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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과 꿈 Apr 16. 2024

한 진보 정치인의 퇴진이 안타깝다

 이번 총선에서 의석을 한 석도 확보하지 못한 녹색정의당의 심상정 의원이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명맥을 유지해 온 진보정당을 응원하는 한 사람으로서 심상정 의원의 은퇴를 바라보는 마음이 결코 편치가 않다. 그래도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선명 진보정당의 명맥을 이어온 장본인으로 남북 분단의 현실 속에서 편견의 시선을 피하기 어려운 여건에서도 진보정당이 자리 잡는 데에 그 성과가 적지 않았기에 심상정 의원의 은퇴 선언이 안타깝게 생각되는 것이다. 자유당 시절 조봉암의 진보당 이후로 그 명맥이 끊긴 진보정당이 원내로 진출한 것은 고 노희찬 의원과 심상정 의원의 업적이라고 할 만하다. 그러나 진보정당의 원내 진출이라는 과업을 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총선에서 원내 의석을 확보하지 못했고, 심상정 의원 자신도 낙선, 정치 생명의 지속에 물음표가 달릴 지경에 도달한 것이다.

 이와 같은 결과는 심상정 의원과 구 정의당의 행보가 가져온 자업자득인 면이 강하다. 민주노동당 시절 확보한, 지지 계층의 민의를 대변하는 진보정당으로서의 선명성과 정책 정당의 면모를 정의당에 이르러 많이 잃어버렸다는 사실에서 기인한 결과인 것이다. 지지층의 확장에 힘입어 이룩한 원내 진출이 오히려 독이 되어 진보를 기치로 한 혁신 정당으로서의 차별성을 유지하지 못했다. 오죽하면 ‘민주당 이 중대’라는 비아냥을 들었을까. 또한 이른바 ‘조국 사태’ 당시 정의당의 모호한 태도가 진보정당의 선명성을 훼손한 결과로 이어졌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이후 정의당은 녹색정의당으로 당명을 바꾸어 외연을 넓히는 것으로 지지율 하락이라는 위기를 극복하고자 했다. 환경문제와 페미니즘 등 새로운 진보적 가치에 대응하기 위한 동기가 있었겠지만, 노동자와 농민, 그리고 도시 빈민을 대변한다는 정책 방향이 뚜렷했던 민주노동당의 노선을 희석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진보정당은 특정 계층과 이슈를 대변하는 정책 정당이어야 한다. 여러 진보정당끼리 하나의 어젠다에 대하여 연합할 수는 있겠지만, 하나의 진보정당이 많은 진보적 가치들을 모두 수용하고자 한다면 정책 정당으로서의 전문성을 잃고 지지 계층과 유리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더불어민주당을 진보정당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우선 태생의 뿌리가 보수정당이다. 그리고 수권 정당이기에 특정 계층을 위한 정책 개발에 집중할 수 없다. 여기에 정권 창출을 위한 이합집산이 진보정당의 전문성을 떨어뜨린다. 좀 심하게 말하자면 더불어민주당은 진보인 척하는, 어중간한 모습의 정당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문제가 되는 도덕성의 결여 또한 진보의 가치와는 어울리지 않는 점이다. 이천 만원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노희찬 의원이 가졌던 도덕성의 수준을 상기해 보았으면 한다.

 우리에게는 노동자와 농민, 그리고 도시 빈민을 대변할 저변이 분명히 존재한다. 귀족 노조라고 비판받는 거대 노조의 영향 바깥에 있는 영세 기업에서 근무하는 노동자가 많다. 뿐만 아니라 갈수록 심화되는 계층 간 경제력의 차이가 주는 그늘이 우리 사회에는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다. 이 공간이 진보정당이 있어야 할 자리다. 그렇기에 오랫동안 진보정당의 자리를 잘 지켜온 녹색정의당, 아니 민주노동당의 몰락이 아쉽고, 고 노희찬 의원과 함께 진보정치의 상징적 인물이었던 심상정 의원의 퇴진이 안타까움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대학 시절부터 몸을 던져 헌신한 노동운동에 대한 신념을 표면적으로는 아쉬움을 남기고 접는다는 것이 어찌 안타깝지 않을까. 다만 바라기는 정치의 영역 바깥에서 평생 지켜온 신념을 이어가는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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