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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과 꿈 Apr 25. 2024

노래가 부르고 싶은 첼리스트

 합창단 연습이 있는 날인 지난 월요일, 베이스 파트에 신입 단원이 한 명 새로 들어왔다. 자기소개를 위해 앞에 선 신입 단원의 얼굴이 왠지 낯설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합창단의 정기 연주회에 솔로 첼로로 두 차례 함께 무대에 섰다는 것이었다. 지휘자의 부연 설명에 의하면 신입 단원은 서울대학교 음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 메네스 음대에서 계속 첼로를 공부한 후 뉴욕대에서 지휘를 공부했다고 한다. 장년의 나이에 이르러 성악에 매력을 느끼고 성악가에게 레슨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오페라에 단역으로 출연했다고. 사실 이것은 대단할 일도 아니다. 프로 성악가에게 레슨을 받는 아마추어들이 스승이 출연하는 오페라에 단역으로 함께 무대에 오르는 일이 흔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오랫동안 첼로라는 현악기를 연주해 온 기악 연주가가 늦바람이 들어 성악에 매력을 느끼고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물론 노래는 취미가 되겠지만 기악 연주가로서 성악에 접근하는 느낌이 남다를 수도 있으리라 생각되었다.


 사실 첼로는 나에게도 꽤나 친숙한 악기다. 작은 형수가 첼로를 전공했고 큰누님 쪽으로 조카가 첼로를 전공, 독일에서 오케스트라의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런 개인적인 이유가 아니라도 클래식 음악의 애호가 치고 첼로의 깊고 그윽한 음색을 싫어할 사람은 없지 싶다.

 조카가 한예종에서 외국 생활을 접고 귀국한 지도 교수에게 가르침을 받고 있을 때 의욕적으로 제자를 지도하던 젊은 교수가 제자들에게 오페라를 많이 들으라고 말했다는 기억이 난다. 그 이유가 뭘까?

 오페라는 사람의 모든 감정이 극적으로 표현된 음악 장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또한 오페라의 매력이다. 한마디로 오페라를 일컬어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악기를 전공하고 평생의 업으로 삼고자 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분야에서 가장 고민스러운 것이 있다면 악기를 잘 연주하는 기술적인 면과 함께 음악의 정서를 얼마나 잘 표현하느냐 하는 면일 것이다. 기술적인 면이야 반복된 연습으로 어느 정도 해소가 될 부분이지만 정서의 표현력은 개개인의 감성과 상상력에 관련된 것으로 연습으로 해소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평소에 자신의 감성을 키워야 할 문제일 것이다. 오페라를 들으라는 그 교수의 의도가 이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이 점은 비단 음악뿐만 아니라 문학과 모든 예술에도 적용되는 것으로 특히 창작을 하는 각 분야의 작가는 인근 장르에 대한 시야를 넓혀 자신의 감성을 극대화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조카를 지도했던 그 교수가 오페라뿐만 아니라 좋은 책과 영화, 미술, 심지어는 운동까지 강조했던 이유도 좋은 음악가가 되는데 다양한 경험이 필요하기 때문이 아닐까.


 악기가 탄생하기 전에 사람의 목소리가 있었다. 이 말은 결국 모든 악기가 인성을 본떠 탄생하고 발달했다는 것이다. 인성, 사람의 목소리를 뛰어넘을 악기는 없다.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시작하기 전 오보에의 소리에 맞춰 모든 악기가 조율을 한다. 사람의 목소리에 가장 근접한 소리를 가진 악기가 바로 오보에라는 사실을 새삼 떠올리게 된다.

 첼로 연주가로 이미 오랜 시간을 보낸 신입 단원이 뒤늦게 성악에 흥미를 가지게 된 것도 이에 관련이 있지 않을까? 누구나 노래를 좋아할 수는 있다. 그래도 전문적인 기악 연주가가 뜻밖에도 성악 레슨을 받고 아마추어 합창단에서 노래를 하겠다니 특별하게 생각이 되는 것이다.

 사실 기악 연주가로서 성악에 관심을 둔 음악가는 드물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베를린 필의 오보에 수석이면서 최고의 현역 오보이스트의 한 사람으로 평가되는 알브레히트 마이어는 어린 시절 고향 밤베르크의 성당에서 성가대 단원으로 있었다. 그 영향인지는 모르지만 알브레히트 마이어의 낭랑한 오보에 소리는 많이 성악적으로 들린다. 솔리스트로서 내는 음반도 성악곡을 편곡한 곡이 많다.

 또한 남에게 나서기를 싫어해 은자라고 불리었던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베네디티 미켈란젤리의 이력에는 고향의 아마추어 합창단의 지휘자였다는 사실이 있다. 남에게 나서기를 극도로 싫어하고 음반도 몇 장 남기지 않았던 괴팍한 피아니스트가 시골의 소규모 아마추어 합창단의 지휘를 했었다는 사실이 뜻밖이다.

 합창단의 특별한 신입 단원의 이력에 우리 합창단 단원이라는 사실이 추가될지는 모르지만 그의 새로운 관심과 도전에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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