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으로 다가온 음악

- 음악으로 쓰는 에세이(12)

by 밤과 꿈

첫사랑과 같은 음악,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음악이라면 어떤 음악일까? 당연히 처음 듣게 된 음악을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보다는 듣게 된 음악이 마음속에 깊게 각인되는 체험을 동반할 경우에 해당되는 말일 것이다. 어쩌면 그런 표현이 부족할 만큼 마음에 전율을 가져오거나 마음이 대책 없이 해체되는 체험 정도가 되어야 그 음악과 사랑에 빠졌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아무리 오래 음악을 들었다고 하더라도 그런 체험을 할 기회는 흔치 않다. 우리의 음악감상은 일종의 타성에 젖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음악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질수록 순수한 감상자의 자세에서 비평가의 자세로 변하게 된다. 물론 보다 수준 높은 감상을 위해서는 음악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가 필요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지식과 정보의 축적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좋은 감상자에게 요구되는 순수한 감동의 체험이 줄어드는 결과를 초래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바그너의 음악을 좋아했던 두 명의 대학 선배가 있었다. 그 선배들이 바그너의 음악을 좋아한다는 사실에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면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1980년대 초에 바그너의 음악은 우리나라에서 거의 불모지와 다름이 없었다. 오페라와 바그너 스스로가 창안한 장르인 악극(music drama)이 전부인(베젠동크의 시 5편으로 이루어진 가곡집이라는 예외가 있지만) 바그너의 음악은 라디오에서 방송하기에는 터무니없이 긴 음악이었고, 상품성이 없는 바그너의 오페라와 악극 전곡 음반이 국내에서 출반 될 일도 없었다. 지금이야 어렵지 않게 바그너의 음반을 입맛대로 구입할 수 있어 국내에도 많은 ‘바그네리안‘(바그너의 추종자)을 만날 수 있지만, 바그너가 악극을 작곡하기 이전, 비교적 이해하기 쉬운 ’로엔그린‘이나 ’탄호이저‘와 같은 오페라의 발췌판이나 바그너의 서곡과 간주곡을 조금 수록한 옴니버스 음반이 전부인(그것도 흔치 않았던) 시절이었기에 바그너 음악의 예찬자라고 자부하는 두 선배에게 미심쩍은 마음이 없지 않았다.

특히 사학과 J 선배의 경우, 바그너가 가진 혁명적 사상 때문에 음악까지 좋아하게 된 것으로 짐작이 되어 바그너 음악에 대한 선배의 열정이 의심스러울 수밖에.

그러나 건축과 S 선배의 경우는 달랐다. 언젠가 달빛이 어린 산정호수에서(아마도 MT를 갔을 것이다) 들었던 바그너의 ‘탄호이저 서곡’에 마음을 빼앗겼다는 것이다. 충분히 공감이 가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안타까운 것은 당시 클래식 시장의 빈약한 여건 때문에 그 선배의 순수한 감동이 지평을 넓혀갈 기회를 갖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정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음반으로 바그너의 음악을 접할 기회는 부족함이 없지만 실제 연주를 국내에서 접할 기회는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무엇보다도 먼저 바그너의 음악을 소화할 바그너 전문 가수가 국내에는 없다. 그러니 바그너의 오페라와 악극을 무대에 올리지 못할 수밖에.


