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인한 집합 금지명령으로 더더욱 캐럴 듣기가 어려워졌다. 이렇게 말하면 이 판국에 속 편한 소리 하고 있다고 핀잔을 듣기에 딱이다.
그러고 보니 금년 성탄 전야에는 교회학교의 성탄 잔치도 여의치 않을 것이다. 그것은 캐럴을 부르고 성극을 준비하는 설렘을 교회학교의 어린이와 청소년에게서 박탈하는 것과 같은 의미가 될 것이다. 거주 형태가 아파트로 바뀌고 이웃과의 친밀감이 줄어들면서 서울에서는 새벽송이 사라진 것에 대한 아쉬움보다 더 큰 아쉬움을 금년 성탄에 느끼게 될 것 같다.
아내와 결혼을 하면서 교회를 다니게 된 나에게 있어 처음 접하는 교회 문화는 다소 생경한 것이었지만 일찌감치 성가대원으로 봉사를 하면서 무난하게 적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교회를 다니면서 일 년 중 가장 설레는 마음으로 맞이하는 것이 성탄절이었다. 다 큰 어른에게 어울리지 않는 말일지도 모르지만 독실한 불교 집안에서 태어나 교회 문턱에도 가보지 않은 나에게 성탄절은 그만큼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 나에게 성탄절이란 텔레비전의 성탄 특선영화와 늦은 밤 동네 골목길에서 아련하게 들려오는 새벽송으로 기억된다. 예수를 믿지 않는 집안인 만큼 예수의 생일은 아무 의미가 될 수 없으니 성탄 선물은 생각도 못할 것이었다.
그랬던 나이기에 성가대에서 성탄을 앞두고 준비하는 성탄 칸타타 연습은 성탄절을 기다리는 설레는 마음과 같은 의미로 맞이하는 시간이었다. 긴 연습에 몸은 피곤하지만 성탄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기쁨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금년에는 코로나19로 성가대가 모일 수 없으니 아쉽게도 성탄 칸타타를 준비하는 수고와 기쁨은 내년을 기약해야 할 듯하다.
거리에서도 캐럴이 사라졌으니 집에서라도 혼자 캐럴을 들으며 성탄 분위기를 낼 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을 것 같다. 음악을 좋아해서이기도 하지만 어릴 때 누리지 못한 성탄절에 대한 보상 심리랄까, 캐럴을 좋아해서 40~50 여종 정도의 캐럴 음반을 수집하게 되었다.
이 절기에 자주 듣게 되는 헨델의 메시아나 바흐의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 쉬츠의 크리스마스 히스토리아, 비발디의 글로리아와 같이 잘 알려진 클래식 음반 이외에도 중세와 르네상스의 캐럴, 영국의 전통 캐럴, 프랑스 각 지방의 캐럴, 독일의 전통 캐럴, 재즈풍의 캐럴, 그리고 대중음악 스타일의 캐럴 등을 다양하게 사서 들었다. 심지어는 설날, 고드름, 꼬마 눈사람, 탄일종 등 동요가 수록된 어린이 합창단의 오래된 lp까지 사모으게 되었다.
많은 캐럴 음반이 발매되었고 또 시중에 새로운 음반이 나오고 있지만 오래된 베스트셀러로 우리의 향수를 자극하는 음반으로는 미국의 대중 가수 팻 분과 빙 크로스비가 부르는 캐럴이 있다.
팻 분의 캐럴 음반은 이른바 빽판이라 불리는 해적판 lp로 어릴 때부터 줄곧 들었고, 빙 크로스비의 음반은 1977년 빙 크로스비의 사망에 맞추어 나온 라이선스 lp로 들을 수 있었다.
지금도 다시 구입한 중고 lp로 팻 분과 빙 크로스비의 노래를 듣는다. 팻 분의 감미로운 목소리와 빙 크로스비의 부드러운 바리톤으로 듣는 캐럴의 감흥이 남다르다. 그것은이 음반들에 추억이라는 노래가 가진 것 이상의 가치가 깃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이런 캐럴을 집에서 듣기에는 2프로 부족한 무엇인가가 있다. 물론 종교적인 내용의 전통적인 캐럴은 차분한 마음으로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다리는 의미에 적합한 반면 대부분 지난 세기에 작곡된 상업적인 캐럴은 들뜬 축제 분위기에 어울리는 노래들이다. 이런 캐럴을 집에서 조용하게 듣고 있으니 뭔가 아쉬운 것이다.
지금처럼 코로나19로 삶과 경기가 위축되어 있을 때일수록 길거리에서 흥겨운 캐럴이 넘쳐났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길거리를 들뜬 마음으로 걷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