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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실이 있는 한옥(韓屋)-2

- 내가 두 번째 쓰는 단편소설

by 밤과 꿈



나는 내가 유아기를 보냈던 한옥을 온실이 있는 집으로 기억한다. 아파트라는 공동주택이 가옥의 대세가 된 지금은 더하겠지만, 그 당시에도 정원이 딸린 단독주택에서 온실까지 갖춘 집은 흔치 않았다. 연못과 마찬가지로 아담했던 온실은 사면과 천장을 온통 투명한 유리와 흰색 페인트가 칠해진 철재 구조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리고 온실을 가득 채운 화분에서 나는 습한 이끼 냄새가 오히려 기분을 상쾌하게 했었다. 그러나 유리라는 깨지기 쉬운 자재가 대부분인 온실을 나 같은 꼬맹이가 가까이 접근할 일이 자주 일어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실이 내 마음 깊숙이에 각인되어 있는 것에는 작은 형이 관련된 사건, 어린 나에게는 결코 간단치가 않은 사건이 있어서다.

벌건 대낮이었다. 스스로 밝히기에는 조금 창피스럽지만 나는 온실 앞에서 따뜻한 햇살을 쬐며 엉덩이를 까고 요강에 앉아 볼일을 보고 있었다.

변소라고 불렀던 전통 가옥의 화장실은 땅에 여유가 있는 시골의 경우 가급적 본채에서 멀리 떨어져 만들거나 땅에 여유가 없는 도시에서는 건물 본채에 붙어있되 좁고 긴 통로를 따로 내어 주거공간과 분리시키고자 했다. 유년기에 화장실, 그러니까 변소를 이용한 기억은 없다. 밑으로 휑하게 구멍이 뚫린 변소에서 두 다리로 버텨 앉기에는 어린 나이에 힘이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요강을 쓸밖에.


변소에 대하여 내가 기억하는 것은 전부 초등학교 입학 이후의 기억일 것이다. 여담이지만 옛 변소에 대한 무서운 기억은 같은 시절을 보낸 또래라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을 것이다. 밤에 오는 생리적 신호를 참다 견디지 못하면 대청마루를 나와 따로 만든 좁은 통로를 걸어 변소를 가야 한다. 시원치 않은 백열등의 밝기에 의지해 변소를 찾아가면 코를 찌르는 악취와 함께 살이 다 닳은 몽당 빗자루(변소 청소에 쓰는 물건이다)와 못이나 철사에 꽂아 놓은 신문지 조각(질 좋은 화장지가 없었던 시절, 신문지를 잘라 뒤처리에 사용했다. 볼일을 볼 동안 거친 신문지를 꾸깃꾸깃 부드럽게 만든 뒤 사용했다)이 덩그렇게 자리하고 있었다. 변소의 지독한 냄새는 둘째치고 음침한 분위기는 당장이라도 변소, 즉 측간에 터 잡고 있다는 여자 귀신인 측귀가 나타날까 두려워 볼일도 제대로 보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언제 측귀의 손이 구멍에서 올라와 “빨강 종이 줄까, 노랑 종이 줄까?”라고 나를 홀릴까 봐서 냄새나고 어두운 구멍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유아기에 변소에 갈 일이 없었기에 측귀를 만날까 전전긍긍했던 기억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날도 느긋한 마음으로 배변의 쾌감을 느끼고 있을 즈음, 작은 형이 총채를 손에 쥔 채 위험하게도 유리로 된 온실 지붕에 서서 나를 놀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장난도 잠시, 갑자기 작은 형이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얇은 유리가 작은 형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깨져 그만 작은 형이 온실 안으로 떨어진 것이었다. 나를 놀리면서 작은 형이 얌전하게 서서만 있었을 리가 만무했으니 아무리 어린이의 무게라도 충분히 두껍지 않은 유리가 그 무게를 감당하기 어려웠으리라. 얼핏 생각하면 작은 소동이겠지만 온실 바닥에 떨어지면서 생긴 찰과상 이외에 깨진 유리의 파편이 작은 형의 머리에 상처를 내어 크지 않은 흉터를 남겼으니 결코 작다고는 할 수 없는 소동이었다.