그래도 S 선배가 바그너의 음악에서 느낀 순수한 감동이라면 바그너의 음악은 선배에게는 첫사랑과 같은 음악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흔히 하는 말로 사랑을 하는 데에는 달리 이유가 필요 없다고 한다. 그리고 사랑의 대상에 대하여 아는 것조차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성경에서도 “사랑은…… 지식도 폐하리라”라고 하지 않았던가. 음악에 대한 사랑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좀 더 생각해 보면 음악을 사랑한다는 것과 음악을 이해한다는 것은 서로 미묘한 차이가 있다. 그것은 감성과 이성의 차이로서 생각 이상으로 이질적인 요소들이 빚어내는 차이다. 물론 음악은 감성에 호소하는 예술이기에 그 아름다움에 대한 감성적 공감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 것처럼 음악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면서 역설적이게도 음악에 대한 순수한 사랑과는 거리가 생기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음악감상이라는 내 취미는 초등학교 6학년 때 팝송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고등학교 2학년이 시작되면서 클래식 음악에 심취했고, 대학 재학 중에 재즈에까지 감상의 폭을 넓혀갔다. 그런데 이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고 고백한다. 내 음악적 감수성이 클래식 음악에 오래 맞춰 있다 보니 진정으로 재즈 음악을 좋아하게 되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오로지 재즈라는 또 하나의 음악 예술을 이해하고자 하는 의지로 버틴 시간이었다. 현대를 살아가면서 동시대의 음악을 외면해서는 안된다는 강박으로 현대음악을 들었고, 서양음악을 좋아하면서 우리 음악에 대하여 무지한 자기모순을 각성(?)하고 전통 한국음악을 들었다. 지금도 대중음악을 듣고 있다. 청소년기에 스탠더드 팝과 컨트리 음악, 샹송, 칸조네 등을 들었다면, 지금은 블루스 음악에 심취해 있는 편이다.

돌이켜보면 음악을 무슨 지적인 모색을 도모하듯이 했다. 서양음악사도 6종의 서적을 탐독했다. 클래식뿐만 아니라 재즈를 들으면서도 서적으로 공부를 병행했다. 음악을 좀 더 이해하기 위한 방편이었겠지만 그 노력과 정비례해서 음악을 듣는 열락이 함께 했다고 자신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나에게도 첫사랑과 같은 음악이 있다. 음세포가 오감에 뒤섞여 융해되는 것처럼 오직 음악에만 몰입하게 되는 놀라운 순간이 있었다.

대학생이었을 때, 동아리에서 음악감상실로 일주일에 한 번 빌리던 음대 대강의실에서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를 감상하고 있었다. 바깥에서는 비가 내리고 있었고 지하 음악감상실의 높은 창에는 우산을 쓰고 바삐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사람들의 분주한 모습이 흩뿌리는 빗줄기와 함께 하나의 풍경을 이루고 있었다. 야사 하이페츠의 신들린 보잉이 뿜어내는 협주곡의 선율은 내 오감과 혼연일체가 되어 무아지경을 이루고 있었다. 그 순간은 음악에 대한 어떤 생각도 폐하고 음악 만이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처럼 무념무상의 지경을 느낄 때 문득 하나의 생각이 바람처럼 스쳐 지나갔다. 평생 지금처럼 살아도 좋겠다고. 그러나 생각 없이 살아지는 세상은 아니지 않은가. 따라서 그때 느꼈던 첫사랑은 마음에 언제나 짝사랑으로 남을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다비드 오이스트라흐의 연주를 가장 좋아한다. 같은 연주를 2장의 CD와 3장의 LP로 가지고 있다. 베토벤의 음악치고는 드물게 행복감으로 가득한 이 협주곡의 악상에 가장 적합한 연주가 오이스트라흐의 연주다. 1950년대에 녹음된 음반인데도 이 음악의 대표적인 명연으로 그 가치를 잃지 않고 있다. 이 연주 음반을 일본판 , 미국판, 영국판 등으로 거듭 구입한 이유를 나도 모르겠다. 다만 1980년대에 소문도 없이 라이선스로 국내에 출반 되었던 재킷 디자인 때문에 영국판을 구입한 것으로 보아 이 음반에 대한 어떤 그리움이 존재하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음악이 아닌 한 여자를 사랑했으나 그 사랑이 여의치 않았을 때 밤을 새워 들었던 음악이 오이스트라흐가 연주하는 베토벤의 협주곡이었으니까. 이래 저래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첫사랑이면서 짝사랑으로 남게 된 음악인 듯 싶다.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 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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