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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과 꿈 Mar 28. 2024

꽃비가 흩날리는 강가에서

- 음악으로 쓰는 에세이(13)

 지난 주말에 볼 일이 있어 광주시에 다녀왔다. KTX를 타고 바라보는 들녘의 풍경에 봄햇살이 따사로웠다. 같은 햇살이라도 콘크리트 건물과 아스팔트 일색인 서울에서 느끼는 것과 아직은 초록을 덧입지 않은 맨땅을 비추는 햇살의 느낌은 많이 다르다. 회색옷으로 겹겹이 무장한 도시의 햇살은 애잔한 느낌이 든다. 높은 건물에 막힌 햇살이 더없이 고마우면서도 아쉬움이 있다. 첩첩산중의 이른 땅거미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산간 지방의 일찍 지는 땅거미는 평온하고도 깊은 안식을 제공하지만, 도시에서는 밤에도 안식을 거부케 하는 인공광 때문에 오히려 햇살이 더욱 소중하게 생각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도시의 햇살이 고맙고도 아쉬운 것이다.

 어릴 때의 경험이다. 추운 겨울에, 기력이 달리는 햇살을 쫓아 양지바른 담벼락에 바투 서서 햇살에 언 몸을 녹이던 일이. 이럴 때 부족한 햇살이라도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 거듭 말 할 필요가 없다. 도시에서 햇살의 존재가 바로 이런 것이다. 넉넉하지 않아서 아쉬운 것. 그러나 이제 우리는 햇살에 대한 어린 시절의 그 아쉽고도 간절한 기억을 잊어버리고 살아간다. 문명의 이기가 발달함에 따라 자연이 주는 혜택에 대하여 둔감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다 오늘과 같이 거칠 것이 뻥 뚫린 들녘을 축복하고 품에 안듯 모두 비추는 봄햇살을 만나게 되면 마음이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저 햇살로 인해 대지의 모든 생명이 자라는구나,라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되는 것이다.


 따스한 봄햇살을 먹고 겨우내 헐벗었던 대지는 푸름이 짙어져 갈 것이다. 이에 앞서 꽃나무는 화사한 꽃으로 멋을 내고 분내를 풍기며 사랑에 빠질 것이다. 그리고 한철 짧은 사랑이 화농 하여 터질 때 그 서러운 심사는 꽃비가 되어 흩날리리라. 내 젊은 날의 사랑도 그랬다. 짧았던 사랑이 남긴 허무가 마음을 갈가리 찢어놓지 않았던가.

 사랑이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바로 사랑이 끝나는 순간이다. 하루 햇살이 가장 아름다운 때가 해 저물녘이라는 사실과 같은 의미. 많이 나아간 생각이지만 인생의 절정 또한 우리 삶이 끝나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모른다,라고 단정적으로 말하지 못하는 까닭은 내 삶이 끝날 때가 아직은 멀었기 때문이다. 내가 경험하지 않은 사실을 마치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자연의 이치나 사랑은 내 경험 속에 있는 일이라 말할 수 있다.

 오늘 지는 해는 내일 다시 떠오른다. 금년에 지는 꽃은 내년에 다시 핀다. 그리고 하나의 사랑이 끝나면 언젠가는 새로운 사랑이 찾아온다. 그것이 바로 세상만사의 변하지 않는 이치다. 이 불변의 생명현상을 이해한다면 흩날리는 꽃비가 마냥 서럽게 생각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생명의 끝남을 대하는 자세 또한 마찬가지가 아닐까?  이 또한 생명현상의 하나로서 담담하게 받아들일 문제다. 그리고 앞서 말한 것처럼 삶이라는 생명활동의 절정에서 긴 여정의 장엄과 우리 존재의 존엄을 비로소 깨달을 일이다. 물론 죽음의 그늘이 우리를 덮치기 전까지는 이 바람은 소망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작년 이맘때, 그러니까 부활절을 전후하여 남도 여행을 다녀왔었다. 그리고 구례에서 하동에 이르도록 원 없이 꽃구경을 했었다. 하동 쌍계사 십리길과 섬진강변을 따라가면서 만개하여 바람을 따라 꽃비를 흩날리던 벚꽃의 절정과 만났었다. 그때 생각하기로는, 모든 것의 끝은 곧 새로운 시작일 수 있다는 당연하면서도 잊기 쉬운 사실에 대한 상념에 빠졌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지는 꽃의 시간이 그다지 아쉽거나 서러울 일도 아니다. 더군다나 어지러운 낙화가 반짝이며 흘러가는 강물의 모습과 겹쳐지는 풍경을 볼라치면 모든 세상사가 시간을 따라 흘러가는 것이 순리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흐르는 강물이 마르지 않듯 흘러간 것의 빈자리는 새로운 것으로 채워지는 법. 끝나는 자리가 곧 시작하는 자리, 시간의 끝은 곧 시간의 시작이다.


 강변도로를 따라 벚꽃이 만개한 섬진강의 풍경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모습 중 하나이지만, 넉넉한 한강이나 사행천의 전형을 보여 아름답게 굽이진 낙동강까지 강을 좋아한다. 뿐만 아니라 규모가 작은 하천도 좋아한다. 산과 어우르진 하천의 모습이야말로 우리가 터 잡은 이 땅의 전형적인 풍경이다. ‘산하’나 ‘강산’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강을 소재로 한 음악도 적지 않다. 그중에서도 스메타나의 교향시 ‘나의 조국’ 중 두 번째 곡인 ‘몰다우 강’과 슈만의 교향곡 3번 ‘라인 강’이 대표적인 곡으로 봄날의 강을 마주할 때마다 속으로 흥얼거리는 음악이다.

 체코의 작곡가 스메타나가 자신의 조국 체코의 풍광을 소재로 작곡한 교향시 ‘나의 조국’ 중 ‘몰다우 강’은 특히 유명해 단독으로도 자주 연주되는 곡으로 굽이쳐 흐르는 강물의 흐름이 생동감 있게 묘사된 곡이다. 또한 슈만의 교향곡 3번은 라인강 하류의 아름다운 도시 뒤셀도르프의 교향악단 음악감독으로 있으면서 초연한 곡으로 슈만의 음악이 가진 낭만성이 잘 표현된 음악이다.

 비록 체코와 독일의 강을 묘사한 음악이지만 우리의 정서에도 잘 맞는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스메타나의 ‘몰다우 강’은 유속이 제법 빠른 강의 중류를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슈만의 교향곡에서는 강 하류의 유장한 흐름을 연상케 한다. 유장하게 흐르는 강물에 흩날리는 꽃비가 더한다면 부족함이 없는 봄날의 풍경일 것이다. 게다가 흐르는 시간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스메타나의 교향시 ‘나의 조국’ 중에서 ‘몰다우강’


슈만의 교향곡 3번 ‘라인강’ 중에서 1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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