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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 젖는 삼각지를 바라보다

-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읽는 풍경(3)

by 밤과 꿈

버스를 타고 삼각지역을 지날 무렵 세찬 비가 흩뿌렸다. 빨간 정지신호에 걸려 있으니 유명한 대구탕 골목이 한눈에 들어온다. 입구에 ‘참 원조 대구탕’이라는 간판이 한낮인데도 불을 밝히고 있다. 하늘이 잔뜩 찌푸려 있었던 까닭이다. 1990년대 후반이었을 것이다. 삼각지역에서 후배들을 만나 대구탕 골목에서 대구탕을 안주 삼아 소주잔을 기울였던 것이. 그 외에는 삼각지라는 지역에 발을 디뎌본 적이 없었다. 40여 년을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살아왔으면서 말이다. 오늘도 빗물이 타내리는 차창을 통해 삼각지를 눈에 담고 있을 뿐이다. 그만큼 삼각지라는 지역이 한 번도 생활공간에 들어온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서울이라는 도시가 거대하다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된다. 지척인 용산역이나 남영동, 그리고 이태원에 대한 추억은 많지만 삼각지는 여전히 생소하기만 한 동네로 남아있다.

그러던 것이 언제부터인가 비록 직접 땅에 발을 붙이지는 못하지만 일주일에 한 번은 삼각지라는 지역을 눈에 담게 된다. 주일예배 후 집으로 가는 방향을 장충동을 지나 남산 2호 터널로 잡으면서 삼각지를 지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원효대교 방면으로 갈 때는 볼 수 없었던 대구탕 골목을 오늘은 생생히 보게 된다.


이렇게 일주일에 한 차례 지나가는 길이 공교롭게도 대중가수 배호가 부른 가요의 소재가 된 곳이라 자연스럽게 배호라는 가수와 그가 부른 노래를 떠올리게 된다. 이 가수가 1971년에 세상을 떠났으니 당시 미성년이었던 내가 배호라는 가수에 대하여 잘 알 수는 없었다. 다만 흑백 TV로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노래하는 모습을 보았던 기억이 있다. 저음이 매력적이었던, 그러나 신장병으로 요절한 가수 배호와 국민의 애창곡이 된 ‘돌아가는 삼각지’라든지 ‘안개 낀 장충단 공원’과 같은 노래를 알게 된 것은 한참 훗날의 일이었다. 그렇다고 가요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라서 이들 노래를 마음에 둔 적도 없었다.

그런데도 남산 2호 터널을 향하면서 장충단 공원을 지날 때마다, 그리고 원효대교로 가기 위해 삼각지를 지날 때마다 매번 배호의 노래가 떠오르는 것을 피할 수 없다. 그의 노래를 흥얼거리는 나를 아내와 딸이 힐난을 해도 어쩔 수 없다.


장충단 공원은 규모는 작아도 잘 조성된 조경이 아름답고 분위기가 있어 ‘안개 낀 장충단 공원’이라는 노래의 소재가 될 법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남산 성곽길과 연결되어 있으니 애정이 가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삼각지를 지나면서도 이곳이 노래의 소재가 될 만한 이유를 발견하지 못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1994년 지하철 6호선 공사로 철거된 삼각지로터리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노래에 공감할 경험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에서 유일했다는 입체 회전 교차로의 위용이 대단했을 것이고, 대구탕 식당처럼 오랫동안 터 잡은 맛집들이 노래에 사연을 더했을 것이다.


삼각지 로터리에 궂은비는 오는데

잃어버린 그 사랑을 아쉬워하며

비에 젖어 한숨짓는 외로운 사나이가

서글피 찾아왔다 울고 가는 삼각지


어떤 사연이 저다지도 사람을 슬프게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돌아가는 삼각지’라는 노래가 세상에 나온 1967년이라는 시대라면 가능하겠다 싶다. 내 유년의 기억으로 그 시절의 풍경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풍요롭지 못했지만 사람 냄새가 풀풀 나던 그 시절은 지나갔고, 배호라는 가수도 오래전에 세상을 떠났지만, 노래는 남아 고단한 시절을 말하고 있다.

명물이었던 로터리는 흔적조차 없어도 노래와 같이 궂은비에 오늘도 삼각지는 젖고 있다. 그리고 비에 젖은 채 방황하는, 후줄근한 사랑 하나쯤 대구탕 골목을 배회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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