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두 번째 쓰는 단편소설
세상에 어떤 부모가 자기 자식을 사랑하지 않으랴마는 아버지의 자식 사랑은 각별했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이라는 것이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 법이다. 때로는 그 사랑이 자식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하기도 하고, 때로는 부정적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부모의 자식 사랑은 한 사람의 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영향에도 언제나 양면성이 공존하기 마련이다. 그것은 결과에 이르러 비로소 확인하게 되는 것으로 부정적인 영향이라고 해도 의도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아버지의 사랑이 각별한 것이었다는 말은 그 사랑에 아버지의 강권이나 대리만족이 아닌 순수한 아버지의 의지가 담긴, 그런 사랑을 아버지께서 자식들에게 주셨다는 사실을 함축하고 있다. 아버지의 각별한 사랑을 일일이 언급할 수는 없지만, 작은 형과 관련된 일화 만으로도 아버지에게 자식이 어떤 존재였으며 자식에게 쏟은 사랑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작은 형은 어려서부터 수재라고 소문이 자자할 만큼 학업에 뛰어난 능력을 보였다. 내가 알기로는 초등학교에서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전교 일등을 놓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작은 형이 중학교에 진학할 때였을 것이다. 하필이면 작은 형이 당시 대통령의 아들과 같은 학년으로 그 때문에 그동안 시험을 치러 중학교에 진학하던 방식이 바뀌어 추첨으로 학교를 선택하게 되었다. 학생이 직접 번호가 표시된 공이 담긴 물레를 돌려 번호를 뽑는 추첨 방식으로 일명 뺑뺑이를 돌린다고 했다. 추첨 결과 작은 형은 지역의 명문이라고 알려진 중학교는커녕 가장 학업 성취도가 떨어지는 학교에 배정을 받게 되었다. 진학 방식의 변경 적용의 첫해로 부모님이나 작은 형의 충격과 낙담이 클 수밖에 없었다. 이에 아버지께서는 작은 형을 인근에 있는 본적지로 주소지를 변경, 시골 중학교로 전학을 시켰다가 다시 전입을 하면서 재추첨을 하는 방법으로 바라던 명문 중학교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두 번째 간다는 중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했다. 물론 편법이었다. 이제 아버지나 작은 형이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니까 밝힐 수 있는 사실이다. 아버지께서 작은 형을 위해 이렇게까지 하실 수 있었던 것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이 있었다. 처음 작은 형이 뽑은 번호가 사실은 명문 중학교에 배당된 것이었다. 이를 교육청에서 잘못 발표한 것이었다는 내용을 훗날 들을 수 있었다. 이 사실을 알고 있었던 아버지께서는 작은 형의 전학을 문제 삼는다면 이를 폭로할 각오였다고 한다. 말이 쉽지 자신이 속한 기관을 상대로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버지의 지극한 마음을 잊지 않아서인지 작은 형은 고향에서 중등 과정을 마치고 최고의 명문 대학 법대를 입학하고 사법시험을 합격했다. 그러나 이 일이 단번에 이루어졌던 것이 아니라 일 년이라는 재수 과정을 겪어야만 했다. 온 가족이 원하던 대학에 다니기 위해서가 아니라 재수를 위해 처음 가족을 떠나는 작은 형에 대한 아버지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까. 작은 형이 고향을 떠나 서울로 가기 하루 전날 잔뜩 술에 취하시고선 작은 형을 붙들고는 작은 형의 이름을 부르면서 눈물을 보이시고 말았다. 그때 나는 나대로 다른 방에서 혼자 울고 있었다. 작은 형을 부르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갈수록 떨렸기에 아버지의 낙루를 짐작할 수 있었고 아버지의 아픈 마음 때문에 내 마음도 아팠다.
아버지께서는 당시로서는 드물게 백팔 십 센티미터라는 키에서도 알 수 있듯 겉으로는 강인하시면서도 속마음은 여린 사람이었다. 그리고 부모님께서는 평생을 선하게 사셨다. 정년을 앞둔 시점에 아버지께서는 고향의 국립 간호전문대학의 행정 책임자로 자리를 옮겨 정년이 연장된 일이 있었다. 이 일에는 당시의 문교부(지금의 교육부) 차관의 관여가 있었다. 동향 사람인 차관은 같은 동네에서 성장할 때 가난했던 모양이었다. 홀어머니가 행상을 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셨고. 차관의 소년 시절에 부모님께서 많은 도움을 주셨던 것 같다. 아버지의 정년이 멀지 않았다는 소식을 듣고 어릴 때 받았던 도움을 갚을 방법을 찾게 된 것이었다. 덕분에 아버지께서는 우리 오 남매의 뒷바라지에 좀 더 여유가 생기셨다. 행한 대로 거둔다,라는 말을 실감케 하는 일화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