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읽는 풍경(6)
대학 친구들과 벼르고 벼르다 일요일인 오늘, 모교를 다녀왔다. 사실 석 달 전에 만났을 때 친구들이 졸업을 한 후 제대로 모교를 가 본 적이 없다면서 다음에는 학교에서 만나자는 말을 했을 때 다소 의외라는 생각을 했었다. 왜냐하면 친구들이 그동안 단 한 번도 학교를 가 보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참 현역으로 사회생활을 할 때에야 그럴 수 있는 일로 치부하겠지만, 은퇴한 지 수년이 지나도록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사실 나는 그 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친구들은 대학교 음악감상 동아리의 동기생들이다. 우리들은 동아리라는 공간에서 쌓인 시간의 추억을 공유하고 있다. 따라서 화제의 중심은 일상의 안부와 함께 공유한 시간의 추억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친구들 뿐만 아니라 선배를 만나도 줄곧 서로가 공유한 지난 시간에 대한 대화가 실종되었던 것이다. 동아리 출신 선후배에는 유독 금융 계통에서 일하는 사람이 많았다. 매일 일하는 것도 지겨울 듯한데 퇴근 후 만나서도 은행 이야기로 시간을 채우기가 일쑤였다. 친구들이 모두 현역에서 은퇴한 이후에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너무 현실 만을 쫓아 살아온 탓인지 함께 공유했던 지난 시간을 추억할 여유가 없어 보였다. 이런 모습은 선후배를 만나도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으로 자신들의 삶을 되돌아볼 여유조차 찾을 수 없이 살아가는 우리 모습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약간은 불편했다. 그러던 차에 갑자기 옛날 생각을 떠올려 금년의 마지막 모임을 학교 앞에서 갖자는 제안이 별일이다 싶었던 것이다. 다들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비로소 지난 시간을 되돌아볼 마음의 여유를 찾았는가,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술기운에 하는 흰소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럴 때 한 사람이 나서서 약속을 잡지 않으면 마음 한구석에서 일어나는 감수성의 발로가 정말 흰소리로 끝날 공산이 크다. 그래서 일찌감치 내가 나서서 성가대 연습이 끝나는 시간을 고려, 약속을 잡아버렸던 것이다.
전철역에서 만나기로 한 친구들이 성탄 칸타타오 약간 길어진 연습시간에도 불구하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다들 약간은 들뜬 모습이다. 마을버스를 타고 학교를 향하는 모습에서 예전 경춘선 열차를 타고 대성리나 강촌으로 M.T. 를 가던 모습을 떠올린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물론 엄청난 비약임에는 틀림없다. 그래도 친구들에게서 평소와는 달리 가벼운 흥분을 느낄 수 있었다. 졸업한 년도가 저마다 다르지만 삼십 년 이상 세월이 흘러 찾아온(내가 생각해도 좀 심했다. 내 경우는 결혼 전에도 민주동문회 일로 모교를 왔었고, 결혼 후에도 가족과 함께 꽃구경으로 몇 번 왔었다.) 모교에 대한 감회가 남다를 밖에. 캠퍼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옛 감회에 젖어든다. 교양 체육이 사라지면서 사용의 빈도가 줄어든 운동장을 없애고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는 등의 변화가 있더라도 캠퍼스의 골격이 변하지 않아 감회에 젖기에 충분했다. 우리는 캠퍼스 곳곳을 사진으로 남기느라 분주했다. 함께 캠퍼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땐 지나가는 대학생에게 부탁도 하고. 하필이면 중국에서 유학온 여학생이다. 별난 아저씨들이다,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후문에 비해서 정문에 즐비한 상가의 구조 또한 크게 변한 것이 없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예전에 즐겨 찾았던 주점이나 식당, 카페가 한 곳도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강산이 세 번도 더 변했을 세월이니만큼 당연한 사실이겠지만 아쉬움이 컸다. 비록 예전에 즐겨 가던 곳은 아니지만 부담 없는 외양의 식당에서 곱창전골에 소주를 마시며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라진 추억의 장소에 얽힌 이야기를 오래 나누었다.
모두가 즐거웠던 하루였나 보다. 이구동성으로 오길 잘했단다. 그리고 앞으로 언제 또 오겠냐,라고 말한다. 인생 다 산 사람처럼 말들을 한다. 그러니까 삼십 년이 넘도록 한 번을 오지 못한 것이다. 고작 두 시간 거리에 산다고 멀어서 오기 힘들다면 답이 없다. 우리에게 추억이 없다면 그 인생이 얼마나 삭막할까. 그리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추억은 늘어가는 마음의 빈자리를 넉넉하게 채우게 될 것을. 내가 성가시다고 생각할 만큼 친구들을 이끌고 다녀야 할 것 같다.
사실, 일요일이라 더더욱 썰렁하게 느껴질 겨울의 캠퍼스를 그냥 걸어 다니고 사진 몇 장 찍었을 뿐인데 무엇이 우리에게 큰 만족감을 주었을까. 나는 그것이 바로 추억의 가치라고 생각한다. 추억 속의 일들은 우리가 이미 경험한 것이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 경험은 큰 안도감을 준다. 추억이 바로 그런 것이다. 치열한 경쟁에 익숙해진 삶에 마음의 고향 같은 것이 추억이다. 어린 시절의 추억은 물론 성적을 내기 위해 학우들과 경쟁을 하던 학창 시절까지도 경쟁의 사이사이에 끈끈한 정이 흘러 추억을 남겼다. 지금처럼 치열한 경쟁 속에서 지내야 하는 청소년에게 어떤 추억이 있어 그 시기를 떠올리게 할는지, 안타까운 마음이다. 대학 시절은 젊음이 주는 순수와 열정이 분출되는 시기이다. 그렇기에 고민도 많은 때이지만 그만큼 잊을 수 없는 추억이 포도송이처럼 마음에 알알이 맺혀 영그는 때라고 하겠다. 그 추억의 공간에 와 있기에 우리 마음이 부드럽게 흔들리는 요람 속에 있는 것처럼 편안하고 포근함을 느끼는 것이다. 그런데도 일상에서 느끼기 힘든 이 행복감을 더 이상 맛보지 않겠다니 제정신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