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 뭣이 중한디?

-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더라 2(3)

by 밤과 꿈

자존감은 사람에게 없어서는 안 될 감정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존재감을 상실한다면 그 사람의 정신은 피폐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고금을 막론하고 전제와 독재를 일삼던 모든 정권이 반대자와 무지하지만 파괴력이 잠재된 민중을 억압하던 방법이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이는 인간의 존엄을 몰각케 하는 것이기에 중대한 범죄로 간주된다. 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 또한 정권의 유지에 해가 되지 않음에도 국민을 광기로 몰아넣는 구실로 학살을 자행한 범죄인 것이다. 그리고 히틀러는 역사상 가장 잔인한 독재자의 한 사람이며 최악의 전쟁광 취급을 받는 것이다.

자존감은 부부 사이에서도 지켜져야 할 중요한 문제다. 부부 사이의 갈등 대부분이 바로 자존감과 관련되어 발생한다고 할 수 있다. 결혼으로 단절된 사회 경력과 육아로 인한 여성의 자존감 저하, 그리고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과의 갈등. 반대로 사회적 실패로 무시당하는 남성의 자존감 상실과 부모의 기대에도 성적이 오르지 않아 우울한 자녀 등 가족 드라마의 흔하디 흔한 주제 대부분이 자존감과 연관되어 있다 할 것이다.


자존감과 비슷하지만 결이 다른 것으로 자존심이 있다. 사실 이 둘은 근본적으로 확연히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자존감이 자기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에 기초한 감정이라면, 자존심은 자신에 대한 타인의 평가에 기초한 감정이다. 자존감은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높이고 소중하게 여기는 감정으로 이를 잃게 되면 삶이 피폐해질 수도 있다. 그러므로 자존감은 한 사람이 삶을 영위하는 데에 있어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자존감과 자존심을 구별하여 볼 때 자존심이라고 하는 것이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있어서 독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데 다른 사람의 이목이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 결국 삶의 주인은 자신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치열한 경쟁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남의 이목에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을 남과 비교하지 말아야 한다고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남녀의 연애에 있어 자존심만큼 큰 변수가 없다. 연인 사이의 사소한 다툼은 대부분 자존심 때문에 일어난다. 이를 잘 아는 남자는 여자의 자존심을 건드릴 만한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하게 된다. 좋게 말하면 피차 상대방에 대한 배려심이 가장 충만할 때가 연애의 초창기라고 할 수 있다. 연애의 햇수가 늘어 오래될수록 매너리즘에 빠져 사랑의 전선에 이상이 생긴다. 그리고 비로소 상대방의 단점이 보이기 시작한다. 더불어 서로 상대방의 자존심을 상하게 할 말과 행동도 늘어난다.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는 말과 행동을 좋게 말해 배려라고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상대방의 진실된 모습에 대한 판단을 흐리게 하는 면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흔히 듣게 되는 “결혼을 하고 나니 사람이 영 딴판이다”라는 말이 이로 인한 것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에 충실하고 그 대상을 존중한다면 상대방에게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판단할 기회를 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서로가 이해하기 어려운 점은 대화를 통해 이해하고, 잘못된 점이 있을 때에는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불필요한 자존심으로 시간과 정력을 낭비할 이유가 없다.


내 경우는 시작부터 H의 자존심을 상하게 한 것 같아 나도 자존심을 좀 상해서 H의 상한 마음을 상쇄할 생각을 가지기도 했다. 그래서 일부러 내 자존심이 상할 만한 일을 찾기도 했던 것이다.

캠퍼스에 꽃이 화창하게 핀 봄날, H가 과 친구들과 지천으로 핀 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을 보고 나도 따라나섰는데,

“아저씨는 왜 자꾸 따라오세요?”

H의 과 친구 한 사람이 뚱한 표정으로 말하는 것이다.

“단체사진을 찍을 때 찍어드리려고요.”

이쯤이면 H가 나서서 날 달래 돌려보낼 만도 하건만 H는 간혹 내 모습을 흘낏 쳐다볼 뿐, H도 참 어지간한 성격이었다.

나도 자존심을 상해 보고자 한 행동이었지만 자존심이 상할 것도 없었다. 내가 자원해서 한 행동이니까. 내가 H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고 해서 그녀를 생각하는 내 마음이 부족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나름 나도 H를 이해하고자 했지만 본말이 전도된 듯한 시간과 감정의 불필요한 낭비가 더없이 피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