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주의 음악의 여명기에 핀 한 떨기 꽃, 슈베르트

- 서양 음악사를 이끈 10가지 장면(8)

by 밤과 꿈


낭만주의의 기원과 특징


낭만주의는 1797년~1804년에 바켄로더, 노발리스, 슐레겔 형제, 슐라이어마허, 티크 등에 의해 시작된 독일의 문학과 예술 운동(주로 문학)을 지칭하는 용어입니다.

그러니까 낭만주의는 유럽의 다른 문예 사조와는 달리 그 시작에서부터 목적이 뚜렷했던 문학과 예술 운동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낭만주의 운동이 실질적인 문학, 예술 운동이었을 뿐만 아니라 정신 운동이었다는 점에서 낭만주의는 신고전주의뿐만 아니라 계몽주의와도 대척점에 서있는 것이었습니다.

계몽주의가 보편적 이성을 신뢰하고 예술의 창작 원리 또한 이성적인 균형미를 강조하고 있었다면 낭만주의에 의하면 예술은 상상력의 산물이며, 상상력은 주관적이며 자유로운 정신을 따라서 발현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상상력을 발현시키는 정신력은 오직 '사랑'에 의해서만 작동된다고 보았습니다.

또한 자연과학의 발달과 궤를 같이하는 계몽주의가 합리적인 이성에 의한 감각 세계의 인식을 강조했다면 낭만주의는 상상력에 의해 유발되는 환상에서 진정한 사물의 본질을 인식하게 된다고 보았습니다.

또 한 가지, 낭만주의가 정신적인 운동이었기에 본질에 있어 정치적이었고 심지어 혁명적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정치적인 입장 때문에 낭만주의는 근대성을 획득할 수가 있었습니다.


낭만주의의 중요 개념과 낭만주의의 정의


낭만주의의 가장 중요한 개념으로 '동경'이 있습니다. 여기서 동경은 아직 충족되지 않은 것, 즉 '이상(이데아)'을 추구하는 충동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하나의 이상은 그것에 도달하는 순간 그 가치를 잃고 새로운 이상을 좇아 동경을 지속하게 된다는 '무한한 운동의 원리'가 낭만주의 운동에는 작동하고 있습니다. 즉 낭만주의의 본질은 "영원히 생성, 발전하여 결코 완성되지 않는 그 어떤 것"('아테네움', 노발리스와 슐레겔)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낭만주의가 독일 관념 철학과 연관성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도달되지 못하는 이상을 좇아 동경을 멈출 수 없는 자아의 '방랑'이라는 낭만주의의 중요 개념 하나를 도출할 수 있겠습니다.

역사적으로 한 시대를 점한 문학과 예술의 사조로 국한하여 낭만주의를 규정하는 것 이외에 낭만주의를 사실주의와 함께 시대의 제약 없이 적용할 수 있는 창작의 기본 원리로 정의하는 시각이 있어왔다는 사실도 밝혀 놓습니다.


낭만주의 음악의 전개 양상


역사적으로 낭만주의 음악은 3단계 과정으로 전개되었습니다.

첫째, 문학에서 영향을 받아 독일권에서 전개된 초기 낭만주의 음악(1800~1830년)과

둘째, 1930년 파리에서의 6월 혁명이라는 정치적 사건으로 인해 낭만주의의 이념은 전 유럽으로 확산, 빅토르 위고와 뒤마 등 프랑스의 낭만주의 문학의 영향을 받은 베를리오즈의 표제 음악으로 시작된 중기 낭만주의 음악(1830~1850년),

그리고 1850년에서 1890년에 걸쳐 전개되는 후기 낭만주의의 음악이 있는데 이는 다음번에 다루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한편, 낭만주의 음악은 한 세기에 걸쳐 진행하면서 몇 가지 공통된 특성을 형성하게 됩니다.

먼저, 낭만주의 시대에 들어와 음악은 문학과 가장 밀접한 인근 예술로서 리트(독일 가곡)라는 장르의 발전을 가져오게 됩니다.

낭만주의 시대에는 그동안 문학과 예술사의 변천을 주도했던 미술을 대신해 비로소 문학이 문학과 예술사의 변천을 주도적인 장르로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음악에는 리트뿐만 아니라 교향시와 같이 문학적인 내용을 지닌 표제 음악이 등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피아노 음악에 있어 고전주의 음악의 중심적인 형식이었던 소나타 양식보다는 낭만주의 음악에서는 보다 자유로운 형식인 즉흥곡이나 발라드, 인터메조 등의 짧은 곡의 중요성이 강조됩니다.

또한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이나 리스트의 헝가리 랩소디처럼 이국적인 소재에 관심을 두게 됩니다.

그리고 그동안 음악 문화의 중심에서 벗어나 있던 변경 국가들의 음악이 국민악파 음악이라는 이름으로 음악 문화의 중심부로 들어오게 됩니다.


서양 음악사에 있어서의 슈베르트의 위치


우리는 중고등학교에서 슈베르트에 대하여 가곡의 왕으로 배웠습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게 의례적인 표현으로는 모두 담을 수 없는 슈베르트의 천재성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먼저 603곡에 이르는 리트(가곡)를 볼 때 31살의 짧은 일생동안 쓴 곡이라기에는 방대한 양도 그렇지만 그동안 인성의 단순한 반주에 머물고 있던 피아노 파트에 시의 묘사적 기능을 부여함으로써 문학과 음악의 거리를 좁혔습니다. 이런 방향으로서의 문학과 음악의 일체성은 슈만과 볼프를 거치면서 강화되지만 슈베르트의 선구적 업적이 나타내는 위대함은 어떤 말로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일례로 그의 가곡 '마왕'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가곡 '마왕'은 유절 형식이 아닌 통절 형식으로 작곡된 최초의 가곡이면서 병으로 죽음에 시달리는 아이와 아버지, 그리고 죽음의 사신인 마왕의 1인 3역을 표현하는 가장 적절한 선율과 바쁘게 내달리는 말의 동작을 묘사하는 피아노가 불안한 심정을 실감 나게 표현하는 등 리트의 역사에 있어 기념비적인 곡이라고 할 수 있는데 슈베르트는 이 곡을 겨우 18세의 어린 나이에 작곡했습니다. 이런 스타일의 선례가 있는 것도 아닌데 슈베르트는 새로운 가곡의 장을 개척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의 장르를 혼자의 능력으로 발전시킨 경우는 그동안 음악사의 유례가 없었던 것으로 슈베르트의 천분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더군다나 고전주의에서 낭만주의로 이행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슈베르트의 천분이 한 시대를 열었다는 것은 기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슈베르트는 아직은 가꾸어지지 않아 잡초만 무성한 낭만주의라는 땅에 홀로 피어난 한 떨기 꽃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가곡의 분야 외에도 8곡의 즉흥곡과 악흥의 순간 등을 작곡, 낭만주의 피아노 음악의 선구로서의 슈베르트의 면모도 있지만 리트 음악에서 이루어놓은 업적과 그것으로 리트를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장르로 이끌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슈베르트의 위대함과 그가 음악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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