워낙 어린 나이였지만 작은 형과는 나이 차이가 크지 않아서인지 작은 형에 대한 것은 비교적 많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형이 원기소라는 이름의 영양제 한 통을 한꺼번에 다 먹어 배탈이 나서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 일, 형이 재기에서 빼낸 엽전을 입에 물고 물구나무를 서다가 삼켜 참기름을 먹이는 등 부산을 떨다가 대변과 함께 배설한 일 등이 생각난다. 그렇다고 작은 형을 개구쟁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상대적으로 내가 지나치게 조용한 아이였다. 이와 같은 소소한 소동과 함께 내 뇌리에 깊이 각인된 사건 하나가 일어났다.


집 마당의 한 귀퉁이에는 잘 자란 아름드리 감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지금도 시골에서는 집집마다 감나무 한 그루쯤은 심겨 가을이면 탐스런 감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심지어 서울에서도 연륜이 오래된 동네에서는 단독주택의 마당에 오래 키운 감나무가 자랑처럼 자라고 있어 감이 영글면 이웃과 결실을 나누는 훈훈한 정경을 간혹 보게 된다. 이처럼 감나무를 소중하게 키웠던 것은 그만큼 감이 먹거리로서 다양한 활용이 가능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살았던 동네에서도 감나무는 흔했을 것이다. 따라서 감나무 자체가 어린 마음에 들어왔을 리는 없었다. 지금까지도 어린 날의 감나무가 잊히지 않는 까닭은 내 마음에 충격으로 다가온 일화가 있어서 이다.


아마도 햇살이 머리 위로 내리쬐는 한낮이었을 것이다. 햇살을 받아 비늘이 유난히 번들거리는 황구렁이 한 마리가 감나무의 가지를 휘감고 있는 모습을 본 것이. 황구렁이를 먼저 발견한 사람은 작은 형이었다. 황구렁이는 그늘을 찾아 바쁘게 감나무 가지를 타고 담벼락 너머로 움직이고 있었다. 잠시 숨을 고르고 있던 황구렁이를 발견한 작은 형은 놀라, 잠시 숨을 고르던 황구렁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소리를 질렀다. 내가 형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눈길을 주자 무언가 섬뜩한 기운과 마주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황구렁이의 차갑고 흔들림이 없는 눈동자였다. 냉기를 머금고 있는 듯한 황구렁이의 어둡고 깊은 동공에서 불길한 기운이 뿜어 나오는 듯했고, 불길한 기운에 마비가 된 듯이 내 몸은 얼어붙고 말았다.

길게만 느껴졌던 짧은 순간의 공포에서 나를 일깨운 것은 작은 형을 향한 어머니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안 돼! 구렁이 같은 요물을 함부로 손가락질하면 큰일 나.”

어머니는 자신의 목소리에 놀라 뚱해 있는 작은 형의 오른 손목을 붙들어 내리고서는 작은 형에게 다시는 황구렁이 같은 요물을 손가락으로 가리키지 말라고 단단히 이르고 있었다. 그러고서는 서둘러 부엌에서 가져온 된장을 황구렁이를 가리키던 인지에 덕지덕지 바르는 것이었다. 평소에 볼 수 없었던 어머니의 생소한 행동에 더 놀라 작은 형과 나는 잔뜩 겁에 질려 함께 울음을 터뜨렸던 것 같다.

훗날 어머니의 생소한 행동이 일종의 액막이였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오랫동안 두렵고도 충격적인 일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이 일과 관련, 미신 같은 사실을 듣게 되었다. 요물이기 이전에 영물로 대접을 받는 구렁이가 수호령처럼 사람의 집에 살다가 집을 떠나가면 그 집의 기운이 쇠하고 만다는 믿기지 않은 이야기였다. 그래서였을까, 아버지는 자신의 꿈이었고 정성을 다해 일군 그 집을 결국 지키지 못하고 경제적인 이유로 명의를 남에게 넘겨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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