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 카락스 감독의 1991년 작 프랑스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두 남녀의 순수한, 그러나 지독한 사랑의 이야기이다.
알렉스(드니 라방扮)와 미셸(쥴리엣 비노쉬 扮)은 파리의 퐁네프 다리에서 생활하는 노숙자들이다.
우연한 기회로 알게 된 이들 두 남녀.
그러나 미셸은 알렉스와는 달리 부유한 가정에서 부족함 없이 자란 미술학도로 실연과 치유할 수 없는 안질환으로 상심해 집을 떠나 노숙의 삶을 선택한 여자이다.
알렉스는 점차 미셸을 마음에 품게 되고 미셸 또한 자신을 챙겨주는 알렉스의 투박하지만 집요한 마음 씀씀이에 알렉스에게 호감을 느끼게 된다.
어느 날 다리 위 보금자리에서 잠든 미셸에게 알렉스는 자신의 마음을 담은 편지를 남긴다.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만일 나라면 '하늘이 하얗다'라고 말해줘. 그러면 나는 '구름이 검다'라고 답할게. 그럼 서로가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될 거야."
그러나 미셸에게서 답은 없고 이에 잠 못 이루는 알렉스에게 동료 노숙자 한스는 충고한다.
"여기에 사랑 같은 것은 없어. 사랑은 바람 부는 다리가 아니라 포근한 침대가 필요한 것이야."라고.
어느 날 알렉스는 미셸에게서 원하던 답을 듣고 두 사람은 사랑을 키워가게 되지만......
알렉스는 미셸을 찾는 벽광고들을 발견, 미셸을 잃을 수 없다는 생각에 방화를 저지른다.
그러나 우연히 라디오에서 "새로운 눈 치료기술이 나왔으니 속히 집으로 돌아오라"는 자신을 찾는 방송을 듣게 된 미셸.
알렉스에게 "너를 단 한 번도 사랑했던 적이 없어."라는 편지를 남긴 채 미셸은 떠나가고 알렉스는 방화범으로 경찰에 붙잡히게 된다.
그렇게 알렉스를 떠나갔던 미셸이지만 몸이 병들고 마음은 피폐했던 시절의 초라하고 정상적이지 않았지만 순수했던 사랑을 잊지 못하고 수형 생활을 하고 있는 알렉스를 찾아간다.
그리고 2년 후 출감한 알렉스와 미셸은 재회하고 사랑을 확인하게 된다.
처음 이 영화를 보았을 때 두 사람이 재회하지 않은 채 영화가 끝났어도 좋았겠다 생각했었다. 두 남녀의 순수하고도 지독한 사랑이 한편으로는 지독한 만큼 슬픈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잃을 것 없는 두 남녀의 지독하고 슬픈 사랑이 그대로 산화했더라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러나 영화를 거듭 보면서 레오 카락스 감독의 의도가 끝까지 지켜지는 순수한 사랑의 영속성에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미셸의 젖은 머리카락을 말려주면서 알렉스가 미셸에게 한 "네가 여기에 있어서 좋아."라는 한마디 말에 미셸에 대한 알렉스의 마음이 모두 담겨있을 뿐만 아니라 이 영화가 관객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짐작케 하는 것이다.
사실 남녀 간의 사랑이 표현할 수 있는 모두가 이 말에 담겨있는 것이 아닐까. 서로가 같이 웃고, 같이 밥을 먹고, 같이 잠들고 같이 하루의 시작을 맞이하는 것, 그것이 사랑이지 않을까.
그렇게 같이 지내다가 어느 한쪽이 생을 마감할 때도 곁을 지키며 슬퍼하는 것, 그것이 사랑이지 않을까.
알렉스의 사랑이 그러했다. 미셸이 옆에 있어서 좋았고, 계속 같이 있고 싶어 그녀가 떠나가게 하는 것들을 방해하고 훼손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자신을 잊을 수 없어 다시 찾아온 미셸을 별 말없이 받아주었다.
돌이켜보면 우리에게서 비켜간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었던 것은 두 사람 모두가 아니면 어느 한쪽이라도 순수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자존심과 같은 것들이 사랑의 순수한 본질을 가리고 있지 않았을까. 우리 모두가 사랑의 순수함을지킬 만큼 솔직하지 못했던 것이리라.
따라서 레오 카락스 감독의 의도대로 알렉스와 미셸은 다시 만나는 결말이 옳다고 생각하게 된다. 만일 이들의 지독하게 순수한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했다면... 그런 결말을 보는 우리의 마음은 얼마나 슬프고 쓸쓸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