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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과 꿈 Mar 23. 2024

아내가 꽃소식을 전했다

 출근길의 아내가 들뜬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여보, 개나리꽃이 폈네“라고.

 사실 나는 며칠 전 이미 예쁘게 꽃을 피운 개나리를 눈에 담았던 터. 그래도 노란 개나리꽃을 보고 한껏 들떠 있는 아내의 모습을 떠올리면 그 사실을 말할 수가 없었다. 꽃소식을 왜 자기에게 전하지 않았냐는 힐난이 쏟아질 게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

 결혼을 해서 부부로 산다는 것이 남편 된 입장에서 볼 때 점차 눈치가 늘어가는 일이다. 나처럼 삼십 년을 한 여자와 부부로 살다 보면 눈치가 구 단은 못되더라도 팔 단 정도는 되지 싶다. 남자라는 존재가 본래 눈치가 모자라 여자의 직감 앞에서는 자신의 사소한 실수에도 큰 죄인처럼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눈치가 늘지 않을 도리가 없지 않을까.

 아내가 여러 날 지방 출장을 갔을 때, 이른 잠에 빠진 나에게 전화를 해서는 자기도 없는데 잠이 오는 모양이네, 라는데 이런 장난스러운 트집이나 시비에도 잘 대처해야 한다. 잘 못 대응했다가는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의 가치를 깨닫게 된다.

 그래도 이와 같은 아내의 사소한 간섭이 싫지는 않다. 서로가 관심사를 공유하고 싶다는 바람이나 좀 더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감정은 이십 대에 누구나 경험하는 연애 감정과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아내의 그런 모습은 아내의 마음이 젊음을 유지하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나아가서 사람 사이의 모든 관계도 서로가 서로에게 간섭을 형성하고 유지하는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사이의 얽힘으로 우리는 서로를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대상에 대한 인식이 있음으로 해서 우리는 서로 타인이라는 관계에서 벗어날 가능성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얽힌 사람의 사이에서 우리는 상처를 받기도, 입히기도 하지만 적어도 서로에게 무관심한 타인은 아니지 않은가. 말하자면 갈등으로 영원한 타인이 될 수도 있지만 관계 개선의 가능성이 항상 열려 있는 사이이기도 하다. 어떻게 생각하면 사람이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서로에 대하여 구속된다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할 것이다.


 아내의 말 한마디에도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것, 다름 아닌 서로가 부부의 연으로 구속되었기 때문이다.

 생각을 확장해 볼 때, 자연의 일부로서 우리는 생태계의 틀 안에서 얽혀 있다. 곧 우리는 자연에 구속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이기심으로 생태계를 파괴하면 그 대가를 반드시 지불해야만 한다. 환경문제가 당면한 우리의 과제가 된 지금, 누구나가 긍정할 사실이다.

 또한 우리에게 생명이 주어졌기에 생명을 거두어 갈 날이 반드시 온다. 지구도, 우주도 시작이 있었으므로 끝이 있기 마련이다. 성서에 기록된 창조 사역의 내용이다. 아담과 하와로부터 비롯된 원죄로 인한 구속이 구약시대의 이야기라면, 예수가 십자사형을 받음으로 우리의 죄를 대속, 우리가 구원을 얻는다는 새로운 약속, 창조주와의 새로운 관계, 즉 구원 사역에 따른 구속이 신약시대의 이야기이다.

 마침 지금이 사순절, 며칠 후면 십자가로 대표되는 예수 수난의 드라마가 절정으로 치닫는 고난주간을 맞이한다. 모든 기독교인들은 이때, 금식과 묵상 등의 방법으로 예수의 수난에 동참한다. 그 이유가 뭘까?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음으로써 예수와 관계를 맺고 그 가르침에 구속되었기 때문이다.

 아내가 전한 우연한 꽃소식이 예수의 수난으로까지 생각을 넓혀 갔다. 사위가 온통 꽃천지를 이룰 때, 예수가 죽음을 이긴 부활절과 부활 시기를 맞이할 것이다. 꽃소식도 예수 부활의 복음도 모두 생명을 전하고 있으니 우리는 정말 가슴 벅찬 시간에 머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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