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의 가톨릭교회와 개신교회는 오늘부터 성탄절 전야까지 4주간을 대강절, 혹은 대림절로 기리면서 차분하게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다리게 된다.
이것은 2020년 전 예수의 탄생을 기념할 뿐만 아니라, 지금도 말씀과 성례전을 통해 우리와 함께 하는 그리스도, 그리고 심판 날에 임재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며 준비된 삶을 준비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교회가 생겨난 이후로 지키며 기리는 절기로 그레고리력을 사용하는 가톨릭교회와 개신교회와는 달리 동방정교회에서는 율리우스력을 사용, 성탄절이 다음 해 1월 7일로 시기에 차이가 있지만 교회력으로는 오늘부터 한 해가 새롭게 시작되는 것이다.
성탄절까지 4주간 동안 교회는 회개를 뜻하는 보라색을 의식 색으로 정하고 참회의 마음으로 차분하게 한 해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은 교회와 가정에서 푸른 전나무를 장식하고 촛불을 밝히며 성탄절을 손꼽아 기다리는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비단 기독교인이 아닐지라도 성탄절, 보다 대중적인 용어로 말해 크리스마스는 모든 사람들의 축제가 된 지가 오래다.라디오와 길거리에서는 캐럴이 넘쳐나고 연말과 맞물려 한껏 들뜬 분위기속에서 사람들은 한 해를 보내고 또 한해를 맞이하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에 들뜬 분위기도 많이 시들해졌다. 경기가 예전 같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그만큼 우리의 삶에 여유가 없어진 까닭이다. 게다가 저작권 문제로 우리의 주변에서는 점차 캐럴마저 사라져 가고 있는 실정이다.
교회에서는 성탄절이 상품화되고 세속적으로 이해되는 것에 대하여 언제나 경계와 우려의 따가운 시선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과하지만 않다면 성탄절에 세속적인 즐거움이 가미되어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방법은 다르더라도 아기 예수의 탄생을 원인으로 온 세상이 즐거울 수 있다면 그 또한 의미가 없진 않을 것이다.
오히려 세속화에 대한 우려는 교회 내부에 심각하게 자리 잡고 있는 문제라는 생각이다.
일례로 최근 몇 년 동안 대형 교회의 담임 목사직 세습 문제로 교회가 세간의 따가운 눈총을 받고 교회의 신망이 바닥에 떨어진 일이 많았던 사실을 들 수 있겠다.
사실 이와 같은 교회의 세속화는 세상에 앞서 교회가 먼저 분노하고 자정의 노력을 아끼지 말았어야 했다. 그러나 교회가 스스로의 치부를 드러내고 일신하는 노력을 다하기보다는 치부를 애써 외면하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볼 일이다.
그리고 한국 교회내 물질주의의 유입은 비단 대형 교회 만의 문제가 아니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의 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일 것이다.가톨릭교회와는 달리 개교회 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개신교회로서는 이것이 외면하기도 힘들고 언제든지 빠지기 쉬운 문제일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볼 때 교회가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세상과 구별되기보다는 물질로 대변괴는 세상과 적절히 타협하고 있다는 것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그 이유는 언제부터인가 교회에서 축복이 넘쳐나는 반면 통렬한 회개의 목소리가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중세의 가톨릭교회가 세속화되고 부패했을 때개혁의 기치를 내걸었던 프로테스탄트가 지금은 오히려 개혁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을 아프게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나 자신이 개신교도인지라 내가 가톨릭교회의 사정에 대하여 알 수도 없고, 언급할 입장도 아니다.
개신교회를 두고 볼 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자본주의가 가져다준 물질 만능의 시대에 세상과 구별되어 있어야 할 교회가 물질주의와 적어도 타협하고 있다면 그것은 교회가 타락하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라는 것이다.
개신교계의 뜻있는 지도자들이 지금이야말로 제2의 종교개혁이 필요한 때라고 말하는 것도 바로 이것이 이유가 아닐까.
2020년의 대강절에 2020년 전 이 땅으로 온 예수와 다시 이 땅으로 올 예수를 떠올리면서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임재가 먼저 이루어져야 할 곳이 바로 교회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예수여, 속히 오소서."
이것이 위기의 한국 교회를 위한 갈급한 기원이 되기를 평신도의 한 사람으로서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