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으로 쓰는 에세이(7)
전편에서 도시를 떠나야 할 이유(딱히 그런 내용은 아니었지만 결국 그런 취지)를 언급했다면, 본편에서는 우리가 도시에서 살아야 할 이유를 살펴보도록 하자. 그래야 여태 도시를 떠나지 못하고 있는 자신에 대한 어설픈 변명이나 위안이 되지 않을까 싶다. 도시에서 살아야 할 이유라고 했지만 정확하게 말하자면 도시에 살아서 좋은, 혹은 편리한 이유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해서는 전편에서 이미 언급한 내용이 있지만 좀 더 살펴보기로 하자. 전편에서 언급한 것처럼 사람들이 도시에 꾸역꾸역 모여드는 것은 도시가 가진 경제적 저변이 넓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경제적인 성공을 이루는 것도 아니고, 상대적 빈곤으로 늘 불안감을 지니고 살게 되는 것이 대다수 도시인의 숙명 같은 것이라는 사실도 이미 언급했다. 그러면서도 도시를 떠날 수 없는 큰 이유라면 자녀들의 교육 문제를 들 수 있다. 아무래도 도시의 규모가 클수록 교육 인프라가 잘 갖추어져 있기 마련이다. 특히 사교육의 비중이 절대적인 우리 현실에서 대입에서 좋은 성과를 내는 학원과 소위 일타강사라는 사람들은 대도시인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비정상적으로 과열된 교육열은 이른바 일류대학을 가기 위해서는 초등학교에서부터 계획적으로 기초를 다져야 한다는 서글프고도 웃픈 현실을 외면하지도 못한다. 부정할 수 없이 뒤틀린 현실 앞에서 학부모들의 극성을 비난했다가는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의 오지랖이라는 힐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자녀를 다 키운 후나 은퇴 후에 대도시를 벗어나 여유로운 생활을 꿈꾼다지만 현실성이 떨어지는, 그야말로 꿈이다. 듣기 좋은 말로 전원생활이라지만 자연이라는 것이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쉼 없이 사람의 손길을 요구하는 것이 자연과 가까이 살아가는 생활인 것이다. 이에 더하여 노화에 따른 질병을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다. 아무래도 의료 인프라가 잘 갖추어진 도시가 장년의 나이에 적합한 환경을 제공한다고 볼 수 있다. 탈도시를 계획한다면 아직 일할 수 있는 나이에 귀농을 준비하고 실천하는 것이 현명한 판단일 것이다. 그리고 시골에서의 생활에 녹아들어 가야만 탈도시에 대한 만족도가 높지 않을까 생각한다.
너무 도시에 대한 부정적인 면만 전편에 이어 계속 말했다. 도시, 특히 대도시는 경제적인 이유뿐만 아니라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을 분명 가지고 있다. 그것은 위에서 언급한 교육 인프라와 의료 인프라, 그리고 전편에서 언급한 문화 인프라가 잘 갖추어져 있다는 점에서 삶의 질을 높인다. 문화센터의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학업을 떠난 일반인에 대한 교육과 취미 활동이 가능하고 미술 전시회, 음악회와 영화, 연극 등 문화 행사가 연중 끊이지 않아 관심과 부지런함만 있다면 예술을 마음껏 향유할 수 있다. 그리고 서울과 같은 규모의 대도시라면 대형 서점과 도서관, 심지어는 박물관까지 가까이에 있어 지식의 습득과 삶의 지혜를 얻을 수도 있다. 이와 같은 외향적 조건 이외에도 도시 생활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내적인 조건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도시가 부여하는 활력, 즉 생동감이다. 어떻게 보면 생동감이야말로 도시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일 것이다. 도시 생활의 긴장과 스트레스도 삶의 활력으로 거뜬하게 극복할 수 있다. 활력이 넘치는 도시의 풍경을 오늘 볼 수 있기에 긴장이 넘치는 이곳에서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는 것이다.
우디 앨런은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뉴욕이라는 도시를 테마로 뉴욕 삼부작이라고 흔히 말하는 영화를 만들었다. 그중에서 뉴욕이라는 대도시에 대한 묘사를 우디 앨런이 직접 말하는(우디 앨런은 이 영화에 직접 주연으로 출연했다) 오프닝 신이 인상적인 영화 ‘맨해튼’은 결국 뉴욕이라는 도시에 헌정하는 찬사라고 할 수 있다. OST로 사용된 조지 거쉬인의 Rhapsody in Blue가 흐르는 가운데 뉴욕의 풍경이 화면을 채우면서 우디 앨런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의 오프닝 신만큼 마음에 잔잔한 흥분을 가져오는 영화의 오프닝 신을 내 기억으로는 달리 찾을 수 없다.
도시라고 하는 생존의 정글에서는 긴장 속에서 하루를 보내는 만큼 그 긴장을 해소할 밤문화가 발달하게 된다. 도시의 밤문화가 소비적인 문화이기는 하지만 반드시 퇴폐적으로 여길 필요는 없다. 물론 도시의 밤문화가 퇴폐적인 향락 문화와의 연계 가능성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반드시 부정적으로 볼 문제는 아닌 것이 날마다 긴장과 이완이 교차하면서 도시 특유의 생동감을 재생해서 생성시키기 때문이다. 각박한 도시 생활에서 밤의 가벼운 일탈이 용인하지 못할 일은 아닐 것이다.
나는 하루 일과가 끝난 뒤 함께 수고한 직장 동료들과 인도까지 점거하며 맥주 한 잔 하는 분위기라든가 마음껏 젊음을 발산하는 홍대거리의 붐비는 모습을 사랑한다. 서울이라는 도시의 낯설지 않은 풍경으로 그 또한 생활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이왕 살아야 하는 도시 생활이라면 날마다 긴장 속에서 감동 없이 살아가는 것보다는 긴장과 이를 해소하는 이완을 거듭하며 살아갈 새로운 힘과 희망을 가지는 것이 현명한 생각이지 않을까.
여기에 미국의 재즈 피아니스트 로이 클락의 Cool Struttin’이라는 음악이 있다. 곡상에 어울리게 굳이 번역하자면 ‘멋진 발걸음’이라는 제목의 이 곡은 활기차게 출발하는 아침, 출근길의 풍경을 연상케 하는 멜로디 라인과 리듬으로 진행된다. 게다가 하이힐을 신고 건강한 종아리를 드러낸 스커트 차림의 여인의 사진을 디자인한 음반 재킷이 일품으로 곡의 이미지를 그대로 전달하고 있다. 이 음악과 같이 밤사이 가벼운 일탈로 하루를 살아갈 에너지를 충전한 우리, 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며 새날을 출발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