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구질구질한 이야기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현대적인 수세식 화장실이 아닌 속칭 푸세식이라고 부르는 재래식 화장실에 관한 이야기이다.
예전에는 세면 하는 장소와 용변 보는 장소가 엄연히 달랐으므로 화장실이라는 표현보다는 변소라는 용어가 더 적합할 것이다.
수세식이라도 세면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지게 된 것은 아파트가 보편적인 주거시설로 자리 잡게 된 이후였으리라 생각한다.
지금이야 시골에도 위생적인 수세식 화장실이 보급, 일반화되었지만(사실 이 사실은 대부분의 농가에서 천연 비료가 아닌 화학 비료를 쓰게 되었다는 부정적인 면을 나타낸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까지도 정화조가 연결되지 않은 변소에서 변을 퍼 나르는 똥장군이 좁은 골목을 누비고 다녔다.
냄새도 냄새지만 어깨를 지렛대 삼아 통 두 개에 가득 인분을 채워 나르는 바람에 발걸음에 따라 내용물이 출렁거려 자칫 날벼락을 맞을 위험이 있었다.
주로 시골에서 거름용으로 사용하는 지게 똥장군도 보았던 기억이 있어 도시이지만 인분 거름을 필요로 하는 텃밭이 적지 않았던 것 같다.
하긴 큰 수레를 끄는 노새(말과 당나귀의 잡종으로 수레를 이용, 짐을 나르는 용도로 사용)를 도심에서 흔히 보던 시절이었다.
초등학교 저학년에 다닐 때였을 것이다.
만화방에서 금방 빌려온 만화에 정신이 팔려 만화를 읽으면서 길을 가고 있었다.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문득 눈을 들어보니 전봇대와 부딪히기 직전이었다.
그것보다 더욱 아연한 사실은 전봇대에 묶어놓은 노새의 얼굴이 눈앞에 닿을 듯이 가까이에 있었던 것이다.
그 시대를 잘 설명하는 일화라 사족에 지나지 않지만 소개한다.
재래식 변소는 가급적 생활하는 집과 거리를 두어 위치했다.
위생을 고려한 까닭이다.
땅의 제약이 크지 않은 시골이라면 가옥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 변소를 배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골만큼 땅이 넉넉하지 않은 도시에서는 가옥에 별도의 출입구를 내어 긴 복도를 지나게 하여 변소를 가급적 생활공간과 분리시키고자 했다.
그래서 변소를 측간, 혹은 뒷간이라고도 부르는 것이다.
이렇게 후미진 변소를 야밤에 이용하는 것은 보통 곤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백열등이 불을 밝힌 좁은 복도를 지나 변소에 가 앉으면 별별 생각이 다 드는 것이다.
변소에 산다는, 측귀라는 여자 귀신이 변으로 가득 찬 바닥으로 끌어들이지 않을까 무서워 뚫린 구멍을 쳐다보기를 반복, 쾌변은커녕 도망치듯 변소를 빠져나와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내리기 일쑤였다.
추운 겨울밤 변소에서 엉덩이를 드러내고 볼일을 보는 것은 이중으로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그래서 요강이라는 기물이 생겼을 것이다.
내가 변소에 대하여 기억하는 것은 적어도 여섯 살, 그리고 초등학교에 다닐 때의 모습이다.
유년기를 보낸 한옥에서는 변소에 대한 기억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변소에서 쭈그리고 앉아 버틸 힘이 다리에 없을 나이였기 때문이다.
모든 볼일을 요강에서 해결했을 것이다.
이와 관련, 유일하게 남아있는 기억이 있다.
아마도 햇살이 좋은 봄날, 아니면 초가을의 한낮이었을 것이다.
느긋하게 햇살을 즐기면서 요강에 앉아 배변에 몰두하고 있었다.
특히 그 장소를 선택한 것도 햇살이 잘 드는 곳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바로 뒤에 온실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틀림이 없는 사실이다.
유년기의 한옥에는 작은 온실이 있었다.
천장과 사방이 유리로 이루어진 온실 안에는 화분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중에서도 가시가 촘촘한 선인장이 유독 기억에 선명하다.
다른 식물에 비해 생김새가 특이한 까닭이다.
어쨌든, 여기까지는 평온하기 짝이 없는 일상의 모습이다.
구태여 지금까지 기억할 이유도 없을 평범한 하루다.
작은 형이 먼지떨이 총채를 들고 온실로 올라가기 전까지는.
많이 두껍지도 않은 유리 천장에 두 발을 딛고 섰으니 아무리 어린아이(작은 형과 나는 세 살 터울이었다)의 무게라고 해도 유리 천장이 버텨내기는 힘들었으리라.
총채를 휘두르며 볼일을 보고 있는 나를 놀리던 작은 형의 모습이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진 것이다.
다행히 작은 형은 머리에 가벼운 찰과상을 입은 외에는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이 일은 작은 형과 나, 그리고 부모님 모두를 놀라게 했고 내게는 잊히지 않는 기억이 되었다.
작은 형과 내가 터울이 작은 형제였기에 유년기의 기억 중 가족과 관련된 것 대부분이 작은 형에 대한 기억이다.
씹어 먹는 영양제 원기소 한 병을 다 먹어 배탈이 난 일이라든지 제기에 있던 엽전을 입에 물고 물구나무를 서다가 엽전을 삼켜 버린 일(아주까리기름을 마신 후 변과 함께 체내에서 배출했다) 등 작은 형이 관련된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그러나 남달리 친밀했던 작은 형은 너무도 젊은 나이에 가족의 곁을 떠나갔다.
그리고 그 이별이 급작스러운 것이었기에 한동안 충격에서 벗어나지를 못했었다.
망각도 사람의 일이라 세월이 흐름에 따라 가족을 잃은 충격도 슬픔도 희석되기 마련이다.
그래도 고인에 대한 소소한 기억들이 있어 수시로 지난날을 추억할 수 있어 다행이고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