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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과 꿈 Feb 28. 2024

인간관계의 협착(狹窄)

 지난주 눈이 많이 내린 날 아침, 눈을 쓸다 그만 허리를 삐끗했다. 물기를 많이 머금고 있는 눈이라 생각보다는 무게가 나갔던 것이 원인이었다. 아무래도 허리를 비틀어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이 평소에 쓰지 않았던 근육을 놀라게 했을 것이다. 이럴 경우 몸을 반듯이 하고 가급적 많이 움직이는 것이 불편한 허리 상태를 회복하는 길이다. 하지만 그것이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이던가. 허리를 펼 수 없는 것이 영락없는 꼬부랑 노인네가 된 형국이다. 이틀 정도 불편을 겪다 정상을 되찾았으니 크게 심한 편은 아니었지만, 내 나이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아픈 허리 때문에 적지 않게 고생을 하는 모양이다. 오늘도 교회에서 권사님 한 분이 나이 육십을 넘기면 대부분의 남자가 척추협착이라는 증세를 앓게 된다는 이야기를 화제에 올리고 있었다. 다들 나이가 들다 보니 건강 문제가 화제의 중심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실 나이가 들면서 근육이 빠지게 될 것이고 근육의 감소는 척추를 제대로 지지하지 못해 허리가 탈이 아는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던 나는 척추협착의 증세를 인터넷으로 찾아보다가 ‘협착’이라는 단어에 대하여 곰곰 생각해 보았다. 협착의 의미가‘자리한 사이가 좁음‘이라는 뜻으로 긍정적인 의미로는 쓸 수 없는 듯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가까운 듯 보이는 인간관계에서도 협착과 같은 부정적인 관계가 있을 듯싶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서로의 이익을 위한 관계, 즉 순수성이 결여된 관계가 이런 경우에 합당한 예라고 하겠다. 이렇게 형성된 인간관계라면 그 사이는 차라리 거래관계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나 싶다. 우리가 하는 하는 직장생활 또한 이에 별반 다르지 않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줄을 잘 서야 한다“는 말이나 이 줄을 잘 못 섰을 때 ”끈이 떨어졌다“라는 말을 흔하게 듣곤 한다. 모두가 직장에서의 대인관계가 순수한 인간관계가 될 수 없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직장에서도 평생 교류하는 특별한 친분을 나누는 사이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적으로 드문 경우이고 보편적으로 볼 때 직장에서 형성되는 인간관계가 그렇다는 말이다. 비단 직장뿐만 아니라 사회생활에서 형성되는 모든 인간관계가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또 이런 말도 흔하게 한다. “이곳(직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다”라고.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 말의 의도를 생각하면 고소를 금치 못할 일이다. 직장 구성원들의 단합을 강조한 말이겠지만, 그렇다고 어떻게 인간적 친밀도에 있어 가족에 비할 바가 있을까. 어울리지도 않는 이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을 만큼 사회적 인간관계라는 것이 강제적이고 일방적이다. 그렇게 이루어진 인간관계는 협착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게 협착된 인간관계는 비단 사회뿐만이 아니라 가족과 친족 사이에서도 형성될 수 있다. 가장 가까운 부부 사이도 헤어질 수 있다. 또한 이해에 따라 동기간에도 평생을 척을 지고 살기도 한다. 친족 간도 마찬가지. 도시에 뿌리를 내리고 산 사람들은 생소한 이야기겠지만 시골에서는 종손이 일가 친족들 몰래 종중의 땅을 남에게 파는 일이 적지 않게 일어났었다. 땅의 명의를 종손에게 해놓는 점을 악용한 경우로 사람이 혈연으로 가까운 사이일지라도 그 사이가 협착된 예라고 하겠다.

 참, 인간관계라는 것이 그렇다. 타인과 섞여 산다는 일이 생각처럼 간단한 일은 아닌 것이다. 순수한 관계가 아닌 협착된 대인관계가 난무하는 가운데 물살이 드센 협곡을 지나가는 것이 인생이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상처를 입고, 또한 남에게 입히는 것이 삶의 여정일 것이다. 그래도 그 여정에서 순수함을 잃지 않는 만남이 많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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