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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실이 있는 한옥(韓屋)-4

-내가 두 번째 쓰는 단편소설

by 밤과 꿈



아버지께서는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때문에 자식들 앞에서는 겉으로 크게 내색은 않으셨지만, 속은 시커멓게 타서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스스로에 대한 자책으로 술을 가까이하셨고 술에 취한 아버지의 모습을 자주 보게 되었다. 온실이 있던 집이 꽤나 폭이 넓었던 대로변에 있었다면 새로 이사 간 집은 좁고 길게 이어지는 골목길에 있었다. 그래서 세상의 소음들이 모두 가라앉은 시간이면 잠이 든 듯 가라앉은 골목길을 다시 깨우는 소리들, 예를 들면 통금에 쫓겨 보금자리를 찾아 재촉하는 발걸음 소리라든지, 겨울밤의 적막을 깨며 “찹쌀떠억~ 메밀무욱~” 하는 찹쌀떡 파는 소리가 지척과 같이 유독 가깝게 들리는 집이었다. 아버지께서 술이라도 한잔 드신 날이면 어김없이 어둠 속에 가라앉은 골목길을 불불이 깨우는 아버지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

“아아~, 억새 슬피 우~는 가~~~을인~가~~요. 지나~~ 간 그 세월~이 나를 울~립~니~다.“

골목길 초입에서 들려오는 아버지의 노래는 아버지의 귀가를 보지 못한 채 지쳐 잠이 들었다 깬 나에게는 반가움이었지만, 철이 들고 난 뒤 생각해 보면 그때 아버지의 노래는 어디에다 하소연하지 못하는 울분의 표출이었기에 내 마음은 반가움이 아니라 아버지에 대한 연민이어야 했다. 어릴 때의 기억 속에서 술에 취한 아버지의 모습이 잊히지 않고 자주 떠오르는 까닭은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던 죄책감 때문이었다. 물론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지만, 그래도 아버지의 좌절과 울분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은 어김없는 사실이 아닌가.

아버지께서는 평소에도 술을 좋아하셨다. 긴긴 겨울밤에 속이라도 출출해지면 아버지께서는 삶은 미꾸라지를 통째로 소금에 찍어 따끈하게 데운 청주와 함께 드시곤 했다. 그리고 나를 데리고 대중목욕탕을 다녀오시면서도 단골 선술집에 들러 맥주로 입가심을 하셨다. 나는 집에서는 맛볼 수 없는 천엽과 같은 안주에 일찌감치 맛을 들이고.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말 그대로 애주가셨지 폭음을 하시지는 않았다. 다만 내 유년기에 아버지께서 투자 실패를 경험하고 온실이 있는 집을 잃었을 때를 제외하고서는 말이다. 아버지께서는 환갑을 일 년 남겨두고 간암으로 돌아가셨으니 그때의 폭음이 원인이 되었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을 아닐 것이다. 기억하기에, 좁고 어두운 골목길에서 가로등의 불빛만큼이나 아련하게 들려오던 아버지의 노래가 아픈 까닭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인생이라는 것이 허망한 것이다. 아침에 떠올랐다가 한나절이라는 짧은 시간 후에 지는 해가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내일이라는 시간이 준비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내일을 기약하지 못한다면 붉게 하늘을 물들이며 지는 해가 아름답게만 생각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하늘을 붉게 물들인 노을이 한평생 마음을 지배해 온 회한이라고 생각한다면 마음조차 피눈물을 흘리듯 붉게 물들 것이다.

아버지의 인생이 그러하듯이 뜻밖의 일이나 결정으로 인생이 향방이 뜻하지 않는 곳으로 나아가게 되는 경우가 흔하다. IMF 구제금융 당시 이렇게 뜻하지 않은 일로 인생이 송두리째 꺾여 버린 안타까운 사연들이 있다. 반드시 경제적인 부분만이 아니라 꺾인 인생의 의욕을 되찾아 재기하는 데에는 어떤 계기가 있거나 무너지는 마음을 붙들게 하는 존재가 있어야 한다. 아버지에게는 그것이 자식이었다. 인생의 의미를 자식에게 두고 오 남매를 키우셨기에 돌아가시는 순간에 회한만 마음에 품지는 않으셨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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