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내 유년기를 보낸 한옥에서 어떤 동물을 키웠다는 기억은 없다.
다만, 누군가(부모님 중 한 분이었을 것이다) 살아있는 닭의 목을 비틀어 잡는 모습과 닭개장 비슷한 붉은 국물의 요리에 덜 자라서 미처 계란이 되지 못한 둥근 알들이 포도송처럼 알알이 모여 있는 모습이 단편적이나마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래도 닭장이 기억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서는 아마도 시장에서 살아있는 닭을 사 와 요리를 했지 싶다.
시골의 장터가 아니라도 상설 시장에서 살아있는 닭을 구할 수 있었던 시절이 아니었을까.
한 번은 작은 형이 이웃집에 갔다가 그 집에서 키우던 거위에 물린(부리에 쪼였다고 해야 할까) 일이 있었다.
농가도 아닌, 도시의 가정집에서 키우는 거위가 생경할 수도 있겠지만 공격적인 습성으로 개보다 집을 잘 지킨다는 거위의 성향을 이용, 도둑을 막을 목적으로 키웠을 것이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도시라도 시골과 같은 정취가 조금은 살아있었던 것 같다.
그런 분위기에서 개 한 마리 정도는 키웠을 것으로 짐작을 하는데 기억으로 떠오르는 사실이 전혀 없다.
그 사실이 오히려 의아한 것이 내가 동물을 싫어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라면 한결같이 동물을 좋아한다.
TV에서 방송하는 다큐멘터리 '동물의 왕국'을 재미있게 보지 않은 아이는 없었을 것이다.
좀 더 오래전으로는 만화가 임창이 그린 '땡이의 사냥기'라는 만화를 재미있게 보았었다.
그렇게 TV나 책에서 만나는 야생동물들의 생동감이 넘치는 이야기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비록 야생동물은 아니지만 어릴 때 여러 동물들을 키워보았다.
지금처럼 애완동물의 종류가 많지 않아 키웠다는 동물이라고 해봤자 뻔한 이야기이지만, 간혹 뻔하지 않은 동물도 접할 기회도 있었다.
어머니께서 시장에서 사 오신 미꾸라지에 섞여온 각시붕어를 꽤 오랫동안 키웠던 적도 있었다.
물론 민물고기가 흔해 수시로 매운탕을 끓여 먹었던 경험이 있는 시골 사람이 들으면 시답잖은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그래도 도시에서는 흔치 않은 물고기였기에 키울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도시라도 환경이 좋아 초등학교에 다닐 때 만해도 소풍을 간 계곡의 돌을 들추면 가재를 볼 수 있었다.
봄이면 찾아와 처마에 집을 지어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우는 제비는 집에서 가장 친숙하게 만나는 야생동물이라고 할 수 있다.
어릴 때 친숙했던 이 새를 언젠가부터 볼 수가 없게 되었다.
제비가 한 철 머물기에는 환경이 많이 열악해졌기 때문이다.
제비의 먹이가 되는 곤충의 개체가 병충해 방지를 위한 약품 살포 등의 이유로 감소했으니 천적인 제비의 개체 또한 감소할밖에.
또한 도시에서는 대기오염도 문제지만 아파트 중심으로 가옥 구조가 변함에 따라 제비가 번식을 위해 둥지를 틀기에는 열악한 여건이 조성, 점차 제비가 사라지게 되었다.
몇 년 전 여수 돌산도에서 사람에 대한 경계도 없이 가까이 날아다니는 제비를 근 사십 년 만에 대면했을 때의 감격을 무어라고 형언할 수가 없다.
흥부 이야기가 있어서인지 우리나라에서는 제비가 사람에게 해코지를 당할 일이 별로 없다.
그 사실을 제비도 익히 알고 있는지 향일암으로 가는 초입에서 경계심을 놓아버린 것처럼 사람의 주위를 맴돌며 부산을 떨고 있었다.
제비에게 위협이 될 만한 것은 사람이 아니라 둥지 속의 알이나 새끼를 노리는 구렁이가 될 것이다.
뜻밖에도 유년기를 보낸 한옥에서 구렁이를 직접 본 적이 있다.
한낮의 햇살이 뜨거운 여름이었을 것이다.
제법 큰 황구렁이 한 마리가 앞마당의 모퉁이에서 우람한 감나무 가지를 휘감은 채 느릿느릿 움직이고 있었다.
그늘을 찾아가는 중일 텐데도 전혀 서두르지 않는 구렁이의 모습이 능청맞다고 느꼈을 것이다.
여름 햇살을 받아 윤기가 흐르는 몸통의 비늘은 아름답다고 생각될 만큼 당당했다.
어떤 두려움이나 경계심을 모르는 구렁이의 눈동자는 사위를 차갑게 응시하고 있었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어머니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안돼, 구렁이를 그렇게 손으로 가리키면."
작은 형이 놀라서 구렁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지금도 알지 못하지만 어머니께서는 양밥 비슷한 것을 한다고 작은 형의 손에 된장을 마구 발랐다.
사람들의 소동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구렁이는 자신의 갈 길을 찾아 막 담을 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집을 떠난 이후로 구렁이가 돌아왔다는 어떤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
사실 키우던 동물이 아니었으니 구렁이가 돌아왔다고 스스로 티를 낼 리도 만무해서 구렁이의 행방을 알 수도 없고 행방에 대하여 관심을 둘 이유도 없었다.
다만 우리 집에 터 잡아 살던 구렁이가 그날 영영 집을 떠났으리라 믿는 이유는 결국 우리 가족 또한 집을 떠나게 되었다는 사실, 즉 구렁이의 행동이 불길한 전조였으리라는 생각 때문이었다.