란 그림이 보여주고 있는, 배경과 인물이 조화를 이루면서 자연스럽고 단순한 아름다움이 신고전주의의 미의식이라고 하겠습니다.

빈 고전파 음악에 이르는 과정


그러나 음악에 있어서는 미술이나 문학 작품만큼 고전으로 칭할 정도의 마스터피스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18세기 빈에서 새롭게 탄생한 음악 양식을 훗날 사람들이 일컬어 고전파, 혹은 고전주의 음악이라고 칭하게 되었습니다. 고전으로 부를 마스터피스가 존재하지 않기에 신고전이라는 표현이 필요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때 완성되는 소나타 형식이 이후로 지금까지 음악 창작의 중심적인 원리로 적용되고 있다는 점에서는 적절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만 지금까지 강력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빈 고전주의 음악을 강조하다 보니 바로크 양식을 지나 빈 고전주의에 이르는 과정 내의 중요한 음악적 흐름을 간과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 이 부분은 음악사의 연대기 기술의 어려움과도 맞물려 있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이미 바로크 시대의 음악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18세기의 계몽 시대에는 바로크 음악이 1750년까지 지속되고 있었고, 그때에도 이미 1730년 경부터 '갈란트(우아한) 양식'이 등장했고, 이는 1750~60년 경의 '로코코 양식'과 문학의 질풍노도와 흡사한 '감정 과다 양식'을 거쳐 빈 고전 양식으로 이행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빈 고전파 음악은 1827년 베토벤의 죽음과 함께 끝난다고 할 수 있지만 이때 이미 19세기 낭만주의 음악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연대기적 문제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프랑스에서 시작된 갈란트 양식은 쿠프랭, 스카를랏티 등에 의해 건반악기에 중요한 성과를 이루었고, 갈란트 스타일은 빈 고전파의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음악에 여실히 녹아들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독일의 만하임악파로 대표되는 감정 과다 양식은 시타미츠, 고섹, C.P.E. 바흐 등에 의해 교향곡의 탄생에 기초를 제공하여 교향곡의 아버지라 불리는 하이든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우리가 학교 음악 시간에 바로크에서 바로 고전주의로 넘어가는 간략한 음악사를 배우기 때문에 중요한 음악적 흐름의 일부가 외면받고 있는 것입니다.

어쨌든 18세기에 합스부르크 왕가가 이끄는 유럽 최강국 오스트리아, 헝가리 연합 왕국이었기에 이와 같은 여러 음악적 흐름을 수도 빈으로 결집, 오스트리아 태생의 하이든과 모차르트뿐만 아니라 독일 본 출신의 베토벤까지 초청, 빈 고전주의라는 음악 양식을 형성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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