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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아가는 엘피처럼

by 밤과 꿈


조금씩 몸이 닳아간다

겉비닐을 뜯고 처음 꺼내 든

검게 빛나던 엘피도

손때가 묻고 먼지가 달라붙고

검은색이 희게 변하는

백화 현상으로 윤기를 잃어가듯

사람도 마찬가지로

검던 머리카락이 희게 변하고

죽음꽃이 하나 둘 꽃잎을 여는

피부는 탄력을 잃어간다


안 들리던 소리가 몸에서 난다

바늘이 소리골을 훑고 지날 때마다

엘피의 잡음이 늘어나듯

사람도 몸을 쓰면 쓸수록

삐그덕 뚜둑

민망한 소리가 난다

한걸음에 버스를 내리지 못할 때

무너지는 자존심만큼이나

무거운 세월의 무게를

힘겨운 소리로 듣는다


엘피에서 들리는 잡음은 정겹다지만

몸에서 나는 소리가 달갑지 않은 것이

닳아가는 몸이 안쓰러운 것이

말 못 할 속내이겠지만

낡은 몸일지라도 닦고 조여서

남은 생에서 소중하게 다룰 일이다

닳아가는 엘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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