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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과 꿈 Mar 20. 2024

한 장의 포스터가 전달하는 영화의 감동

 K 드라마가 외국에서 관심을 끄는 이유라면 지금이야 콘텐츠가 다양해졌지만 초창기에는 우리 드라마가 가진 가족 간의 끈끈한 사랑 등 서양의 콘텐츠에서는 이미 사라져 버린 가치를 우리 드라마에서 발견할 수 있어서였다고 할 것이다. 미국으로 대표되는 선진 산업사회에서 아무리 인간미가 많이 상실되었다고는 해도 사람으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가치가 깡그리 사라졌을 리가 만무하다. 미국도 유럽도 사람이 살아가는 곳이 아닌가. 문화적 차이가 서양을 보다 개인주의적 사회를 형성하게 했고, 우리 사회는 아직 공동체적 가치가 좀 더 남아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것은 우리의 산업화가 뒤늦었다는 현상과 오랫동안 우리의 정신을 지탱해 온 유교의 영향이 함께 어우러진 결과일 것이다.

 또 한 가지 간과해서는 안될 것으로 지나치게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상업 방송의 영향이 있다. 이른바 ‘미드’라고 부르는 미국의 방송 드라마는 선정적, 폭력적이라는 범주를 벗어나는 경우가 별로 없다. 예전에 TV로 보던 ‘초원의 집’이나 ‘월튼네 사람들’과 같은 가족 드라마가 사라졌기에 K 드라마에 시선이 쏠리는 측면이 있었을 것이다. 물론 ‘대장금’과 같이 이국적인 내용에 적당한 러브스토리가 결합된 재미도 놓칠 수 없는 요소라고 하겠다.


 가족 간의 끈끈한 사랑을 주제로 한 영화로 비토리아 데 시카 감독의 ‘자전거 도둑’은 진한 감동을 주는 영화의 하나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패전국 이탈리아의 피폐해진 상황에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가장과 어린 아들의 가족애를 내용으로 하고 있는 영화로 로베르토 로셀리니 감독의 ‘무방비 도시’와 함께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을 대표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영화 ‘자전거 도둑’은 ‘무방비 도시’와 마찬가지로 전문 배우가 아닌 아마추어를 연기자로 기용, 제작되었다.


 전후의 로마, 안토니오는 오랫동안 생계를 이어갈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 벽보를 붙이는 일을 소개받게 되지만 그 일을 하기 위해서는 풀통과 사다리를 실어 나를 자전거가 필요하다. 이에 안토니오의 아내는 아끼던 침대 시트를 팔아 자전거를 마련하고. 안토니오는 희망에 차서 벽보 붙이는 일에 나서지만 벽보를 붙이면서 시선을 두지 못한 사이에 자전거를 도둑맞게 된다. 실의에 빠진 안토니오는 아들 브르노와 함께 잃어버린 자전거를 찾아 나선다. 그러나 자전거를 찾기는커녕 자전거 도둑으로 몰리는 지경에 빠진다.


 복선이라고는 전혀 느낄 수 없이 지극히 단순한 플롯으로 이루어진 영화이지만 뜻밖에도 이 영화는 여운이 오래 남는 감동을 준다. 이 영화의 어떤 요소가 영화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동하게 만드는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아들 브르노의 존재에 있다고 생각한다. 브르노는 아버지 안토니오가 자전거의 행방을 찾아 나설 때 줄곧 아버지와 행동을 같이 한다. 그 과정을 같이 한다는 것은 두 사람 사이에 끈끈한 정서적 유대감이 형성되었다는 사실을 뜻한다. 특히 안토니오가 자전거 도둑으로 몰려  곤욕을 치르고 난 뒤 슬픔과 분노를 억누르고 부자가 손을 꼭 잡고 앞을 응시하며 걸어가는 엔딩 신은 큰 감동을 준다. 이 장면에서는 현실의 어려움 속에서도 내일의 희망을 잃지 않는 두 사람의 연대감까지 느끼게 된다.


 비토리아 데 시카 감독의 ‘자전거 도둑’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영화의 하나다. 소장한 DVD로 많이 봐서 영화의 장면들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워낙 좋아하는 영화인지라 예전에 아마존에서 이 영화의 포스터를 구입해 두었다. 물론 오리지널은 아니고 복제 포스터이지만 이 포스터를 바라보는 마음이 따뜻하고 애틋하다. 영화 ‘자전거 도둑’의 포스터 디자인은 대개 세 종류가 있다. 우선 안토니오 부자가 자전거의 행방을 찾다 길바닥에 나란히 앉아 쉬고 있는 모습을 도안한 것과 부자가 손을 잡고 선 모습을 실사가 아닌 그림으로 도안한 것이 있다. 부자가 손을 맞잡고 있다는 점에서 영화의 감동을 온전히 전해 줄 것 같지만 그림으로 그려진 옆모습이 동적이라기 보가는 정적이라 영화의 엔딩 신이 주는 감동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 반면 부자가 비를 맞으며 자전거의 행방을 찾고 있는 스틸컷을 풀 사이즈로 도안한 미국 포스터는 영화의 감동을 제대로 전달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포스터가 바로 이것으로 포스터를 볼 때마다 영화에서 느낀 감동이 새록새록 되살아나는 것이다. 움직임을 잘 포착한 사진 하나가 주는 감동을 제대로 깨닫는다. 한 장의 포스터가 영화 한 편의 감동을 고스란히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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