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다녔던 초등학교의 인근에 기찻길이 지나고 있었다.도심을 가로지르는 그 철로는 바닷가에 있었던 화력발전소에 석탄 수송을 위해 남겨진 것으로 하루에 한 두 차례는 화물 수송용 증기기관차의 우렁찬 기적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운동장에서는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어디론가를 향하는 증기기관차의 위용을 볼 수도 있었는데 언제쯤이었는지 기억은 흐릿하지만 지금 볼 수 있는 디젤기관차로 교체되어 아쉬움이 컸던 기억이 있다.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가는 길은 후문 쪽에 있어 정문으로 가야 만나는 철뚝길을자주 갈 수는 없었지만 간혹 동무들과 못 하나 씩을 들고 자석을 만들겠다고 철로 통행을 막기 위해 설치한 울타리를 뜯어내고는 철로에 접근하기도 했었다.
멀리서 기적 소리가 들리면 철도 레일 위에 못을 올려다 놓고 잠시 몸을 피해 기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면 납작해진 못에 자성이 생겨 지남철의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철길이 지나가는 둑에서 아주머니들이 좌판을 벌이고 파는 떡이며, 달고나와 같은 주전부리에 침을 삼키기도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던 한 중학교에 입학하고서는 이 기찻길은 유용한 등굣길이기도 했다. 등교에 걸리는 시간을 단축할 수도 있었지만 그 길이 자동차가 지나다니는 도심의 도로보다는 안전한 것이었다. 석탄 수송을 위한 철길이라 기차 운행이 뜸한 이유에서였다. 물론 뜯긴 울타리를 지나 드나드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다.
이후 화력 발전소의 가동 중단으로 이 기찻길에는 더 이상 기차가 다닐 일이 없어졌고, 철로는 무용지물인 채로 남겨졌었는데 지금은 철로를 걷어내고 산책로가 되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어릴 때의 동심과 추억이 깃든 기찻길은 현실에서는 사라지고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게 되었다.
대학교에서 동아리 활동을 해 본 사람이라면 대성리와 강촌이라는 지역이 불러일으키는 낭만적인 정서를 기억할 것이다.
엠티에 가서 통기타에 맞춰 부르는 노래와 캠프파이어, 그리고 줄지어 서서 춤추는 허슬(1980년대 초에는 허슬이라는 춤이 유행이었다)의 낭만을.
물론 지금도 대성리와 강촌은 좋은 시설의 위락단지가 들어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기도 하고 사람들의 수송을 위한 역사도 멋지게 새로 들어섰지만 조금은 불편하고 부족한 과거의 낭만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시골의 간이역 같이 소박한 대성리역과 강촌역의 호젓한 분위기가 좋았고 구 경춘선의 낡은 완행열차가 주는 편안함이 좋았다. 시설이야 지금의 전동차와 견줄 수 없겠지만 가는 길에 들뜬 마음으로 노래 부르고 떠들어도 간섭하지 않고, 돌아오는 길에 피곤에 지친 몸을 아무 곳에서나 주저앉을 수 있는 편안함과 너그러움이 좋았다.
대성리역이나 강촌역 모두 크게 지은 신 역사와는 별개로 구 역사를 보존하고 있지만 그것이 사적(史蹟)으로서의 가치는 있을지언정 제 기능을 못하고 있는 이상 그 존재의 의미와 가치는 미미한 것이다. 그것이 지나간 시간에 대한 추억을 환기시킬 수는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지난날의 가치에 대한 상실을 깨닫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아무리 철로를 보존했다고 하더라도 자전거 길로 바뀐 구 경춘선에 대한 인상도 마찬가지로 젊은 날의 낭만에 대한 상실감을 상쇄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철로가 보존되어 있더라도 그 길을 기차가 달릴 수 없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릴 때 학교 운동장에서 바라보는 기차는 하나의 그리움이었다. 기적 소리의 긴 여운을 남기며 어디론가를 향해 서둘러 가는 기차의 모습은 어린 마음에도 여운처럼 멀어져 가는 것에 대한 서러운 그리움이었다.
그렇게 어릴 때 바라보았던 기차는 이후로 그리운 풍경이 되었다.
그리고 이십 대에 몸을 실었던 낭만의 기차 또한 돌아오지 않을 시간에 대한 그리움의 풍경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