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에 내리던 첫눈의 인사

by 밤과 꿈

문득, 11월도 마지막 한 주간으로 들어섰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심지어 지금이 그 한 주간도 끝나가는 주말이라는 사실에 둔감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특별히 바빠서 정신없이 살았던 것도 아니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바쁘게 살아가기보다는 보다 느긋한 삶을 꿈꾸게 된다. 비록 경제적인 여유는 줄어들지라도 조금이라도 더 정신적인 풍요를 느끼면서 늙어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런데도 시간의 흐름에 둔감한 채 여유 없이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확장세에 있는 코로나19로 인해 답답해진 일상 때문이겠지, 그리고 도무지 상식적으로는 보이지 않는 정치 상황에 대한 짜증 때문이겠지 하고 정신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에 대한 핑계를 억지로 생각해보는 것이다. 그래야 자신의 무심함에 대한 아주 작은 위안이나마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이다.


그러고 보니 이달에는 첫눈이 내린다는 소식도 없었고 남은 며칠 동안에도 첫눈이 내릴 것 같지는 않다. 아무리 지구온난화로 기온이 올라 눈 내리는 날이 줄어들었다고 해도 예년에는 싸락눈 같은 첫눈이나마 11월에 만날 수 있었다.

겨울이 끝나기 전 한 번은 만날 첫눈이지만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기 전 안부를 묻는 인사처럼 11월에 찾아오는 첫눈의 반가움과 설렘을 기대할 수 없는 아쉬움이 크다.


우리 국토의 남쪽 바닷가에서 태어나 성장기를 보낸 나는 눈다운 눈은커녕 싸락눈조차 일 년에 한 번 보기 힘든 환경에서 자랐다. 겨울 내내 거의 영상의 날씨에서 살았다. 그렇다고 아주 따뜻했던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닌 것이 영상의 날씨에도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꽤나 매서웠던 기억이 남아있다.

이렇게 성장기를 보낸 나에게 있어 눈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현실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눈은 유별나게 공상에 빠지길 좋아했던 나에게는 상상으로 키워낸 그리움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첫눈이라면 반가움의 크기가 오죽했을까.

어릴 때 감동적으로 읽었던 동화로 에드몬도 데 아미치스의 '사랑의 학교'가 있다. 지금도 책장에 꽂혀 있는 그 동화 중에서도 첫눈이 내린 날의 이야기는 오랫동안 잊히지 않은 설레는 풍경이었다. 엔리코라는 소년의 일기 형식으로 된 이 동화에서 "눈싸움과 곧 보게 될 얼음, 그리고 집 안의 난로 생각에 즐거워하는" 엔리코의 마음을 따라 내가 엔리코가 된 듯 동화의 내용을 벗어나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치곤 했었다.

그 동화의 내용이 지금까지 잊히지 않은 것은 그만큼 눈에 대한 동경의 마음이 컸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그리움의 대상이었던 눈을 이곳 서울에서 성인이 되어 만났을 때 그 반가움과 기쁨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지금도 눈 내리는 밤에 소복소복 쌓여가는 눈을 볼 때 교통 혼잡에 대한 걱정에 앞서 반가움과 설레는 마음이 먼저 든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편으로 다음 날의 교통 혼잡과 미끄러운 길을 걱정해야 하는 대도시에서의 삶이 영 마뜩잖다. 그래도 도시에서 살아야 하는 이유가 남아있는 한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다만 이렇게 삶의 조건이 현실적인 문제를 드러낼 때 우리의 마음속에서 첫눈을 맞이할 때의 설렘과 푸근함과 같은 감성이 자리를 찾지 못하리라는 우려와 안타까움이 크다.

그래서 정호승 시인은 '마지막 첫눈'이라는 시에서

"마지막 첫눈을 기다린다....../첫눈은 내리지 않는다/이제 기다린다고 해서 첫눈은 내리지 않는다/내가 첫눈이 되어 내려야 한다"

고 노래했을지도 모른다.

11월에 겨울을 알리는 전령이 되어 내리는 첫눈과 반가운 인사를 나눌 틈도 없이 우리는 겨울의 속으로 서둘러 들어가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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