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밤과 꿈 Apr 04. 2024

지난 시간과의 만남이 새로운 하루

 지난 부활절에 서로 다른 층위에서 과거와 현재가 맞닿는 경험을 세 번 했다. 이렇게 말하면 얼핏 생각하기에 대단한 것 같으면서도 무슨 SF소설도 아니면서 뜬구름을 잡나 싶을 것이다. 그러나 세 번의 경험은 뜬구름을 잡는 이야기가 아니라 실질적인 내용을 가진 이야기이다.

 먼저 부활절이기에 이천 년도 더 오래전에 일어났던 예수의 부활 사건으로 과거와 현재가 만난다. 물론 기독교인에게는 예수의 부활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죄의 대속과 구원이라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현재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예수를 역사적 존재로 한정해 생각할 때 예수의 십자가형과 부활은 과거에 있었던 사건으로 볼 수 있다. 기독교 신앙이 없는 사람에게는 이 또한 뜬구름 같은 이야기에 지나지 않겠지만, 나는 기독교인이므로 나에게 있어 예수의 부활은 여전히 현재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과거의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한 번 과거와 현재가 만난다.


 그리고 부활절 예배 후 성가대 연습을 끝내고 장인어른과 장모님의 산소를 다녀왔다. 일부러 부활절에 맞춘 일정이 아니라 성가대의 부활절 칸타타 연습으로 시간이 여의치 않아 미루어 놓았던 일정이었다. 성묘나 참배라는 행위에 대하여 생각을 할 필요가 있다. 성묘나 참배가 이미 과거에 세상을 떠난 사람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목적을 가졌다는 점에서 이를 통해 과거와 현재가 만난다고 할 수 있다. 제사도 마찬가지. 공동체의 결속과 질서를 위해 마련된 장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전통 장례 습속이 망자와의 유대를 사후에도 공동체가 지속한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혈연 혹은 가족 공동체의 일원이 생사를 달리하는 과거의 사건은 현재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끝으로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내 지난 시간 속에서 추억의 순간과 만난다. 서울이 가까워져 올수록 정체가 시작되는 고속도로, 차 안에서 라디오로 호세 펠리치아노가 부르는 ‘Once there was a love’를 듣는다. 해 질 녘 노을에 붉게 물들어가는 풍경과 이 노래가 잘 어울린다. 헤아릴 수 없도록 많이 쏟아져 나오는 대중음악의 하나로 그만큼 쉽게 잊힐 수도 있고, 세대가 다르면 아예 이 노래를 들어본 적이 없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말은 이 노래가 과거의 내 기억 속에 저장되어 있었다는 뜻으로 우연히 라디오 방송을 듣게 되어 그 기억을 떠올리게 된 것이리라. 어쩌면 불명확한 추억의 공간에서 이 노래가 오래 머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 노래를 매개로 해서 지금의 나는 내 과거와 만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하루에 세 번을 현재가 과거와 맞닿는 경험을 한다. 어쩌면 세 번이 아니라 더 많이 과거의 사건이나 자신과 만났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런 경험은 매일 반복해서 일어나는 일상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지난 일요일의 경험이 특별하게 생각되는 것은 부활절이라는 특별한 날에 마찬가지로 돌아가신 장인, 장모님을 참배하기 위해 공원묘지를 찾는, 일상이라고는 할 수 없는 일이 같은 날에 겹쳤다. 게다가 옛 노래 하나로 해 저물 때의 센티멘털한 감흥에 젖는 시간을 가졌다. 그 시간은 과거의 자신과 만나는 접점이라고 하겠다. 세 번째의 경험은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겠지만, 의외로 지난날의 자신을 만날 기회가 많지 않다. 그만큼 우리 모두 여유 없이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지난 일요일은 아주 특별한 하루였다. 생각해 보면 한 개인이나 보다 큰 공동체에게 과거와 현재는 분리할 수 없는 고리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시간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역사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맞이하는 하루하루가 과거와 연결되어 있다고 할 것이다. 다만 이 사실을 매번 인식하지 못하고 앞만 바라보고 살아갈 따름이다. 간혹이라도 앞이 아니라 지나간 시간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나간 시간을 점검할 때에 오히려 지금이 새롭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내가 꽃소식을 전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